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연(昊然) 스님이 엮은 회옹혜경(晦翁惠耕) 스님의 새로운 법화경 해석 [9] 3승방편(三乘方便) 1승진실(一乘眞實) ①
상태바
호연(昊然) 스님이 엮은 회옹혜경(晦翁惠耕) 스님의 새로운 법화경 해석 [9] 3승방편(三乘方便) 1승진실(一乘眞實) ①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7.21 16: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승경전의 금자탑인 법화경에 대한 혜경 스님의 해석법문을 연재합니다. 혜경스님은 평생을 경전연구와 집필활동에 매진하였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지난 5월 혜경 스님께서 입적하셔서 혜경 스님의 법화경에 대한 새로운 주석에 대하여 이 분야에서 뛰어난 법문을 전하신 호연 스님이 편역하여 독자들에게 새롭게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법화경에서 최고의 권위가인 두 스님의 소중한 강설을 소개하게 되어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호연(昊然) 스님은 동국대 불교대학원 석사, 중앙승가대 대학원 박사 및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재단법인호연 이사장. 서울정혜선원·도봉사 주지이며 중앙승가대학교 교수로 있습니다. 현재 BTN불교TV에서 호연스님의“행복나무에 핀 법화경”방송을 강의중에 있습니다. (매주화요일 오전8시30분/오후5시,일요일오후8시방영)
회옹 혜경 스님
회옹 혜경 스님

『법화경』은 석존의 지난날의 교화를 성문승(聲聞乘)․연각승(緣覺乘)․보살승(菩薩乘)의 3승으로 정리하고 있다. 승(乘)이란 야나(yana)의 번역으로서 탈것(乘物) 또는 실어 나르는 것이라는 뜻이며 가르침을 비유한 말이다. 탈것이 사람을 현재지에서 목적지로 실어 나르는 것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은 사람을 미혹(迷惑)의 이 언덕(此岸)에서 깨달음의 저 언덕(彼岸)으로 실어다 주기 때문이다. 
이 3승(三乘)의 내용은 「제1장 서품」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성문승이란, 성문에 대한 네 가지의 진리 즉 4제(四諦)의 가르침이고,
연각승이란, 연각에 대한 12인연(十二因緣)의 가르침이며,
보살승이란, 보살에 대한 여섯 가지의 완성 즉 6바라밀(六波羅蜜)의 가르침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호연 스님
호연 스님

(가) 성문.연각.보살의 의미
성문은 슈라바까(sravaka)의 번역으로, 목소리(聲)를 듣는(聞) 사람이라는 뜻이다. 원래는 재가․출가의 구별 없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사람을 성문으로 불렀던 모양이나, 출가교단의 권위가 확립되어 가는 가운데에서 재가신도는 봉사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우빠사까(upasaka, 優婆塞)로 부르게 되었으므로 성문은 출가한 제자를 가리키게 되었다. 여성신도는 우빠시까(upasika, 優婆夷)라 한다. 『법화경』에서의 “성문”은 출가의 제자를 한정하여 지칭하게 된 후부터의 용법이다.  
그리고 그 성문들은 성불할 것을 단념하고 모든 번뇌를 끊어 없애고 두 번 다시 이 세상에 윤회하지 않는 존재인 아라한(阿羅漢)이 되는 것을 이상(理想)으로 삼았다. 아라한은 아르하뜨(arhat)의 음역(音譯)으로,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성문의 성자(聖者) 자리는 4과(四果)라 하여 네 단계로 나누는데 이 가운데 아라한은 가장 높은 위치를 말한다. 
4과(四果)란 스로따빤나(Srotapanna, 須陀洹) 즉 예류과(預流果) ․사끄리다가민(Sakrdagamin, 斯陀含), 즉 일래과(一來果)․아나가민(Anagamin, 阿那含) 즉 불환과(不還果)․아라한(Arahan, 阿羅漢), 즉 아라한과(阿羅漢果)이다. 
예류과는 성자의 흐름에 처음 들어간 사람이라는 뜻이며, 일래과는 한 번 천상계에 태어나고 다시 이 인간계에 태어나 소승(小乘)의 열반(nirvana, 니르바나)을 얻는 사람을 말한다. 불환과는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에 태어나서 그곳에서 소승의 열반을 얻는 사람으로서 두 번 다시 욕계(欲界)에 태어나지 않는다. 아라한과는 두 번 다시 욕계․색계
․무색계의 3계(三界)에 태어나지 않고 소승의 열반을 얻는 사람이다.
그리고 또한 이 성문 4과(四果)에 이르지 못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써, 수다원(須陀洹)으로 향해가는 사람을 수다원향(須陀洹向)이라 하고,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고 다음의 사다함과(斯陀含果)을 지향해 가는 사람을 사다함향(斯陀含向)이라 했으며, 다음의 아나함(阿那含果)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을 아나함향(阿那含向)이라 불렀고, 마지막 아라한(阿羅漢果)을 향해 가는 사람을 아라한향(阿羅漢向)이라 하였으니, 이 두 가지를 합하여 4과쌍배(四果双輩)라고 한다.  
연각(緣覺)은 쁘라띠에까․붓다(pratyekabuddha)의 번역으로, 독각(獨覺)으로도 번역됨과 같이 자기 홀로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다.『법화경』에 자주 나오는 “벽지불(辟支佛)”은 그 소리로 번역한 말, 즉 음역어(音譯語)이다. 이 말의 유래는 성문처럼 공동생활을 하지 않고, 삼림(森林) 등에서 고독한 수행을 하여 자기 홀로 깨닫고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설하지 않는 수행자를 가리키는 말로서 생겨난 것이라고 추정된다.  
그러나『법화경』에서는 연각의 “연(緣)”과 12 인연의 “연(緣)”이 결부되어, 스승 없이 자기 홀로 깨달았다고 해도 부처님에게서 「12인연」의 가르침을 배우는 존재로 그려지고(描寫) 있다. 
보살(菩薩)은 보디․삿뜨바(bodhisattva)를 소리 나는 대로 옮긴 말, 즉 음사어(音寫語)인데 깨달음을 구하며 살아가는 사람, 혹은 깨달음을 본질로 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뜻이다. 원래는 고따마․붓다가 성불하기 이전의 모습을 보살이라 불렀으나, 부처님의 전생이나 과거의 부처님께서 성불하기 이전으로까지 용법이 차츰 확대되어 갔다. 대승불교에서는 부처님의 깨달음을 구하며 일체중생의 구제라고 하는 이타행(利他行)에 노력하는 사람은 모두 보살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말한 바와 같다..
물론 보살의 대표적인 존재는『법화경』에도 등장하는 문수보살(文殊菩薩), 미륵보살(彌勒菩薩),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보현보살(普賢菩薩) 등의 대보살이다. 소승불교에서는 성불할 수 있는 것은 석존과 같이 특수한 존재로 한정되어 있었으나, 대승불교는 성불이라고 하는 종교적인 이상을 일체중생에게 개방했다. 특히『법화경』은 아라한의 성불을 설함에 의해서 예외 없이 일체중생이 성불할 수 있음을 명확히 드러낸 것이다.
이와 같이 성문․연각․보살은 불교의 수행자를 세 가지의 유형(類型)으로 분류한 것이다. 이러한 분류는 부파불교(部派佛敎)의 논서(論書)나 『반야경』,『법화경』등에 널리 보이나, 『법화경』에서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들 각각에게 설하는 가르침을 4제․12인연․6바라밀로 명확히 규정하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다음에 4제․12인연․6바라밀의 내용을 차례로 살펴보기로 한다.

(나) 성문승(聲聞乘)과 4제(四諦) 
성문에 대한 가르침을 성문승이라 한다. 구체적으로는 4제의 가르침을 지칭하고 아라한이 되는 것을 이상으로 한다. 4제의 가르침은 석존께서 최초로 가르침을 펴실(初轉法輪) 때에 설한 사상이며, 고제(苦諦)․집제(集諦)․멸제(滅諦)․도제(道諦)의 네 가지 진리이다. 석존께서 형이상적(形而上的)인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대답하지 않았다(無記)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 대신 형이하적(形而下的)이며 현실적인 괴로움(苦)과 그 초극(超克)의 길을 네 가지의 성스러운 진리(四聖諦), 즉 4제(四諦)로서 설한 것이다. 제(諦)는 삿뜨야(satya) 의 번역으로서 진실(眞實) 또는 진리(眞理)의 뜻이다. 
고제(苦諦)란, 모든 것은 괴로움이라고 하는 진리이다. 불교의 세계 인식의 기본은 괴로움(苦)이며, 4고8고(四苦八苦)처럼 인생은 전반(全般)에 걸쳐 괴로움으로 가득차 있다고 생각한다. “4고8고한다” 등으로 말해 대단히 힘겨워하고 어려움을 당한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4고(四苦)란, 생․노․병․사에 대한 네 가지의 고통이다. 특히 생고(生苦)는 살아가는 고통이 아니라, 신생아가 태내(胎內)에 들어가서 태내에서 어머니의 좁고 캄캄한 출산의 길(産道)을 통해 태어나는 고통을 말한다. 그리고 노고(老苦)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쇠퇴하고 변하는 동안에 받는 고통, 병고(病苦)는 병들었을 때에 받는 몸과 마음의 고통, 사고(死苦)는 목숨을 마칠 때의 고통을 말한다.
8고(八苦)는 이 4고에 원증회고(怨憎會苦, 원망하고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야 하는 고통),  애별리고(愛別離苦,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고통),  구부득고(求不得苦,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고통),  5취온고(五取蘊苦)― 오온성고(五蘊盛苦)라고도 한다― 의 4고를 더한 것을 말한다. 5취온고란, 5온(五蘊) 즉 색(色, 형태 있는 것, 시각의 대상, 신체)․수(受, 감수 작용, 감각기관)․상(想, 표상작용, 생각)․행(行, 수․상․식온(識薀), 이외의 정신작용이며 좋고 싫고 등의 의지작용을 중심으로 함, 또는 형성력(形成力)․식(識, 인식․판단작용)의 다섯 가지 요소에 의해 구성되는 우리들의 윤회적(輪廻的)인 생존 그 자체가 고통이라는 것이어서 다른 일곱 가지 고통의 맨 밑바닥에 깔려 있는 고통으로 파악될 수 있다.             
집제(集諦)란, 고통의 원인에 관한 진리이다. 내용적으로 고(苦)의 원인은 번뇌라고 하는 진리이다. 즉 번뇌가 모여서 고통이 된다는 것이다.
멸제(滅諦)란, 고통을 멸해 없앰에 관한 진리라는 뜻이며, 내용적으로는 고의 원인인 번뇌를 멸하면 절대적인 정적(靜寂)의 경지인 열반을 얻을 수 있다는 진리이다.
도제(道諦)란, 고통을 멸해 없앰에 이르는 방법에 관한 진리라는 뜻이며, 내용적으로는 8정도(八正道) 즉 여덟 가지의 성스러운 길(八聖道)을 가리킨다. 8정도란 정견(正見, 바른 견해)․정사(正思, 바른 사유)․정어(正語, 바른 말씨)․정업(正業, 바른 행위)․정명(正命, 바른 생활)․정정진(正精進, 바른 노력)․정념(正念, 바른 마음 챙김)․정정(正定, 바른 정신통일)의 여덟 가지로서 종교생활 전반에 걸친 것이다.
8정도의 바른 것을 보증하는 것은, 초전법륜에서 설한 고락중도(苦樂中道)의 사상이다. 이러한 석존의 시대에 유행하고 있던 종교사상으로서 또 석존의 반생애(半生涯)에서 스스로 체험한 것으로서는 고행주의(苦行主義)와 쾌락주의(快樂主義)라는 두 가지의 극단적인 입장이 있었다. 석존은 이 두 가지의 극단을 떠난 중도를 자기가 의지해 설 수 있는 기반으로 삼았다. 뿐만 아니라 바르다는 것은 또 모든 것을 인연에 의해서 생긴 것임을 알면 자기의 온갖 행위가 바르게 될 수 있다고 한다.  
이 4제는 인도 의학의 영향을 받은 이론구성이라는 지적이 있다. 즉 병의 현상 인식․병의 원인 해명․병의 치료와 건강의 회복이라는 길과 공통성이 있다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