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법문] 아비담마와 위빠사나의 관계 2
상태바
[제4회 법문] 아비담마와 위빠사나의 관계 2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4.28 14: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법문 목차]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들어가는 말
2. 아비담마와 위빠사나의 관계
3. 위빠사나를 성취하기 위한 두 가지 길
4. 통찰지의 토양
5. 세 가지 관찰
6. 열 가지 위빠사나 지혜
7. 종성(種姓)의 마음
8. 도(道)의 마음
9. 반조의 지혜
10. 세 가지 해탈의 관문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뒤에 인간이 스스로에게 던진 가장 많은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 ‘존재란 무엇인가?, ‘세상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
오온五蘊이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이라면 12가지 감각장소[處 āyatana, 아야따나]는 세상, 일체(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무한한 우주공간 속에 인간, 천신, 범천, 축생 등의 다양한 존재가 있고, 땅과 물, 산과 숲이라는 무수한 사물들이 있다 하더라도 12가지 감각장소들만이
고유성질을 가진 법(sabhāva-dhamma)으로서 존재할 뿐이고, 그 밖의 것은 개념일 뿐이라고 강조하고 계십니다. 
부처님께서는 왜 세상을 12처로 해체해서 설하셨을까요? 법의 세 가지 특상인 무상·고·무아를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법으로 해체하여 볼 수 있는 지혜, 즉 법안法眼을 증득하면 고정불변하고 영원한 세상이나 절대적 존재로서의 일체가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해서 세상이나 일체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수행에 관심을 가진 불자라면 수행에 앞서서 세상, 또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안과 밖의 만나는 것, 즉 눈이 형색과, 귀가 소리와, 코가 냄새와, 혀가 맛과, 몸이 감촉과, 알음알이[意]가 법과 만나서 부딪치는 것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는 12처의 교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매 찰나 대상과의 연기적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 대상은 크게 물질적인 대상과 정신적인 영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밖의 물질적인 대상과의 접촉은 눈·귀·코·혀·몸을 통해서, 내안의 정신적인 것과의 접촉은 알음알이[意, mano, 마노]를 통해서 하게 됩니다. 그밖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눈眼·귀耳·코鼻·혀舌·몸身·알음알이意는 각각 형색·소리·냄새·맛·감촉·법이라는 대상을 만나는 문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체를 아는 지혜[普眼]를 갖추신 부처님께서 일체를 구성하는 법들을 문[門, dvāra]과 마음의 대상의 측면에서 통찰하신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아비담마적으로 보면, 다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눈眼·귀耳·코鼻·혀舌·몸身]는 다섯 가지 감성의 물질과 일치하고, 다섯 가지의 밖의 감각장소[형색色·소리聲·냄새香·맛味·감촉觸]는 다섯 가지의 물질의 대상과 일치합니다. 그러나 마노[意, 알음알이]의 감각장소는 마노의 문[門, dvāra]보다는 그 범위가 더 큽니다. 거기에는 89가지 마음[= 욕계 54 + 색계 15 무색계 12 + 출세간 8]을 포함하는 알음알이의 무더기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법의 감각장소는 52가지 마음부수법[心所法]과 16가지 미세한 물질과 열반으로 구성되고 있습니다. 마노의 감각장소와 마음의 문과 각각의 대상은 정신[名]이고, 나머지 감각의 문과 그 대상은 물질[色]로 분류되기 때문에 결국 열두 가지 감각장소들은 정신과 물질[名色],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일체를 최소의 단위로 분해하고 분석하고 해체해서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자기 고유의 성질을 가진 것’을 「상좌부 아비담마」에서는 구경법(빠라맛따 담마, paramattha dhamma)이라 부르면서 마음[識=意=心], 마음부수[受·想·行], 물질[色], 열반[涅槃,] 등 네 가지를 궁극적 실재라고 말합니다. 이를 요약하면 위 [표] 기재와 같습니다.

부처님께서「일체 경」(상윳따 35:23)에서는 안의 감각장소[六內處]와 밖의 감각장소[六外處]로 구성된 12처야말로 일체라고 정의하고 이 12가지 외에 다른 일체는 세울 수 없다고 강조하시면서, 또 「세상 경」((상윳따 35:82)에서는 이 12가지야말로 세상 그 자체라고 천명하시면서 담마dhamma를 가르치셨습니다.
초기경의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신 목적은 궁극적 행복으로 표현되는 열반의 실현에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부처님의 직설인『아비담마』는 법의 실상, 즉 제법실상諸法實相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위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제법諸法은 곧 구경법을 말합니다. 
사마타와 위빠사나는 불교 수행의 두 가지 방법이나, 사마타는 개념[빤냣띠, paňňatti]을 수행의 대상으로 삼고 표상nimitta에 대한 집중이나, 위빠사나는 법[法, dhamma]을 대상으로 하는 법에 대한 통찰이므로 그 성격이 다릅니다.
중생은 개념일 뿐입니다. 따라서 중생이 사는 세상도 개념 이외에 다른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사무치지 않는다면 궁극적 진리에 한 발짝도 다가설 수 없습니다. 중생 세상을 개선하고자 함이 세상의 정치요 경제요 예술이요 의술이라면, 중생(satta)으로 하여금 성자(ariya)가 되게끔 하는 체계가 불교입니다.  대한불교조계종의 종헌에서 천명한 ‘전법도생傳法度生’이 바로 그것입니다. 
예를 들어 강江이라 할 때 거기에는 최소 단위인 물의 요소들이 모여서 흘러감이 있을 뿐 강이라는 불변하는 고유의 물질은 없습니다. 그것은 마음이 만들어 낸 개념이지 그 본성에 의해서 존재하는 실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와지라 경」(상윳따 5:10)에서 “마치 부품들을 조립한 것이 있을 때 ‘마차’라는 명칭이 있는 것처럼 무더기들[蘊]이 있을 때 ‘중생’이라는 인습적 표현이 있을 뿐이다.”라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중생이라는 개념적 존재를 ‘오온’이라는 법으로 해체해서 보는 지혜를 계발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비담마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위빠사나를 비롯한 불교 수행방법이 테크닉 위주의 신비주의로 흐르지 않고 성스러운 팔정도를 실현하는 큰길이 되도록 하는 토대가 됩니다.              
수행은 마음이 하는 일입니다. 마음은 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대상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대상을 만나야 일어납니다.                
             ≪sati 행자의 복주석≫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