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불교가 만난 사람 - 불자 소프라노 오능희 “한라산 魂 담은 천상의 목소리, 佛音으로 감동을 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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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불교가 만난 사람 - 불자 소프라노 오능희 “한라산 魂 담은 천상의 목소리, 佛音으로 감동을 전하다”
  • 안종국 편집국장
  • 승인 2021.05.1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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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불가 제2집‘향심’발매로 울림 깊은 불교음악 선사
오페라단 만들고 세계 향한 문화의 메카로 발돋움할 터
부처님오신날 봉축대법회에서 찬불가로 불심 사로잡아
오능희는......제주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하고 이태리 유학길에 올라 로렌쪼 페로지 캄포바쏘 국립음악원과 페스카라 아카데미아 전문 오페라과정, 아람아카데미아 오페라 해석 및 연구과정을 졸업했다.  이후 독일 에쎈국립대학(KA)과정과 오스트리아 그라츠국립대학 오페라과정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동안 오페라 ‘돈 죠반니’, ‘꼬지 판 뚜레’, ‘일 트로바토레’, ‘라 보엠’, ‘라 트라비아타’, ‘피가로의 결혼’, ‘리골렛토’, ‘투란도트’ 등에서 주연을, 창작 오페라타 ‘이중섭’, 창작오페라 ‘백록담’에서 주연을 맡았다. 오페라 ‘나비부인’, ‘토스카’에서는 주역 출연 및 총감독과, 2020 창작오페라 ‘해녀’의 총감독을 맡았으며, 콘서트 오페라 ‘까발레리아 루스티까나’의 총감독과 주역 등을 맡았다. 또 제주-대구 교류음악회, 서울 영산아트홀, 제주문예회관, 제주아트센터, 서귀포 예술의 전당에서 10여 차례의 독창회를 가졌다. 불교여성개발원에서 선정한 여성불자 108인에도 올랐다. 현재 사단법인 한국음악협회 제주특별자치도 회장, 제주오페라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오능희는......제주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하고 이태리 유학길에 올라 로렌쪼 페로지 캄포바쏘 국립음악원과 페스카라 아카데미아 전문 오페라과정, 아람아카데미아 오페라 해석 및 연구과정을 졸업했다. 이후 독일 에쎈국립대학(KA)과정과 오스트리아 그라츠국립대학 오페라과정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동안 오페라 ‘돈 죠반니’, ‘꼬지 판 뚜레’, ‘일 트로바토레’, ‘라 보엠’, ‘라 트라비아타’, ‘피가로의 결혼’, ‘리골렛토’, ‘투란도트’ 등에서 주연을, 창작 오페라타 ‘이중섭’, 창작오페라 ‘백록담’에서 주연을 맡았다. 오페라 ‘나비부인’, ‘토스카’에서는 주역 출연 및 총감독과, 2020 창작오페라 ‘해녀’의 총감독을 맡았으며, 콘서트 오페라 ‘까발레리아 루스티까나’의 총감독과 주역 등을 맡았다. 또 제주-대구 교류음악회, 서울 영산아트홀, 제주문예회관, 제주아트센터, 서귀포 예술의 전당에서 10여 차례의 독창회를 가졌다. 불교여성개발원에서 선정한 여성불자 108인에도 올랐다. 현재 사단법인 한국음악협회 제주특별자치도 회장, 제주오페라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찬불가 앨범 2집인 ‘향심’을 발매하셨습니다. 1집 ‘해탈’ 이후 8년만인데, 소감 한 말씀 부탁합니다. 
▶이번에 발표하는 2집은 불교음악과 클래식이 조화된 앨범으로, 전국의 불자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으로 코로나19에 지친 심신을 위로하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곡목으로는 ‘아침서곡’, ‘부처님을 따르면’, ‘관세음보살찬가’, ‘무상게’ 등 12곡이 수록되어 있는데요, 불교의 가르침과 문화예술의 감동을 결합하여 힐링과 행복을 전한다는 메시지가 중심입니다. 특히 평소에 존경하던 성철 스님의 명언인 “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라는 구절을 마음에 새기고 녹음에 임했습니다. 코로나19로 지친 모든 분들에게 제 목소리로 다함께 극복하자는 마음을 담아서 뜻 깊고 행복한 녹음이 된 것 같습니다. 

▷이번 앨범 제작 반주에는 피아니스트 이영민 교수(서울사이버대학)와 호흡을 맞추셨죠?
▶네. 이 교수님은 거장이신 달톤 볼드윈으로부터 ‘Wonderful Pianist’라는 호평을 받은 분인데, 이탈리아에서 음악코치를 공부 하는 동안에도 많은 콩쿨 상임 반주자로 활동했고, 수많은 오페라 음악코치와 반주, 소프라노 조수미 반주 등을 맡았던 분입니다. 

▷법화종 제주교구 종무원장이셨던 광수 스님이 아버님이셨는데, 성장기 이야기를 들려주시죠?
▶아버님께서는 20대에 결혼하시고 저를 낳았는데, 불가(佛家)에서 성장하면서 부처님의 가피와 보살님들의 돌봄이 제 인생의 큰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불교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심적인 가치이고 불교적 삶의 실천과 회향이 항상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은 수도자로서의 엄격함과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철저한 교육자이기도 하셔서 제게는 매우 어렵던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재능이 있었지만, 감히 성악을 하겠다는 의견도 꺼내지 못했습니다. 고1때 성악을 하겠다는 내 주장에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로 좌절했지만, 음악선생님의 권고로 결국 MBC 고교생 가곡제에서 본선 3위로 입상하자 그제서야 자식의 갈 길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제주대 성악과 출신으로는 성악 1세대이신데, 이태리 유학의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아버님은 제게 유학을 4년 동안 도와 줄 테니 그 이후에는 돌아오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래서 4년 만에 졸업을 했는데, 내 목소리에 대한 유럽에서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에피소드라면, 이태리 유학 당시 성가대에서 많은 요청을 받기도 했고, 유럽문화와 한국유학생들이 대부분 크리스천들이라 교회에 나오면 정보력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종용을 받았는데, 저는 과감히 거절했어요. 결국 그러한 정보와 관계망은 기독교적인 관계로의 종속이 전제될 것이 뻔했거든요. 오로지 저는 제 능력으로 노력했고, 내 목소리의 희소성과 파워풀한 가창력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독일에서 대학원 과정에서는 메조소프라노로 요청을 받았습니다. 

▷다소 때늦은 고등학생 때 성악을 시작하여 유학생활도 주변의 도움 없이 스스로 개척했다고 들었습니다. 
▶음악과는 관계가 없는 불교집안에서 태어나 성악의 불모지와 다름없는 제주도 출신이 이태리유학부터 유럽에서의 적응과정은 모든 것을 스스로 개척하고 성장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메조소프라노를 맡으면서 결국은 음악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성대결절에 이르면서 큰 위기가 닥쳤어요. 이때도 사실 대부분의 가수라면 좌절과 포기를 할 터인데, 6개월 만에 다시 일어서 스스로 이겨냈던 것입니다. 

소프라노 오능희 찬불가 2집 ‘향심’ 의 표지(구입문의 : 010-2309-6255)
소프라노 오능희 찬불가 2집 ‘향심’ 의 표지(구입문의 : 010-2309-6255)

 

▷큰 유럽 무대를 두고 제주도로 회향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유럽에서 계속 있었으면, 아마 지금도 그곳에서 활약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아버님이 위독하셔서 고향에 돌아와야만 했어요. 성대결절 이후 마음의 상실감도 컸던 상황이라 향수병도 있었고요. 한국에 와서도 서울과 경기도 지역에서의 활동제안도 있었지만, 집안 사정으로 결국 고향인 제주에 눌러앉게 된 것이지요.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 결정이 후회되지는 않나요?
▶솔직히 크게 후회하고 있어요. 유럽에서 나의 목소리가 독보적이라는 정평이 있었고, 또 큰 무대의 요청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천상 고향과 불교의 그 인연의 끈이 어쩌면 나를 제주로 이끌었던 것이 아닐까 라는 ‘카르마’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오페라의 불모지와 다름없는 제주에서의 어떤 소명의식과 또 내가 할 수 있는 역할, 즉 오페라를 통한 제주의 문화와 예술의 영역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거든요. 

▷구체적으로 어떤 영역인지요?
▶제주도는 4·3의 역사가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정서를 지배하고 있어요. 그래서 어쩌면 숙명처럼 평화를 기원하는 것이죠. 그러한 메시지를 대작 오페라로 승화시켜야 하는 것이 예술인으로서의 소명이라고 볼 수 있죠. 또 제주의 수많은 신화는 우리 제주민의 삶의 원형이자, 어쩌면 인류의 원초적인 생명과 가치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러한 것은 제주도 출신인 제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아버님이 계시던 사찰도 4·3사건의 피해사찰이죠?
▶지금의 영축사는 본래 부악사의 뜻을 이어 새로운 부지에 자리 잡은 사찰입니다. 가마오름에 있던 그 부악사가 4·3때 모두 불탔어요. 당시 주지는 월봉 스님이셨는데, 소개령 직전에 저지파출소장이 귀뜸해 주어 불상을 바랑에 지고 판포 통천사로 옮겨 갔어요. 그 후 법당과 요사채, 일주문 3동이 모두 토벌대가 불태웠는데, 그 이후 부악사가 제자리로 재건되지 못하였고, 월봉 스님도 돌아오지 못하게 된거지요. 그후 지금 영축사는 제 할머님(광수 스님의 어머니)께서 다시 법당을 지었고, 부악사의 불상을 법당에 모시게 된 거지요. 

▷그동안 우담바라 어린이 합창단을 시작으로 서귀포 월라사 합창단, 제주시 제석사 바라밀 합창단, 약천사 리틀 붇다 어린이 합창단, 관음사 마하야나 합창단, 법화불음봉사단 등 꾸준히 불교 합창을 발전시키기 위해 앞장서 왔는데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요?
▶불교음악으로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이 분야의 전문가는 없고, 저 혼자 하기에는 한계가 있어요. 불교음악이 성장하려면 큰 무대를 기획하고, 대중들에게 장엄하게 어필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큰 프로젝트를 경험해야 국제화와 다양한 분야로의 분화도 가능합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제주음악계의 현실은 새로운 도전에 다소 소극적이고, 또 변화에 대한 목적의식과 열망이 크지 않아요. 즉 능력은 있지만, 의식이 아직 덜 깨어있다고 보아야 할까요? 그래서 불자 지휘자로서의 많은 고민과 요청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불교계는 아직은 단계적 격상의 불교음악으로 발전해 가는 데는 많은 소통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8년전에 발매한 찬불가 앨범 ‘해탈’은 이탈리아 유학 후 고향에 돌아와 불음포교에 매진하면서 10년을 맞아 불자 소프라노의 자부심과 같은 앨범이라고 평가했는데요, 이번 앨범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1집은 수록곡들이 불자들의 귀에 익숙한 찬불가 곡들로 편하게 따라 부르는 곡이었어요. 이번 앨범도 불자들이 사랑하는 곡들로 구성했지만, 조금은 자신을 더 내려놓고 원숙한 수행의 깊이를 더했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우리가 코로나를 겪으면서 얼마나 많은 고통과 좌절을 겪었습니까? 저도 제 인생이 그러한 좌절의 연속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때마다 저는 내면의 힘으로 스스로 다시 일어났어요. 그 생명력이 어쩌면 부처님의 원력과 자비의 우러남이라고 생각돼요. 그래서 이번 앨범은 희망과 스스로의 믿음을 강조한 법등명자등명(法燈明自燈明)의 빛줄기처럼 듣고 따라 불러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불기 2565년 부처님오신날 봉축대법요식에서 축가를 부르는 소프라노 오능희
불기 2565년 부처님오신날 봉축대법요식에서 축가를 부르는 소프라노 오능희

 

▷제주불자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저는 지금도 계속해서 배움의 길을 놓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4년 전에 다시 독일 가려고 오디션도 보았는데, 코로나로 인해 멈춘 상황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20여 년 전과는 달리 전 세계가 연결되어 있어 활동무대의 제약이 없어요. 제가 처음 완행열차를 타고 개척의 길을 갔다면, 후학들은 저를 딛고 급행열차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처음 할 때는 정말 힘들었지만, 이제는 제주도에 문화예술 발전과 저변확대도 활발히 이어질 것으로 생각해요. 이를 위해서는 물론 과제도 만만치 않아요. 예술의 일반화와 친숙화가 되어야 합니다. 귀가 트여야 하고, 관광산업과도 연계해야 합니다. 그렇게 오감을 자극하는 콘텐츠가 많아야 되겠죠. 그런 것을 위해서 제가 제주음악협회장으로서 음악인들의 모임을 조직화하고, 그 조직화로 일자리 창출사업과 아카데미를 활성화하는 교육사업과 역량강화 사업들을 추진해 나가려고 합니다. 많은 성원과 제주도의 문화예술 르네상스를 위한 메디치家의 지원처럼 후원과 협력이 늘어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오페라를 한 작품 올리려면 7~8억 원이 소요되는데, 이것은 비용이 아니라 새로운 고급 일자리 창출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문화예술의 고향으로 제주도가 자리매김되면 관광효과는 훨씬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저는 매년 한 작품씩 오페라를 무대에 올릴 것이고, 제주의 문화를 담은 창작오페라도 제작할 것입니다. 

▷불교계의 변화와 혁신에 하실 말씀이 많을 듯합니다.
▶불교가 보편적으로 머물고 자기만족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은 21세기로 사회의 변화발전 속도가 빛의 속도로 가고 있습니다. 불교도 개척과 벤처정신이 필요합니다. 세상은 너무나 많이 바뀌고 있는데, 아직도 과거형으로 머물러 있는 분위기가 있어요. 환경이 바뀐 세상에 적응하려면 우리도 대응해야 살아남게 됩니다. 정말 좋은 부처님말씀을 우리끼리만 즐기기만 하면 되겠습니까? 널리 알리려면 불음포교의 대형화가 필요합니다. 그중에 음악은 오감을 자극하는 것이죠. 우리는 한이 많은 민족이라 정서로 접근하면 잘 받아들입니다. 또 반대로 흥도 많아요. 생각들을 음악에 녹여내 보고, 종교음악도 미스트롯의 성공처럼 클래식에 갇히면 안 됩니다. 특히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어려우니 야외로 나갈 수 있는 버전으로 변형도 하고 새로운 컨셉도 잡아야 합니다. 

▷레슨이 잡혀있어 인터뷰를 마칠 수 밖에 없었지만, 오능희 소프라노의 끝없는 도전정신과 기획의욕을 듣다보니 어떤 상황에서도 꿈을 포기해서는 안 되겠다는 각오가 절로 움튼다. 그녀는 재능과 실력을 더 멋있게 승화하고 새로운 길을 만들려고 하는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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