불교를 모르는 그녀의 불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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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모르는 그녀의 불교 이야기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4.1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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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 시인, 아동문학가
김희정 - 시인, 아동문학가

J선생과 저는 20년 지기 문우입니다. 같은 선생님을 모시고 글 형제를 맺었지만 그녀는 서울에, 저는 제주에 삽니다. 그런 까닭으로 저는 작년에 처음 J선생을 만났습니다. 20년 만에요. 서로의 작품으로 좋아하고 가깝다고 느끼는 사인데도 말이지요. 어쩌다보니 저는 꽤 오랫동안 얼굴 없는 작가로 살아온 셈입니다.
 아무튼 작년에 우리는 J선생이 사는 동네 지하철역에서 만났습니다. 이미 문학으로 익혀온 사이인지라 그리 낯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이는 아니었죠. 그녀의 첫 인상은 수수했습니다. 맘씨 좋은 이웃집 아주머니였습니다. 
두 번째 만난 날, 그날은 비가 왔습니다. 그녀는 대뜸 숲길을 걷겠냐고 물었습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데 말이죠.  “좋아요!” 제가 씩씩하게 대답하자 그녀는 아주 좋아했습니다. 우리는 우산을 쓰고 옷깃을 좀 적시면서 숲길을 걸었습니다. 비오는 날 숲길도 꽤 매력이 있더군요. 그 분위기에 취해서 우리는 온라인 문학카페에서 하지 않았던 이런 저런 사적인 이야기들을 나누며 걸었습니다. 급기야 J선생은 자기가 유방암 수술을 해서 한쪽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지금 걷고 있는 숲길이 자기가 암을 이겨낸 숲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빠지지 않고 걷는다더군요. 
묻지도 않았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를 저에게 하는 것은 아마 저와 허물없이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사인이 아닐까요? 저는 그 사인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녀를 웃겨줄 치명적인 비밀 하나를 털어놓았습니다. 절대로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면 안 된다는 약속까지 받아내었습니다. 
“선생님, 사실 저는요…”
예상대로 그녀는 배가 아프게 웃더군요. 
“어머 어떡해! 다른 사람한테 절대 말은 안 하겠지만 앞으로 김 선생 생각하면 이거 떠올라 웃을 것 같아!”
무슨 비밀이냐고요? 너무 치명적이니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오로지 J선생을 위해 털어놓은 비밀이니 그녀가 저를 생각하면서 큭큭큭큭 웃으면 되었습니다.
J선생은 제가 불자인 것에 꽤 관심을 보였습니다. 불교는 모르지만 예전에 도서관에서 자경문이라는 걸 읽었는데 지금도 그 전율은 잊을 수가 없다네요. 그리고 암이 걸렸을 때 드디어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나무아미타불!”을 불렀다고 합니다. 딱히 절에 다녀본 적도 없지만 그냥 그것밖에 생각나는 게 없더랍니다. 몸도 마음도 살고 싶다는 생각도 다 내려놓으니 절로 그냥 나무아미타불이 나오더랍니다. 아무튼 그녀는 죽을 병에서 살아났습니다. 지금은 건강하게 다시 글을 쓰고 있고요. 저는 나무아미타불이 무량한 빛이고 영원한 생명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불교를 정말 모른다는 그녀는 이미 몸에, 마음에 불교를 새겨놓은 사람입니다. 그녀는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을 사랑하고 돕습니다. 그녀의 생태적 세계관과 생명철학은 그녀의 작품 속에 오롯이 드러나 있기도 하지요.
“불교에 보살이라는 삶의 방식이 있는데 선생님이 꼭 그렇게 살고 계시니 불교 잘 하시는 겁니다!” 하면 그녀는 장난하지 말라며 제 어깨를 툭 칩니다.
그녀는 이제 불자입니다. 곧 돌아올 초파일, 그녀는 환한 꽃등을 밝히러 절에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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