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에세이 - 법의 바다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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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에세이 - 법의 바다에 빠지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5.12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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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현
유 현

초록이 짙어가는 5월의 과원. 이른 새벽 새들의 지저귐에 귀가 쫑긋 서고, 아침 햇살에 활짝 피어난 꽃들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 감귤 꽃향기에 저절로 웃음꽃이 피어난다. 
어느 시인은 5월은 푸른 여신의 달이라고 노래하지만 우리 모두 사랑하는 마음의 싹을 틔우는 달이 아닐까. 근로자의 날, 어린이 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등등의 기념일이 꽉 차 있어서 무시로 떠오르는 당신들 생각으로 자애심이 충만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5월은 ‘법의 달’이기에 나에겐 더 특유하다. 아늑한 옛날부터 초파일을 앞두면 뭔가 내 안에 흐르는 게 있었다. 가느다란 여울이 되어 흐르다가 이윽고 강물이 되고, 마침내 그 강물이 법의 바다에 와 닿은 느낌이다.   
유년기에 바닷가 마을에서 살았던 나는 바다가 내 놀이터이고 친구였다. 바람 잘날 없는 ‘수메밋’ 포구의 등성이에서 치솟는 파도가 일으키는 물보라와 물거품을 바라보곤 했다. 때로는 조용한 아침 햇볕에 출렁이는 금빛 물결을 보면서 바다를 닮아야겠다는 서원을 세웠다.
환갑이 되어 옛길을 더듬어 보니, 내가 꿈꾸고 살아온 세상은 상어와 악어가 헤엄치는 물의 바다였다. 불교에선 오온, 12처, 18계 등등의 법들이 끊임없이 일어나 머물다가 사라진다고 해서 이 사바세계를 윤회의 바다라 부른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성취하신 뒤 “참으로 나는 내가 바르게 깨달은 이 법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무르리라.”고 다짐하시고 초전법륜에서부터 열반에 드시기까지 49년 동안 “법귀의法歸依 · 법등명法燈明”의 가르침을 오롯이 새기고 제자들에게 그 씨앗을 심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불교라 하고, 또 법이라고 말하는데 그 참뜻을 통찰하지 못해 오랜 세월 어둠의 터널에 있었다. 그 법[法, dhamma]이 인간을 고[苦, dukkha]에서 해방시키는 진리의 말씀임을 어렴풋이 알게 되면서 교의로서의 사성제뿐만 아니라 수행실천으로서의 팔정도에 대해서도 깊이 천착穿鑿해 나아갔다.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 금생에 부처와 조사를 뵙고 진리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는 것 다 어렵다. 믿음은 부처님 법의 바다로 들어가는 입구이고, 법에 대한 올바른 지식은 온갖 풍랑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법의 바다를 순항케 하는 배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보금자리, 궁극적 행복이 머무는 곳은 불법 안에 있으니 불법을 듣고, 사유하고 불법에 따라 수행하리라. 딴 짓일랑 그만두고.” 이게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는 내 서원이다. 
불기 2565년 초파일 봉축기간 동안 사부대중은 코로나19 시대의 암울한 질곡을 깨기 위해 희망과 치유의 연등을 밝히고 있다. 우리 모두 부처님 오신 날의 참뜻을 새겨 정견의 등불을 밝혔으면 좋겠다.
교법에 대한 믿음을 심지로, 자비를 기름으로, 공덕을 빛으로 하여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태워버리고 연꽃처럼 피어나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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