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불교가 만난 사람 - 제주시지체장애인제주지회후원회 고경남 회장 “누군가의 희생이 누군가에겐 행복의 밑거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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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불교가 만난 사람 - 제주시지체장애인제주지회후원회 고경남 회장 “누군가의 희생이 누군가에겐 행복의 밑거름이 됩니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6.15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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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의 실천으로 맑은 세상만들기에 앞장서는 고경남 회장
봉사의 실천으로 맑은 세상만들기에 앞장서는 고경남 회장

 

△안녕하십니까? 지역사회의 권익을 대변하고 사회봉사활동으로 크고 작은 기여를 해온 회장님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불교집안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소개해 주시죠.
▲제 아버님은 일붕선교종 제주종무원장을 지내신 경운 스님입니다. 우리 집안은 고모와 작은 할아버지, 사촌도 출가한 사문가문입니다. 아버님은 총각시절에 우도에 들어가 천진항 인근에 절을 짓고 포교활동을 했는데, 거기서 저를 낳았습니다. 당시 어머님은 건강이 안좋아 절에 와서 기도도 하곤 했는데, 이 때 아버님이 기도를 해주면서 많이 호전되었다고 해요. 그래서 그 인연으로 두 분이 결혼을 하게 된 것이죠. 그렇지만 당시 우도의 주민들 형편이 매우 어려운 시기라서 사찰운영이 어려웠다고 해요. 그래서 어머니는 돈을 벌겠다고 육지에 가서 해녀활동을 했고, 어머니가 보내준 돈으로 생활을 했어요. 그래서 어머니와는 초등학교 졸업할 무렵까지 떨어져 살았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불자로서 성장하게 된 것이군요?
▲어려서 저는 불교가 무엇인지 잘 몰랐어요.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우도에서 나와 난산의 사찰로 옮겨 살다가 용담의 한 사찰로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는 경내에서 가족이 함께 살 수 없어 동생과 나만 따로 살게 되었는데, 그래서 소년가장처럼 스스로 해결해야 되었습니다.

△어려서 고생이 참 많았군요?
▲먹을 것이 없어서 학교 갔다 오다가 양파가 자라면 남의 밭에 들어가 대를 잘라 먹기도 했고, 귤 농장에서 버린 썩은 귤을 가져다 동생이랑 나누어 먹기도 했어요. 그때 그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 후에 불우한 아이들을 돕게 된 이유가 되었다고 할까요? 아무튼 아버지는 공부만 하시는 스님이었고, 어머니가 없는 공백의 허전함으로 매우 서러웠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어머니께서 돌아오시고, 막노동으로 우리를 돌보면서 조금씩 형편이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불교활동은 언제부터 하시게 된 것이지요?
▲아버님이 일붕선교종 종무원장을 맡게 되면서 종무원활동을 돕게 된 40대에 제대로 활동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붕 서경보 스님에 대한 업적사업과 기념법회를 만들고, 일붕선교종 통합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그때 저도 적극적인 활동을 하면서 불교에 대한 기반을 다졌다고 생각돼요.

△사회기여를 위한 봉사활동을 활발히 하셨는데, 주로 어떤 일들이었습니까?
▲어렵고 힘든 아이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 저의 성장기의 경험도 있었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청소년적십자활동을 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때 보육원 봉사를 다니면서 부모 없이 외롭게 자라는 아이들에게 나의 외롭던 시절이 떠올라 무언가 도움이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한거죠. 그러다가 광주대를 들어갔다가 가정형편상 어려워 졸업을 하지 못하고 군 제대 후에 렌터카 회사에 취직해 돈을 벌면 어려운 아이들 장학금도 주기도 하다가 구두닦이와 껌팔이 청소년들의 자활단체인 BBS제주연맹을 돕기 시작했어요. 그 사이에 방송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1992년에는 온누리봉사회라는 자원봉사단체를 직접 만들었어요. 그래서 요양원 목욕봉사와 양로원과 중증장애인 시설에 가서 취사봉사를 매주 꾸준히 펴게 됐죠.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았을 터인데, 어떻게 꾸준히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거죠?
▲당시 제주도에 중산간 목장을 한창 개발할 때인데, 그때 거기 가서 돌을 주워 고르는 일을 했어요 그런 돈들을 모아서 봉사기금을 만들었던 거지요. 또 결혼했던 아내가, 내가 술담배를 절대 하지 않을 테니 수입의 일정금액을 봉사활동에 쓰도록 해달라고 약조를 하기도 했어요. 그 약조는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고, 아내도 봉사활동에 매년 2-3천만원의 돈이 들어가는데도 협조해 주고 있어요. 

△경력을 보니 제주시사회복지협의회 자원봉사연합회 회장을 역임했고, 사랑의 열매 나눔봉사단 단장, 한국백혈병 소아암 제주도협회 운영위원장, 법무부 보호공단 취업위원회 위원장, 사회복지법인 제주공생 운영위원장, 사랑의집 인권지킴위원장, 제주특별자치도 장애인지원협의회 감사, 태고원 요양원 운영위원, 제주공생 자원봉사자연합회 회장 등등 많은 일들을 하셨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습니까?
▲BBS제주지구와 전국에서 아이들이 오면 여름마다 4박5일간 모임을 이끌고 함께 동고동락했던 것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장애인들의 집단시설인 남원 살레이시오의 집에서 봉사할 때 여성 장애인이 표현을 잘 하지 못해 뱃속에 생리불순으로 핏덩이가 고여 큰 수술을 했지만 끝내 숨지게 되어 가슴아픈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돌봄이 없어서 안타까운 시절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보육원에서 도움을 주었던 아이가 자라서 서울대를 들어간 경우도 있어 그땐 참 행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남을 위한 봉사에 선한 영향력을 많이 남기셨는데, 가정경제는 어떻게 지탱한거죠?
▲직장을 다니다가 처음에 돈이 없어 김녕에서 리사무소 공간 빌려서 학원을 설립해 운영했어요. IMF 때는 신용불량자가 되어 고통스러웠지만, 고비마다 주변에서 도움을 주어서 결국 다시 재기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전부터 건설과 도로시설 사업을 시작해 그 여유비용으로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봉사활동에 열정을 내시는거죠?
▲누군가의 희생이 누군가에겐 행복의 밑거름이 됩니다. 내가 받은 혜택을 누군가를 위해 돕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만하게 된 것은 나 혼자의 힘이 아니라 우리 사회와 이웃들이 함께 노력한 덕분입니다. 그런데 내가 더 어려운 이웃들을 돌아보면 그만큼 또 더 풍요로운 다음 세대가 형성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생각이 전달되었는지, 아내도 회사의 수익을 봉사활동에 쓰는데 동참해서 고마울 뿐입니다. 

△지금 사는 곳이 화북동인데, 화북지역보장체협의체 위원이시고, 화북동 장애인지원협의회 회원, 화북동 방위협의회 회원, 이어도적십자봉사단 회장, 제주도사회복지사협의회 이사, 제주시지체장애인제주지회후원회 회장 등의 직책도 두루 맡고 있는데, 특별히 지역사회를 위한 노력을 하셨다죠?
▲화북레미콘 공장설립반대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민간변호인단 만들어 권익활동을 적극 펼치기도 했는데, 결국 레미콘공장을 막아내는데 성공했어요.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앞으로 작은 단위의 지역사회에서 복합적인 행정지원이 되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 

△도의원 선거에도 출마하셨는데, 그러한 지역사업과 관련이 있나요?
▲물론 그렇죠. 하지만 보다 중요한 이유는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문제가 큽니다. 제가 선거에 나선 이유가 오랜 학원경영을 통해 사교육 담당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려는 것도 있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복지와 자원봉사 조직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법과 행정의 사각지대가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장애인 시설에 대해 행정 당국이 이해가 부족한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장애인교육시스템도 육지에 비해 많이 뒤쳐져 있어요.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체계성도 부족해, 그들을 대변하려면 도의원이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죠?
▲먼저 교육문제는 공교육이 중요하지만 사교육도 수레의 양바퀴처럼 사회시스템에서 순기능을 발휘해 왔어요. 특히 학업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을 평준화시키고, 보다 앞서 나가는 아이들을 더욱 잘하도록 지원할 수 있는 점입니다. 공교육은 그러한 부분을 세세히 해결하기 어려워요. 그리고 사람들의 행복의 척도는 복지에 대한 혜택의 확대에서 평가가 됩니다. 자원봉사자들도 혜택을 받아야하고, 자원봉사자 전문화도 필요한데, 특히 각 지역에 세밀하게 변호사 세무사, 의사 등등의 전문적 지원을 받는 그룹이 필요해요. 지금 제주도는 대부분 도에서 중심이 되어서 복지행정이 추진되고 있는데, 이를 각 동지역으로 현장화해야 합니다. 지금의 지역협의체는 명목만 있지 시스템운영이 원활하지 못하고, 각 복지부서별로 원활한 통합시스템 운영이 잘 되지 않고 있어요. 취약층의 취업 문제나 병간호, 각 복지에 대한 유기적 통합이 필요한데 아직 각각으로 추진되는 경향이 있어 사각지대가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열정과 사랑으로 지역사회의 봉사활동에 헌신하시는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불자로서 좌우명을 소개해 주시죠.
▲어려울수록 나눔을 하는 것이 부처님의 자비일 것입니다. 무재칠시라고 했듯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나눔을 생활화하는 것이 결국 향기 나는 세상 만들기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반성과 생각을 하게 하는 말씀들이었습니다. 오늘 인터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제주불교신문 독자여러분들의 행복한 일상을 기원합니다.                
             

 / 인터뷰 : 안종국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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