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극복 법문 - 바람직한 거리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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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극복 법문 - 바람직한 거리두기
  • 홍현스님 _ 대원사 주지
  • 승인 2021.06.1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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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넘게 지속되는 지금의 재난상황에 지치기도 하고 ‘괜찮겠거니~’ 싶은 해이함도 생기는 요즘입니다. 제주에도 급격한 확진자 증가세로 인해 철저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등교나 등원일이 들쭉날쭉 하다 보니 혼란스럽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공공장소에서 타인과의 거리두기는 지키려고 애쓰지만 정작 가까운 가족 사이에 심리적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상황이라 모두들 예민해지고 지쳐가고 있지요. 이러한 때 우리에게 필요한 바람직한 거리두기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우선 자신 안에 일어나는 생각, 감정에 대한 거리두기입니다.

예상한 기대치가 있고, 정해놓은 계획이 있지요. 생각입니다. 맞닥뜨린 상황에 불쑥 올라오는 생각반응도 있지요. 그 생각에 따라 감정도 잇따라 촉발됩니다. 의도했든 안 했든 올라오는 그 생각, 감정을 바로 알아차리는 것이 <거리두기>입니다. 알아차리는 순간 맹렬하게 올라오는 생각이나 감정의 기세가 잠시 멈추기에 <일시정지>라고도 표현합니다. 이 잠시 멈추기, 알아차리기, 바라보기… 등이 우리 일상에서 꼭 필요한 기도수행, 명상입니다.

알아차리면 있는 그대로가 보입니다.
‘아, 내가 기대했었구나….’, ‘어? 이게 화날 일인가?’
‘아, 얘는 다른 생각이었구나….’ ‘흐음… 무슨 사연이 있겠지….’
‘어? 저 사람 입장에선 그렇지가 않았나?’
놓치면 휩쓸립니다. 생각, 감정이 올라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고는 곧 후회하지요. 미안해서, 민망해서, 아니면 그럴 만했다고 합리화하지만 관계가 더 서먹해집니다.’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줬으면….아니 말 안 해도 알겠지….’하고 또 혼자 생각의 집을 짓습니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동안 더 오해가 쌓입니다. 거리두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지금 여기, 내 말, 내 행동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알아차려야 합니다. 돈도 안 들고, 법당에 갈 필요도, 무릎 아프게 108배 절할 필요도 없는 아주 좋은 기도방법, 수행법입니다.

두 번째는 유행하는 사회현상에 대한 거리두기 입니다.

재난시대에 경제파탄 우려가 무색하게 집값 상승세와 재테크 투자 열풍이 전국,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들썩이고 있습니다.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 구조의 폐단으로 사회적 취약계층은  절박한 지경에 이르렀고 양극화 현상이 곳곳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가계부채 증가와 같은 경제적 문제, 심리·정신적 문제가 심화되고 있고 자의든 타의든 행해지는 죽음의 그림자가 길고 넓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회현상에 거리두기를 해야 합니다.
근본 원인과 조건, 예측 불가능한 유동성은 자세히 살피지 않고 단지 성과와 결과의 측면만을 비교할 때 올라오는 조급함, 불안감, 압박감 등을 알아차려서 휩쓸리지 않아야 합니다. 단지 뒤처질까 싶은 두려움에 맹목적으로 쫓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내 발밑을 잘 살펴야 합니다. 내 분수, 역량을 살피고 내가 이미 가진 인적, 물적 자원을 귀하게 보듬고 자중해야 하겠습니다. 성급한 판단으로 경제적 손실을 입지 않도록 가족이나 주위에 전문가들과 상의하고 신중해야 합니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 내 돈 내가 벌어 내가 쓰는데 무슨 상관이야~’ 라는 생각들이 기반이 되어 돈 없이는 못 사는 세상, 생명보다 돈이 우선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자본시장에서 경제 가치는 점점 치솟는데 허망하게 내 주머니 속 돈의 가치는 점점 하락합니다.
 이제는 눈을 뜨고 개개인이 아닌 우리 사회의 구조적 불안요소들과 악순환, 그 원인을 성찰하면서 시민으로서, 유권자로서 목소리를 내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 안의 무력감을 떨쳐내야 사회구조적인 병폐를 우리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소비욕구에 대한 거리두기입니다.

뜻하지 않게 맞닥뜨린 이 재난상황이 불행이라면 그 불행 중에 다행으로 건진 하나는, 바로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 그것이 명백해진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환경이고 원하지 않아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우리 삶의 터전, 지구공동체의 신음소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상의상관-연기법(相依相關-緣起法)을 이제 누구라도 확연하게 실감하고 공감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무심결에 먹고, 쓰고, 구하는 것이 우리 자신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직면해야 할 때입니다. 과식, 특히 과도한 육식, 과소비를 줄이고 이제 우리 목숨을 위협하는 반 생태적인 생활방식을 처절하게 돌이켜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기후 위기, 쓰레기 문제에 적극 행동해야 합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세 살배기 아이가 외출하는데 마스크를 제일 먼저 챙기는 것에 마음 아파해야 하는 게 어른으로서의 양심입니다. 각자도생의 시대이니 친구도 필요 없고 혼자 살아남으라고 말해야 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어떻게든 미래 사회에 대해 책임지려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지금 내 아이의 입에 맛난 것을 넣어주는 것보다 더 긴급한 게 바로 아이들이 맘껏 마실 맑은 공기와 물이며 지속가능한 생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의 생각, 감정, 신념, 암묵적 합의로 이 세상이 이루어지고 더불어 연기(緣起)하며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각자의 관점과 욕구, 소비생활 방식에 대한 거리두기를 통해 턱 밑까지 들이닥친 위기를 외면하지 말고 우리 모두의 공존(共存)과 상생(相生)에 대해 고민하며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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