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35)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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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35)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3)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7.0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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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태자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죄수들을 사면한다는 대흥륭사본 〈대사수복(大赦修福)〉 간력하게 그려진 장면
(사진 1) 태자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죄수들을 사면한다는 대흥륭사본 〈대사수복(大赦修福)〉 간력하게 그려진 장면

신심 깊은 신자라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가 어떠했는지 생생하게 알고 싶어 한다. 그러한 책이 적지 않게 있었지만 책이라는 것이 글자를 해독할 수 있는 사람만 읽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접근하기는 쉽지 않았다. 조선시대 초기에 『석보상절』이나 『월인천강지곡』 같은 훈민정음으로 쓰인 책이 만들어진 이유도 보다 널리 읽혀 훈민정음을 보급하고자 한 것이었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장면에 따른 그림과 함께 한문으로 내용이 적힌 판화집 『석씨원류응화사적(釋氏源流應化事迹)』 외에 언해본 『팔상록』이 있어서 한문을 모르는 이들에게도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읽히게 하였다. 
 근대에 들어서는 1912년에 현공렴(玄公廉)의 『석가여래전』(대창서원), 1913년 이교담(李交倓)이 중앙포교당에서 간행한 『팔상록』,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던 백용성(白龍城) 스님이 주도해 간행한 『팔상록』(1922, 대각교회), 1930년대 초 김대은(金大殷)이 간행한 『석가여래약전(釋迦如來略傳)』과 안진호(安震湖) 스님이 간행한 『신편팔상록』(1942, 만상회) 등이 있다. 1981년에 오고산 등이 낸 『도해 팔상록』도 있지만 이들 중 가장 대중에게 사랑을 받은 책은 안진호의 『신편팔상록』일 것이다. 초판 이래 1954, 1960년 등 여러 차례 중판되었고, 1975년에는 개정판이 보급되었다. 석가모니의 생애 총 177장면이 팔상으로 나뉘어 실렸는데, 먼저 그림을 배치하고 그림 뒤에 그림 제목에 따른 내용의 글을 싣는 형식을 취했다. 그림이 글을 함께 실렸으니 보는데 흥미가 생길 뿐만 아니라 내용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초판 이후 개정판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편집이 정연해지고 어투도 현대식으로 다듬어지면서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초판에 ‘한문견서(漢文肩書) 회화삽입(繪畫揷入) 신편팔상록(일명-석가여래응화사적(釋迦如來應化事迹))’이라고 밝히고 있어, 이 책을 제작할 때 참고한 원전을 추정할 수 있다. 
『석가여래응화사적』(가경본, 1794년, 1808년 간행)은 1808년 청 황실의 일원인 진국공(鎭國公) 영산(永珊)이 명나라 때 만들어진 『석씨원류』에서 불교가 중국에 들어 온 이후의 항목들을 빼고 석가모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편집해 간행한 책이다. 그가 쓴 서문인 〈중회석가여래응화사적연기(重繪釋迦如來應化事迹緣起)〉의 다음과 같은 내용을 통해 명나라 때 만들어진 『석씨원류』 류와 달라진 이유를 알 수 있다.  

(사진 2) 죄수 사면을 웅장한 궁을 배경으로 그린 석가여래응화사적본의 [대사수복] 장면
(사진 2) 죄수 사면을 웅장한 궁을 배경으로 그린 석가여래응화사적본의 [대사수복] 장면

 

 내 이전에 한 승려로부터 명본 『석씨원류』 한 부를 받았는데, 그림과 글의 깊은 내용이 사람들이 한 번 보기만 해도 세존의 자취를 쉽게 알 수 있게 했다. 게다가 가슴 속에서 존경심을 일어나게 하고 미혹한 마음도 없애주었다. 누구든 보는 이로 하여금 더 정진하게 하지만 아쉽게도 글과 그림이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의미가 다 전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만들어 널리 유통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의심이 생기거나 모호한 부분이 생기면 각생(覺生)과 철공(澈公)에게 여러 번 교정 받아 완성했다. 그리고 인도식 의관, 지물, 궁실, 성곽을 오늘날 모습으로 바꾸었다. 

 이 내용에 따르면 신심이 깊은 재가신도의 입장에서 영산은 『석씨원류』가 석가모니의 자취를 이해하고 부처님에 대한 존경심을 일으키는 데 좋은 책이지만, 명대에 그려진 그림이 당시 시대상에 맞지 않다고 보았던 것 같다. 게다가 그 자신이 화가였기 때문에 아마도 위에 그림이 그려지고 아래에 내용이 적힌 상도하문 형식의 정통본이나 대흥륭사본(그림은 다르지만 태자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죄수들을 사면한다는 〈대사수복(大赦修福), 사진 1〉항목이 동일하게 실렸다는 점에서 이를 모본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많음)의 세밀하지 않은 판화는 눈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영산은 이전의 이치에 잘 맞지 않다고 생각한 그림(사진 2)을 당시 현실에 맞는 배경, 건물, 복식 등으로 바꾸어 표현케 한 것이다. 명나라 초기 보성(寶成)이 『석씨원류』를 편찬한지 400년이 지난 시점에서 만주족 황실의 일원이자 안목 높은 화가인 영산에게 기존의 『석씨원류』는 구시대의 유산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뀐 것이다.

(사진 3) 각원사 대웅보전 내부 동벽 전경
(사진 3) 각원사 대웅보전 내부 동벽 전경

 

영산은 이전의 간략하고 은유적인 표현 대신 현실에 최대한 가깝게 표현할 수 있는 직설적인 방식을 택했다. 이러한 사실적 표현은 18세기 후반을 거쳐 19세기 초까지 살았던 진국공 영산에게는 당연한 시대적인 요구였다. 영산에게 중요한 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기를 더욱 생생하게 되살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중국 승려들과 관련된 후반부를 빼고, 세존에 집중해서 만든 것이 바로 『석가여래응화사적』이다. 이후 대부분의 청대 『석씨원류』 류는 중국 승려의 행적을 빼고 오직 석가모니와 관련된 이야기와 일부 인도 승려의 일화만을 다루었는데, 아마 보성이 『석씨원류』를 편찬할 당시 함께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가여래응화록(釋迦如來應化錄)』을 염두에 두어 만든 것 같다. 이 책은 총 208항목으로 석가모니의 탄생에서 열반까지의 이야기와 그 이후 최초 결집과 불교를 전파하는 데 영향이 큰 가섭부터 달마대사까지의 아홉 명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항목은 『석가여래응화사적』의 208항목 중 9항목만 다르고 나머지는 같다. 이 새로운 9항목 중 5항목은 가령 선혜선인이 연등불로부터 수기를 받는 〈매화공불(買花供佛)〉 항목을 실제로 꽃을 공양하는 장면인 〈매화공불〉과 진흙탕 위를 사슴가죽으로 만든 옷과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덮어 연등불을 지나게 했다는 〈포발엄니(布髮掩泥)〉로 나누는 등 한 장면에 실렸던 두 가지 이야기를 각각 별개의 장면으로 독립시키며 만들어졌다. 이러한 항목으로는 〈곡성남녀(哭成男女〉, 〈구룡관욕(九龍灌浴)〉, 〈척상성갱(擲象成坑)〉, 〈이제귀의(二弟歸依)〉가 있다. 나머지 4항목은 이전 『석씨원류』나 『석가여래응화록』에 없는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었다. 바로 〈무량수회(無量壽會)〉, 〈염불법문(念佛法門)〉, 〈법전가섭(法傳迦葉)〉, 〈촉루지장(囑累地藏)〉이다. 비록 일부 장면이 바뀌었지만 원래 제작 목적은 변하지 않았다. 중생을 위하는 불심은 변치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 4) 각원사 대웅보전에 그려진 205장면의 석씨원류 벽화 배치도
(사진 4) 각원사 대웅보전에 그려진 205장면의 석씨원류 벽화 배치도

 

 이 『석가여래응화사적』은 청나라 후기 불전판화집의 모본이 되었다. 하지만 모두 영산처럼 신심이 높고 능력과 경제력이 좋지 않았을 것이고, 대중에게 대량으로 공급하기 위한 판화집으로는 이보다 훨씬 간결해야 했을 것이다. 아마도 앞에서 언급한 안진호의 『신편팔상록』은 이 『석가여래응화사적』을 모본으로 하되 조금 간략하게 만들어진 광서본이나 상해본 등을 참고했을 것이다. 
 석가모니의 전기를 알기 위해 보았던 『팔상록』 판화에 보이는 조금 낯선 청나라풍의 옷, 머리 모습, 건물 및 주변 장식 등의 연원은 청나라 때 간행된 『석가여래응화사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석가여래응화사적』은 비록 크게 변화했지만 그 연원은 상도하문 형식의 정통본이나 대흥륭사본에 있다. 검각의 각원사 대웅보전(사진 3)에 그려진 205장면(사진 4)의 석씨원류 벽화도 정통본이나 대흥륭사본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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