狂如 안재철 교수의 육조법보단경 읽기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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狂如 안재철 교수의 육조법보단경 읽기 [23]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6.15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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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가 이곳에 이르러 머리를 깎고 戒를 받으며, 아울러 사부대중과 더불어 單傳의 法旨를
열어 보이시니 하나같이 옛 讖記(예언)와 같았다. 【梁나라 天監 元年 壬午年(502년)로부터, 唐나라 儀鳳 元年 丙子年(676년)에 이르기까지 고려하면, 이것은 175년에 이르렀다.】
삭발문(削髮文)동국대학교 도서관 소장. 편자 미상. 1권 1책. 필사본으로, 출가하여 삭발하는 의식과 그 절차, 오계(五戒) 등 수계(守戒)를 받는 의식을 기록하였다. 내용을 보면, 행자(行者)가 계를 받으러 처음 법당에 들어가 취할 자세를 가르치고, 모든 부처님께 귀의하여 수계식을 증명해 주기를 청한다. 다음은 5계를 설하고, 차례로 5계의 각 항목마다 계율을 파괴했을 경우 그에 대한 결과가 어떠하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데, 이는 처음 계를 받는 행자에게 깊은 외경심을 심어주고자 한 것이다. 이 의식절차는 지금도 각 사찰에서 사미의 수계식 때 행하여지고 있다.
삭발문(削髮文)동국대학교 도서관 소장. 편자 미상. 1권 1책. 필사본으로, 출가하여 삭발하는 의식과 그 절차, 오계(五戒) 등 수계(守戒)를 받는 의식을 기록하였다. 내용을 보면, 행자(行者)가 계를 받으러 처음 법당에 들어가 취할 자세를 가르치고, 모든 부처님께 귀의하여 수계식을 증명해 주기를 청한다. 다음은 5계를 설하고, 차례로 5계의 각 항목마다 계율을 파괴했을 경우 그에 대한 결과가 어떠하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데, 이는 처음 계를 받는 행자에게 깊은 외경심을 심어주고자 한 것이다. 이 의식절차는 지금도 각 사찰에서 사미의 수계식 때 행하여지고 있다.

 

師╷ 至是ᄒᆞ샤 祝髮受戒ᄒᆞ야 及與四衆으로 開示單傳之法旨ᄒᆞ시니 一如昔讖ᄒᆞ더라○ 【以梁天監元年壬午歲로셔 考至唐儀鳳元年丙子ᄒᆞ니 是得一百七十五年이로다】

【諺解】師╷ 이ᅌᅦ 니르르샤 머리 갓가 戒ᄅᆞᆯ 受ᄒᆞ야 ᄯᅩ 四衆으로 單傳ㅅ 法旨ᄅᆞᆯ 여러 뵈시니 녯 讖記와 ᄒᆞᆫ가지로 ᄀᆞᆮ더라 【梁 天監 元年 壬午歲로셔 唐 儀鳳 元年 丙子애 니르리 相考ᄒᆞ니 이 一百七十五年이 올토다】(대사께서 여기에 이르시어 머리를 깎고 戒를 받아서 또 四衆으로 (더불어) 單傳의 法旨를 열어 보이시니 옛 讖記와 한가지로 같았다. 【梁나라 天監 元年 壬午歲(서기502년)로부터 唐나라 儀鳳 元年 丙子年(서기676년)에 이르기까지 相考하니 이것이 일백칠십오년이 옳도다.】)

【解說】⑴ ‘祝髮’은 머리털을 바싹 깎은 것을 말한다. ‘祝’에는 ‘斸(괭이 촉)’과 통용되어 ‘자르다, 깎다’라는 뜻이 있는데, 이것은 가차된 것이다. [예문] 子路死, 子曰: 噫, 天祝予 『公羊傳·哀公十四年』 (자로가 죽었다. 공자가 말하기를, “슬프다. 하늘이 나를 끊는구나(버리는구나)) / 南國之人 祝髮而裸 『列子』 (남방의 사람들은 머리를 깎았고 나체였다.)
⑵ 四衆이란 比丘·比丘尼·우바새(優婆塞)·우바이(優婆夷)를 통틀어 말한다. 이것은 또 四部大衆·四部衆·四衆 또는 四部弟子라고도 한다.
좀 더 세밀하게 분유하여 七部衆이라고 말하는데, 모든 佛弟子들, 즉 불교의 출가자와 재가신자를 망라하는 모든 불자들을 比丘·比丘尼·沙彌·沙彌尼·式叉摩那·優婆塞· 優婆夷의 일곱 대중으로 분류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七衆 또는 道俗七衆이라고도 한다. 
구체적으로, 比丘는 具足戒를 받은 남자 승려, 比丘尼는 具足戒를 받은 여자 승려, 沙彌는 小戒를 받은 남자 신도, 沙彌尼는 小戒를 받은 여자 신도, 식차마나(式叉摩那)는 六法을 배우는 사미니, 優婆塞는 五戒를 받은 남자 在家信者, 優婆夷는 五戒를 받은 여자 在家信者를 말한다.
위의 七部衆 가운데 우바새와 우바이는 在家信者이기 때문에 이것들을 제외하면 五衆의 출가자로 구성되는 승가가 있다. 이 5중으로 이루어진 승가를 四方僧伽라고 한다. 
佛弟子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부처의 제자로, 원래는 마하가섭 · 사리불 · 아난다 등의 10대 제자를 비롯한 고타마 붓다 당시의 모든 제자들을 칭하는 말이었으나 후대에서 그 뜻이 넓어져서 모든 불교 신자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衆은 摩訶僧伽(산스, mahāsamgha) 즉 大衆의 줄임말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나 혹은 많은 사람들을 가리켜 대중이라고 하는데, 특히 출가 수행자인 비구의 집단을 가리켜 대중이라 하기도 한다. 아울러 세상 사람들을 모두 가리켜 대중이라고 하기도 한다.
⑶ ‘開示’는 『法華經·方便品』에 나오는 開示悟入에서 온 말이다. 
우리 중생에게는 누구나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일대사 인연으로 이 세상에 출현하시어, 우리가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을 開示悟入하신 것이다. 첫째, 부처님의 지견을 연다(開)는 뜻은, 우리에게도 본래 부처가 될 수 있는 불성(正因)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둘째, 부처님의 지견을 보여준다(示)는 뜻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즉 三毒의 마음을 버리고 부처님의 지혜로써 세상을 보아 우리의 불성(了因)을 가꾸어가도록 하는 것이다. 셋째, 배우기만 해서는 의미가 없으므로, 부처님의 지견을 깨닫게(悟) 한다는 것이다. 즉 신앙심을 일으켜서 발분(發奮)하여 노력해야만 우리의 불성(緣因)이 발휘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넷째, 부처님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불퇴전의 보살행을 쌓아서 마침내 성불할 때까지 꾸준히 노력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불성(佛性)을 알고, 배우고, 깨닫고 그리고 수양하도록 함으로써 성불의 길로 들어서게 격려하시는 것,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일대사인연이고 개시오입의 목적인 것이다.
⑷ 單傳: ‘單傳’이란 ① ‘깨달음을 한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다른 한 사람의 마음으로 전하다.’ ② ‘스승의 학설만 전하다.’ ③ ‘家傳으로 한 자식에게만 전하다.’ 등의 뜻이 있다. 즉 불전에서는 단지 그 사람에게만 傳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글이나 말에 依支하지 않고, 마음으로부터 마음에 傳하여 주는 것을 이른다.
달마는 승려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天竺에서 갖고 온 낡은 붉은 색 袈裟와 鉢盂를 慧可에게 물려주었다. 禪宗에서 衣鉢을 傳法의 증표로 삼는 것은 이때부터 비롯된 전통이다. 그러나 이 전통은 六祖 惠能까지만 전해졌을 뿐이다. 이렇게 오로지 한 제자에게만 전해지는 전통을 單傳이라고 하며, 이 전통은 혜능을 끝으로 複數로 분파되었다.  
『書狀·答鼓山逮長老』에서는 “盖近年以來에 有一種裨販之輩하야 到處에 學得一堆一擔相似禪하야 往往宗師가 造次放過어든 遂至承虛接響하야 遞相印授하며 誤賺後人하야 致使正宗으로 淡泊하니 單傳直指之風이 幾掃地矣라 不可不子細니라 (아마도 근래에 한 종류의 [佛法을 팔아 살아가는] 소규모 장사치들이, 도처에서 한 무더기 한 짐의 [보잘것없는] 相似禪을 배워서, 종종 宗師가 경솔하게 看過하거든(대수롭지 않게 지나가거든), 마침내 헛것을 받들어 메아리를 접하여(방편을 알지 못하고 대답하여), 번갈아 서로 인가하여 주며, 뒷사람을 그릇되게 속이는 탓으로, 바른 종풍이 담박하게 되니(번성하지 못하게 되니), 單傳直指의 가풍이 거의 쓸려 없어지는지라, 자세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라고 하여, ‘直指’와 함께 사용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單傳直指에서 單傳은 스승과 제자의 단독적인 만남, 곧 언어가 아닌 얼굴을 맞대고 마음과 마음으로 賢者에서 傳燈하는 정신이며, 直指는 언어나 교설을 통해서 돌아가는 가르침이 아니라, 단계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본래면목을 터득하여 부처의 경지에 오르게 하는 徑截을 가리킨다.
⑷ ‘讖’는 讖記로 미리 적은 기록으로 예언을 이른다.
⑸ ‘如’ 앞의 ‘一’은 ‘如’를 꾸미는 副詞語이다.
⑹ ‘以梁天監元年壬午歲’에서 ‘以’는 介詞로 쓰여 ‘…(으)로부터’라는 뜻으로 행동이나 변화의 기점을 나타내기도 한다. 즉 ‘從·自·由’ 등과 같은 뜻이다.
⑺ ‘得’은 ① ‘알맞다 적합하다’ ② ‘적중하다’ ③ ‘到’와 같이 ‘미치다, 도달하다’ 등의 뜻도 있다. 
諺解는 ①을 따라 해석하였으나 ③을 따라 해석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된다. 
참고로 ‘得’은 ‘德’과 통용된다고 하는데, 이것은 ‘得’과 ‘德’이 雙聲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과 같이 ‘得’과 ‘的’도 또한 모두 端母字로 쌍성관계이며, 現代漢語에서도 간혹 조사 ‘得’을 대신하여 ‘的’을 쓰는 것으로 미루어, ‘是得’은 ‘是的’과 같다고 본다면, 위는 “…이르기까지 고려하면, 옳은 것은 175년이다.”라고 해석하여도 무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得’과 ‘的’이 섞이는 것은 현대에 이르러서의 현상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그것을 따르지 않는다. 

[예문] ③ 忽然向抵住處 絶消息 不勝慶快平生 得消息絶了 起佛見法見衆生見 思量分別 作聰明說道理 都不相妨 『書狀·答 呂郞中 隆禮』 (홀연히 내던져진 곳(의심한 곳)에서 소식을 끊으면, 평생을 매우 유쾌하게 지낼 것입니다. 소식이 끊어지는 것에 도달하면, 佛見·法見·衆生見을 일으켜 思量分別하며, 총명하게 하고 도리를 말하더라도, 모두가 서로를 방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但只提撕話頭 驀然向提撕處 生死心 絶則是歸家穩坐之處 得到恁麽處了 自然透得古人 種種方便 種種異解 自不生矣 『書狀·答 湯承相 進之』 (다만 온 마음으로 화두를 참구하다가, 문득 [화두를] 참구하는 곳에서, 생사심이 끊어지면, [그곳이] 곧 집에 돌아가 편안히 앉는 곳입니다. 이러한 곳에 이르게 되면(이러한 곳에 이를 수 있게 되면), 자연히 옛사람의 갖가지 방편을 뚫을 수 있게 되어, 갖가지 다른 견해가 자연히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들을 정리하여 언해의 해석을 다시 쓰면 아래와 같다.
【飜譯】대사가 이곳에 이르러 머리를 깎고 戒를 받으며, 아울러 사부대중과 더불어 單傳의 法旨를 열어 보이시니 하나같이 옛 讖記(예언)와 같았다. 【梁나라 天監 元年 壬午年(502년)로부터, 唐나라 儀鳳 元年 丙子年(676년)에 이르기까지 고려하면, 이것은 175년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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