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
1. 이것은 참으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아라한께서 말씀하신 것을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번뇌가 있다. 무엇이 셋인가?
감각적 쾌락의 번뇌, 존재의 번뇌, 무명의 번뇌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번뇌가 있다.”
이러한 뜻을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2. 이 경에서 이것을 이렇게 ‘게송’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삼매에 들고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는 부처님의 제자는
번뇌를 알고
번뇌의 일어남도 아노라.
어디서 이들이 소멸하는지도 알고
또한 이들의 멸진으로 인도하는
길도 아느니라.
번뇌의 멸진에 도달했을 때
비구는
갈증이 풀려 완전한 평화를 얻도다.”
이러한 뜻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셨으니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
【해설】
『담마상가니[法集論] 주석서』에 의하면, 번뇌(āsava, 아사와)란 ‘흐르는 것(savanti)’이라는 문자적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원래 종기에서 흘러나오는 고름이나 오랫동안 삭은 술 등을 뜻했다고 한다. 이것이 우리 마음의 해로운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정착되어 중국에서는 煩惱(번뇌), 漏(루), 有漏(유루) 등으로 번역했다.
이런 해로운 마음 상태들을 아사와(āsava)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것도 흘러나오는 고름이나 취하게 하는 술과 같기 때문이다.
번뇌의 흐름은 공간적으로는 지옥에서 최고 높은 존재 즉 비상비비상처의 31가지 세상까지에 미치고, 법(dhamma)으로는 고뜨라부[種姓]의 영역에까지 흘러간다고 주석서에서 설명한다.
기나긴 윤회의 괴로움을 흐르게 하고 흘러내리게 한다고 해서 ‘번뇌인 법들’이라 한다. 초기경의 여러 곳에서는 감각적 쾌락의 번뇌, 존재의 번뇌, 무명 의 번뇌 등 세 가지를 들고 있으나, 「아비담마」에서는 사견邪見의 번뇌를 추가하여 네 가지로 들고 있다.
무명(avijja)은 사성제를 모르는 것이고, 갈애(tanhā)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망(rāga)이 그치지 않고 흐르는 것을 말한다. 이 둘은 12연기에서 두 가지의 뿌리가 되는 원인으로 나타난다. 무명의 들판은 과거의 길이고, 갈애의 들판은 미래의 길이다.
욕계를 초월한 색계나 무색계의 존재에 대한 탐욕, 선禪에 대한 열망, 상견常見이 함께하는 갈망 등은 모두 존재를 통한 염원이기 때문에 존재의 번뇌라 한다.
번뇌의 대상이 되고 취착의 대상이 되는 법이 바로 오취온五取蘊이다. 「아비담마」에 의하면 물질(rǔpa)은 반드시 번뇌와 취착이 대상이 된다고 한다. 아라한의 몸도 중생들에게는 취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모든 범부의 오온은 오취온이 된다. 그러나 열반에 들어 있는 출세간 상태의 아라한의 4온[受·想·行·識]은 남들의 취착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번뇌들의 멸진[漏盡]이 통찰지로 실현해야 할 법들이다. 누진통의 핵심은 사성제를 통찰하는 것이요, 이것은 팔정도의 바른 견해의 내용이며 이 정견의 확립될 때 무명이 소멸한다는 것이 혜학의 핵심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평화란 번뇌가 없는 것(nikkilesa)을 뜻한다. 부처님의 평화에 대한 교설은 「평화에 대한 분석의 경」(M139)에 잘 나타나 있다.
「번뇌의 소멸에 대한 경」(S45:45)에서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 즉 팔정도를 닦는 것이 번뇌를 소멸하는 길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무엇을 반연하여 번뇌가 일어나는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모든 번뇌의 경」(M2)에서 찾을 수 있다.
“이치에 맞지 않게 정신을 쓰면 아직 생겨나지 않는 번뇌가 생겨나고 생겨난 번뇌는 더욱 증가한다. 그러나 이치에 맞게 정신을 쓰면(yoniso manasikāra, 如理作意) 아직 생겨나지 않는 번뇌는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겨난 번뇌는 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