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연(昊然) 스님이 엮은 회옹혜경(晦翁惠耕) 스님의 새로운 법화경 해석 [8] - 법화경은 법공을 설하는 경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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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昊然) 스님이 엮은 회옹혜경(晦翁惠耕) 스님의 새로운 법화경 해석 [8] - 법화경은 법공을 설하는 경전이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6.3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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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경전의 금자탑인 법화경에 대한 혜경 스님의 해석법문을 연재합니다. 혜경스님은 평생을 경전연구와 집필활동에 매진하였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지난 5월 혜경 스님께서 입적하셔서 혜경 스님의 법화경에 대한 새로운 주석에 대하여 이 분야에서 뛰어난 법문을 전하신 호연 스님이 편역하여 독자들에게 새롭게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법화경에서 최고의 권위가인 두 스님의 소중한 강설을 소개하게 되어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호연(昊然) 스님은 동국대 불교대학원 석사, 중앙승가대 대학원 박사 및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재단법인호연 이사장. 서울정혜선원·도봉사 주지이며 중앙승가대학교 교수로 있습니다. 현재 BTN불교TV에서 호연스님의“행복나무에 핀 법화경”방송을 강의중에 있습니다. (매주화요일 오전8시30분/오후5시,일요일오후8시방영)
회옹 혜경 스님
회옹 혜경 스님

 

호연 스님
호연 스님

(5) 4가지의 근본번뇌
마음속에 4가지의 근본적.기본적인 번뇌가 항상 있다고 한다. 
① 번뇌의 제1은「아치(我癡)」이다. 이것을 진제역(眞諦譯)에서는「무명(無明)」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다시 말해 나, 남, 물질은 따로따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본래 하나이며「공성」이라고 하는 것,「무아」라고 하는 것, 그「무아」에 대한 근본적인 완전한 무지, 완전한 무이해, 그것이 머릿속.의식만이 아니라 마음의 깊은 속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② 다만 단순히「무아」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모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라고 하는 것이 있다고 굳게 생각하고 있어서, 나는 이러한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다.「나」라고 하는 견해가 뚜렷하게 있다. 이것을「아견」이라고 한다.
③ 그러한「나」라고 하는 것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하는 식으로 자기를 의지처로 하는 뽐냄이다. 그것을「아만(我慢)」이라고 한다. 유식에서 말하는「아만」은, 진실로는 있지도 않는 것을 실체적인 자기라고 하는 것을 의지처.궁극적인 근거로 해버리는 마음을 말한다. 
 ④ 무지(無知)일 뿐만 아니라,「자아」라고 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다시 그것을 의지처로 하여 뽐내고, 다시 애착 .집착한다. 그것을「아애(我愛)」라고 부르고 있다. 인간은 마음 속 깊이 어찌 할 수 없을 정도로 「내 몸을 사랑함을」감추고 있다고 한다. 「심층(深層) 에고이즘」라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
이것을 개념이라고 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비추는 것이라고 하여 배웠을 때, 뭔가 뭐라고 말할까. 매우 충격적임과 동시에「아 그런 것인가」라고 하는 납득이 자기 속에서 일어난다. 대부분의 인간은, 뭔가 좋은 사람이 되겠다든가, 모든 사람이 함께 행복하게 되고 싶다든가, 혹은 세상을 좋게 하고자 한다든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적어도 세상을 나쁘게 해버리려고 까지 생각하는 사람은 그처럼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생각해도, 마음의 밑바닥에서 역시 자기에게 집착하는, 자기를 의지처로 하고, 자기를 기반으로 하고, 자기를 자랑하는, 자기에게 애착하고, 자기, 자기, 자기뿐이라는 생각이 가득해 있다. 자기를 반성해 보아도, 그리고 다른 쪽을 보아도, 아무래도 인간은 거의 모두 그런 것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의식의 세계에서 좋은 사람이 되자고 생각해도, 마음속에 자기에 대한 집착이 매우 깊게 뿌리 내리고 있어서,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의식과 의지만으로는 컨트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6) 불교의 근본사상이 무아(無我)에서 
유아(有我)로 변천(變遷)
붓다⋅석존은 초기경전의 여러 곳에서 오온(五蘊)의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를 반복해서 강조했다. 그러나 불멸후에는 무아론(無我論)에서 점차 유아론(有我論)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른바 설일체유부의 명근(命根), 대중부의 근본식(根本識), 화지부의 궁생사온(窮生死蘊), 독자부와 정량부의 보특가라(補特伽羅), 상좌부의 유분식(有分識, bhavanga), 경량부의 일미온(一味蘊), 그리고 대중부나 분별론자들이 주장한 세심(細心), 경량부의 종자(種子) 등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설이 아비달마불교에서 주장되고 있었다. 아뢰야식(阿賴耶, alayavijnana) 사상은 이러한 사상을 이어받아 성립된 것이다. 특히 설일체유부에서 무아(無我)를 비아(非我)로 해석하려고 시도했다. 이것은 현존하는 한역 <잡아함경>에 무상(無常)·고(苦)·공(空)·비아(非我)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한역 <잡아함경>과 대응하는 <상윳따 니까야>에는 비아(非我)라는 단어가 나타나지 않는다. 아니 ‘비아(非我)’라는 빨리어 단어 자체가 없다. 이로 미루어 상좌부(上座部) 계통의 분별설부(分別說部,  Vibhajjavada)에서는 유아론(有我論)을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무아(無我)가 유아(有我)로 바뀐 것은, 석존께서 열반에 드신 이후 무려 500년이 지나고 보니 지도자를 잃은 불제자들의 사상이 어느덧 불교가 인도가 가진 사상인 브라만교 사상으로 회귀(回歸)하게 된 것으로 보아 마땅하다. 그래서 범아일치(梵我一致)사상이 우주와 내가 하나라는 사상으로 변했고, 무아(無我)가 비아(非我)로 바뀌게 되었으니, 「내가 없다」는 것보다도 「내가 알고 있는 나는 내가 아니다(非我)」라고 하는 것이 중생이 이해하기가 좋기때문에 그렇게 되었으리라고 짐작이 가는데, 그렇다면 따로 진짜 내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참나(眞我)가 있다고 하게 되었다고 본다. 석존께서는 번뇌를 멸진하여 마음이 평안의 경지에 오르는 열반을 설했는데, 이렇게 석존의 말씀을 왜곡시켜서 무아를 유아로 변형한 것은 참불교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번뇌의 멸진(抑制)이라는 현실론이냐, 성불(成佛)이라는 이상론(理想論)이냐 하는 갈림길에서 중생들은 헤매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과연 우리가 불교를 믿는 것인지, 힌두교(婆羅門敎)를 믿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이 현재 한국불교의 실태가 아닌가 하고 우려가 깊다. 그러나 다행히 근자에 와서는 근본불교로 되돌아가자는 운동이 아함경을 배우는 사람들로부터 태동을 하게되어 그러한 기우(杞憂)를 불식(拂拭)시켜주고 있음은 천만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원전(原典)의 전래(傳來)와 출판
중국 사람들은 불교경전을 번역하고 나면 이상하게도 싼쓰끄리뜨 어(梵語) 원전(原典)을 보관하지 않고 없애 버리는 것이 상례였기 때문에,『법화경』도 이와 마찬가지로 번역할 때에 사용한 원전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다행이도 후에 다시 베껴 쓴 원전 사본(寫本)이 19세기 중반 이래 계속 발견되었다. 그 첫 번째가 네팔 주재공사인 영국의 호즈손(B, H, Hodgson, 1800∼1894)이다. 그는 많은 범어 사본을 수집했는데 그 가운데에『법화경』의 사본도 있었다. 그로부터 오늘에 이르기 까지 많은『법화경』원전의 사본이 발견되어 그것을 정리하고 교합(交合)함과 동시에 간행도 하였으므로 이『법화경』원전을 통해『법화경』의 연구도 차츰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그런데 다르마라끄샤(竺法護)가 번역한『정법화경(正法華經)』은 대단히 이해하기 어렵지만, 구마라집이 번역한『묘법연화경』은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득 차 있고, 자기의 의사를 잘 드러내서 통하게 하고 있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사람이 이 묘법연화경을『법화경』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으로 전래된『법화경』은 당시 중국에서 성행하던 구마라집이 번역한『묘법연화경』만을『법화경』으로 알고 이를 믿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서는 아래와 같이 인도 지방에서 발견된 『법화경』의 싼쓰끄리뜨 어, 즉 범어(梵語) 원전이 있으므로 여기에 준해서『법화경』을 새롭게 이해하고 수행의 지침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싼쓰끄리뜨 원전은 어디서 얼마만큼 발견되었고 또한 출판되었는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법화경』의 싼쓰끄리뜨어 원전은 현재 세 가지가 전해지고 있다. 그것은 원전이 발견된 지역이 각각 세 곳이기 때문이다. 즉
(가) 네팔 본(本).
(나) 중앙아시아 본(本).
(다) 길깃트 본(本), 등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중에 네팔에서 발견된 것만은 완전한 것(完本)이지만 다른 두 가지는 떨어지고 빠지고 하여 완전치 못한 단간(斷簡)이다.  
(가) 네팔 본……19세기 전반(前半)에 영국의 네팔 주재공사이던, 호즈손(B,H.Hodgson)이 싼쓰끄리뜨 어로 된 불전의 사본을 수집한 것 중에서 그 수가 많은 것 가운데 그 하나가 바로 『법화경』(Saddharmapundarika)이다.
즉 캠부리지 대학에 여섯(6), 프랑스 파리의 피플리오틱-내쇼날에 둘(2), 인도 캘커타의 아시아협회에 셋(3), 일본 도쿄대학(東京大學)에 여덟(8), 등 무려 스물(20)이 넘는 원전이 있다.    
더욱이 네팔에서 전해진 싼쓰끄리뜨어(語) 불전(佛典) 중에 가장 빨리 학계에 그 전모가 소개된 것이 바로 이 “삿다르마뿐다리까”인데, 프랑스의 부르뉴프는 영국의 호즈손에게서 기증 받은 그 사본에 기초하여 프랑스어로 번역하였으며 그가 죽은 후에 그의 제자인 모르에 의해 1925년에 출판되었다.
또 네덜란드의 케른(H. Kern)이 1909년에 영국의 옥스포드(Oxford)에서 영어로 번역하여 출판했다.
『법화경』의 싼쓰끄리뜨어 원전은 케른과 일본의 난조(南條)에 의해서 1908년부터 출판되었다. 이밖에 일본의 와꾸하라(荻原)와 쓰찌다(土田)의 교정본이 1934-35년에 출판되었고, 1953년에는 덧트(N, Dutt)가 인도의 캘커타에서 출간했다.
(나) 중앙아시아 본……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성행했던 중앙아시아 탐험 결과 각지에서 수집한 싼쓰끄리뜨어 원전의 단편으로서 일반적으로 발견지 혹은 가져온 사람의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다. 중앙아시아 본 가운데서 단편 수가 가장 많은 것이 페트로프스키 본이다. 즉 러시아의 카슈갈 총영사 페트로프스키가 1903년에 입수한 것인데 일반적으로 카슈갈 본으로 불리고 있으나 그 출토지는 코탄 부근이었다고 하며 7․8세기경의 사본이라 한다. 
(다) 길깃트 본……1932년 6월에 캐시밀의 길깃트 북방 20킬로 지점에 있는 스뚜빠 즉 탑(塔)이 있던 자리에서 다량의 싼쓰끄리뜨어로 된 불전 사본이 있음이 알려졌으며 프랑스의 레비(Levi)에 의해 그 일부가 발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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