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 뽑은『이띠웃따까』(Itivuttaka, 如是語經) (15) - 명지 경(It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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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 뽑은『이띠웃따까』(Itivuttaka, 如是語經) (15) - 명지 경(It2:13)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4.21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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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주석서』에서 전해지는 쿳줏따라(Khujjuttara)는 선천성 꼽추이자‘꼬삼비’나라의 사마와띠 왕비의 하녀였다. 이런 비천한 신분임에도 전생에 벽지불을 시봉한 공덕이 있어 부처님께서‘꼬삼비’도시에서 설법하신 112개의 경을 듣고, 수지하여 예류과를 증득하였음은 물론, 그 경들을 왕비와 시녀 500명에게 전달하여 그 여인들까지 예류과에 확립하게 함으로써 보살도를 실천하셨기에 부처님의 재세 시에‘청신녀 제자들의 모범이고 표준’이라는 칭찬을 받으신 님. 법의 창고지기인 아난다 존자를 포함한 500명의 아라한들이 빠알리 삼장 가운데 경장의 다섯 번째인『쿳다까 니까야』의 네 번째 경전으로 결집하여 2600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 전승된 이 경전의 정수를‘각묵’스님께서 정리하여 격 주간으로 30여 회 법문한다.
각묵 스님은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로 지난 30여년간 초기 불교의 교학과 수행체계를 널리 알리는 초기불전들을 한글로 옮기는 번역불사를 꾸준히 전개하며 불교의 현대화를 통한 불교교리의 대중화에 기여해 왔다. 1957년 밀양 출생으로 1979년 화엄사에서 도광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수지, 1982년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부산대 수학교육과 3학년 재학 중 출가 7년간 제방선원에서 수행하였고, 1989년부터 10년간 인도로 유학(산스끄리뜨, 빠알리, 쁘라끄리뜨를 수학)하여, 인도 뿌나대학교 산스끄리뜨어과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2년 대림 스님과 초기불전연구원을 설립하여, 팔리어 삼장을 번역하였으며, 조계종 교수아사리, 실상사 화림원 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각묵 스님은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로 지난 30여년간 초기 불교의 교학과 수행체계를 널리 알리는 초기불전들을 한글로 옮기는 번역불사를 꾸준히 전개하며 불교의 현대화를 통한 불교교리의 대중화에 기여해 왔다. 1957년 밀양 출생으로 1979년 화엄사에서 도광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수지, 1982년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부산대 수학교육과 3학년 재학 중 출가 7년간 제방선원에서 수행하였고, 1989년부터 10년간 인도로 유학(산스끄리뜨, 빠알리, 쁘라끄리뜨를 수학)하여, 인도 뿌나대학교 산스끄리뜨어과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2년 대림 스님과 초기불전연구원을 설립하여, 팔리어 삼장을 번역하였으며, 조계종 교수아사리, 실상사 화림원 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경전】

1. 이것은 참으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아라한께서 말씀하신 것을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

  “비구들이여, 무명無明이 선구자가 되어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일어남으로써 양심 없음과 수치심 없음이 이것을 따르게 된다. 비구들이여, 명지明知가 선구자가 되어 유익한 법[善法]들이 일어남으로써 양심과 수치심이 이것을 따르게 된다.”

이러한 뜻을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2. 이 경에서 이것을 이렇게 ‘게송’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든 다른 세상에서든
   어떤 불행한 곳[惡處]에서든
   모든 것은 무명을 뿌리로 하고
   바람[願]과 탐욕을 몸통으로 한다.
   그릇된 바람과 양심 없음과
   경시함이 있어서
   거기로부터 그릇됨이 흘러나와서
   그것 때문에 처참한 곳으로 간다.
   그러므로 비구는 욕구와 탐욕과 
   무명을 빛바래게 하고 
   명지를 일으켜서
   모든 불행한 곳을 버려야 한다.”

이러한 뜻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셨으니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  

【해설】

무명[無明, avijjā]이라 함은, 『상윳따 니까야』(S12:2)에서 삼계 윤회의 근본 원인이 되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즉 사성제에 대한 지혜 없음이라고 정의되고 있다. 주석서는 이것은 ‘어리석음’과 동의어라고 설명한다. 
아비담마에서는 해로운 마음의 가장 강력한 뿌리이고 원인으로 탐욕[貪, lobha], 성냄[嗔, dosa], 어리석음[痴, moha]의 세 가지를 분류한다. 탐욕과 성냄은 서로 배타적이어서 그들은 한 찰나의 마음에 함께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탐욕과 성냄은 항상 어리석음이라는 뿌리와 함께 일어난다. 북방불교에서도 탐·진·치 셋을 삼독이라 강조하고 있듯이 초기불교에서는 해로움[不善]의 뿌리는 이 세 가지라고 강조한다. 
이와 반대되는 불탐·부진·불치를 유익함[善]의 뿌리라 하여 강조하고 부처님께서는 이 탐·진·치의 세 가지 모두가 다 소멸된 경지가 바로 열반이라고 설하셨다. 
무명은 12연기의 우두머리에 위치한다. 모든 것에 앞서 간다는 뜻에서 선구자라고 표현한 것이다. 무명과 불선법은 서로가 함께 하는 조건과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이 되어 뒤따르는 법들에게 대상의 바른 성질을 모르게 한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무상이요 부정이요 괴로움이요 무아의 고유성질을 가진 법들[五蘊]을 항상한 것으로 거머쥐게 하는 역할을 한다. 
사성제의 진리를 모르도록 덮어 가리는 것이 무명의 역할이다. 덮어 가리는 성품 때문에 악행의 성질을 이해하는 지혜로운 사람일지라도 어리석음이 들어올 때는 악행의 허물을 보지 못하고 저지르게 된다. ‘이치에 맞지 않게 마음에 둠’[非如理作意]이 그 가까운 원인이라 말한다. 
『청정도론』에서는 몸으로 짓는 나쁜 행위 등에 대해 부끄러워한다고 해서 ‘양심’이라 하고, 몸으로 짓는 나쁜 행위 등에 대해 두려워한다고 해서 ‘수치심’이라고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양심은 부끄러워함 때문에 악행을 짓지 않는 역할을 하고, 수치심은 두려워함 때문에 악행을 짓지 않는 역할을 한다. 양심은 자기를 중히 여기고, 수치심은 타인을 중히 여긴다. 그래서 이 두 가지의 법은 세상의 보호자이다. 
돼지가 똥 더미를 싫어하지 않고 똥 더미 속에서 뒹굴며 먹고 자는 것처럼 부끄럽지 않음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악행을 매우 즐기고 좋아한다. 
불나방들이 불꽃을 금산金山으로 여기고 불길을 향해 달려드는 것처럼 악행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악행을 싫어하지 않고 무모하게 행한다.
무명과 다르게 밝은 측면에서 살펴보면, ‘명지’[明知, vijjā]는 업業이 자신이 주인임을 아는 지혜를 말한다. 여기에도 함께 생김과 강하게 의지함인 두 가지 조건이 선구자가 된다. 
재가자들은 면학에 힘써 비난받지 않는 기술과 직업 분야에 종사하고 법을 듣고 법을 설하는 것을 존중하여 법을 설하며 ‘미래에 통찰 지를 갖춘 자가 되리라.’는 서원을 확고하게 하여 여러 가지 보시를 하는 선업을 의지할 때 뒤따라 생겨난 지혜가 명지이다.   
마치 강이 급류와 함께 물결이 휘몰아칠 때 오직 키의 힘으로 배가 머물 수 있고 키 없이는 머물 수 없듯이, 지혜와 결합된 유익한 마음이 일어나야만 생사윤회의 기나 긴 여정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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