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36)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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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36)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4)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7.2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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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그림과 내용이 위, 아래에 쓰인 선재동자53참도(善財童子五十三參圖, 1210)
(사진 1) 그림과 내용이 위, 아래에 쓰인 선재동자53참도(善財童子五十三參圖, 1210)

 

석씨원류는 어떤 배경에서 제작되었나?

 현재까지 전하는 『석씨원류』 판화집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은 보성(寶成)이 1422년에 시작하여 1425년에 완성한 영락본(永樂本)이다. 이후 정통본(正統本, 1436), 경태본(景泰本, 1450-1456), 성화본(成化本, 1486), 대흥륭사본(大興隆寺本, 1486- 1535), 가정본(嘉靖本, 1556), 만력본(萬曆本, 1604) 등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졌다. 석씨원류는 석가모니의 전기와 중국에서 전법을 위해 노력한 여러 인물에 대한 글과 그림이 400여 장면이나 되기 때문에 제작하는 데 시간과 비용도 적지 않게 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나라 전 시기에 걸쳐 여러 번 판각된 데는 그에 걸맞은 수요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400여 장면의 판화를 만들고 새길 수 있는 기술적 여건도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그러한 배경으로 다음과 같은 조건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우선 석씨원류는 송나라와 원나라를 거치며 발전한 불교 판화를 제작하는 전통이 집대성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송·원대에도 석씨원류처럼 판화가 삽입된 불교 경전들이 적지 않게 제작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대표적인 것으로 『어제비장전(御製秘藏詮)』,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불국선사문수지남도찬(佛國禪師文殊指南圖贊)』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13세기에 제작된 『불국선사문수지남도찬』(1210)에 있는 〈선재동자53참도(善財童子五十三參圖)〉(도 1)는 석씨원류 판화처럼 위에 그림을 그리고 아래 내용을 적은 상도하문(上圖下文) 형식을 따른 판화로 석씨원류(사진 2)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송·원대 이래 통속문학 작품에 삽화가 그려지는 전통이 명대에는 더욱 번창하였는데, 이러한 유행이 석씨원류 제작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명나라 초기에는 『교홍기(矯紅記)』(1435), 『서상기(西廂記)』(1498) 등이, 후기에는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 등의 소설이 민간에서 널리 유행하였다. 과거에는 글의 내용이 어려우면 여러 번 읽어서 그 의미를 파악해야 했지만, 명대에는 내용과 관련된 삽화를 그려넣어 책을 더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한 책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낯설고 어려운 불교 이야기는 보기에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처음 석씨원류가 만들어진 남경 일대는 명대 초기 문화의 중심지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불교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 최적지였다.          
 마지막으로 석씨원류의 탄생에는 당시 불교에 대한 정부의 억압적 태도도 한몫했다. 명대 불교는 비록 초기에 황실에 의해 『남장   (南藏)』과 『북장(北藏)』 등 대규모의 불경이 출판되기도 했지만 교학적인 면에서 수·당대에 비해 쇠락했다고 한다. 그리고 승려들에 대한 대우도 우호적이지는 않았다. 황실에서 전국의 사찰과 승려를 관할하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즉 승려가 되려면 경전에 통달했는지 시험을 치러야 했고, 통과해야만 승려의 공인 자격증인 도첩을 발급했다. 많은 승려가 경전에 정통하지 못하고 멋대로 머리를 깎는 폐해가 발생하자 영락16년(1418)에는 3년에서 5년으로 연장되어 발급되던 도첩을 10년으로 더 연장하고, 승려가 되는 나이도 이전 20세에서 40세 이상으로 높였다. 이러한 시대 상황이 보성으로 하여금 불교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 불전과 중국불교사의 주요 인물들을 집대성한 석씨원류를 낳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사진 2) 위, 아래에 그림과 글이 쓰인 석씨원류(대흥륭사본을 바탕으로 만든 선운사본
(사진 2) 위, 아래에 그림과 글이 쓰인 석씨원류(대흥륭사본을 바탕으로 만든 선운사본

 

석씨원류의 편찬자 보성(寶成)은 어떤 사람인가?

  석씨원류의 편찬자 보성에 대해서는 정통본에 적힌 ‘대보은사사문석보성(大報恩寺沙門釋寶成)’, ‘사명석보성(四明釋寶成)’이라는 기록 외에 출신지, 사승관계, 생몰년 등이 알려지지 않았다. 보성이 석씨원류처럼 명·청대 여러 번에 걸쳐 새로운 판이 만들어진 이른바 베스트셀러 작가였고, 성화본에서는 명 헌종이 「어제석씨원류서(御製釋氏源流序)」에서 칭찬까지 한 승려인데도 『명고승전(明高僧傳)』에 이름이 올라가지 않았고, 역사서인 『명사(明史)』에는 석씨원류의 편찬자 이름을 진사원(陳士元)으로 잘못 기재되기까지 하였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그간 대부분 연구에 언급된 보성에 대한 정보는 ①남경에 있는 대보은사 승려, ②이름 앞의 ‘사명’이라는 문구를 통해 출신지가 저장성(浙江省) 영파라는 것뿐이었다. 
 석씨원류의 제작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프로젝트인데도 보성이라는 이름 외에 후원자나 제작된 사원의 주지 등에 대한 언급도 없고, 대보은사에서의 보성의 역할이나 지위에 대해서도 알려지지 않았다. 이런 이유를 들어 보성이 대보은사에서 지위가 그다지 높지 않은 승려였고, 석씨원류 제작은 사원에서 계획한 것이라기보다 보성의 개인적 발원에서 제작된 것일 가능성을 제기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는 배경으로 대보은사가 명대 남경 지역에 있었던 삼대 사원 중 하나이자 『남장』을 보관한 황실 후원의 사원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석씨원류 각 장면에 대한 내용이 다양한 경전과 불교 관련 문헌에서 인용되었기 때문에 대장경을 비롯한 다양한 문헌을 보관하고 있던 대보은사는 보성이 글쓰기에 최적의 장소였다는 것이다(채수령, 독일 하이델베르그대학교 박사논문, 2004).
 최근 석씨원류에 대해 연구가 늘어나면서 그간 묻혀 있던 보성에 대한 정보가 조금씩 쌓이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송나라 때 도성(道誠)이 찬술한 일종의 불교백과사전인 『석씨요람(釋氏要覽)』이다. 1019년에 쓰인 석씨요람의 초간본은 전하지 않고 1433년에 다시 목판이 만들어졌는데 이때 책임자가 바로 보성이다. 이 중간본에 그의 서문이 전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보성이 석씨원류를 만들기 전에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가여래응화록(釋迦如來應化錄)』이 송나라 때 도성이 찬술한 『석가여래성도기주(釋迦如來成道記注)』를 많이 참조했으며, 석씨요람 서문에는 자신이 그 책을 출가 이후 40여 년을 지니고 있었다고 하니, 두 사람의 활동 시기가 400년 가까이 차이가 있지만 보성에게 도성은 시공을 뛰어넘은 스승으로 보아도 될 것 같다. 특히 석씨원류의 서문이라 할 수 있는 첫 장면인 〈석가수적(釋迦垂迹)〉의 해설은 다른 장면들에서처럼 인용 문헌을 밝히고 내용을 쓰는 형식이 아니라 인용한 문헌명이 없이 시작하는데, 그 이유는 보성이 도성이 쓴 『석가여래성도기주』의 시작 부분과 송대 지반(志磐)이 쓴 『불도통기(佛祖統紀)』(1269년)의 앞부분을 발췌하여 조합하고, 그것을 석씨원류의 서문처럼 썼기 때문이다. 
 하버드대학교 엔칭도서관에는 보성이 중각한 석씨요람보다 100년쯤 지난 1529년에 간행된 석씨요람이 전한다. 거기에 실린 보성의 발문의 내용을 통해 보성의 생애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내가 어린 나이에 출가한 이래 40년 간 송나라 도성이 쓴 『석씨요람』을 갖고 있었는데, 『석씨요람』의 옛 판이 망실되자 선덕 원년(1426)에 황제의 은총을 받아 새로 판각하게 되었다. 그 목적은 천하의 어린 승려들을 제도코자 함이다. 고도진(顧道珍)에게 글을 쓰게 하고, 강보성(姜普成) 등에게 판을 새기게 하여 간행, 유통하니 시주하는 사람과 불법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치지 않았다.’

 다행히 발문 말미에 쓰인 ‘대명선덕8년용집계축맹하4월 여래결제일대보은사견밀실사문석보성근지(大明宣德八年龍集癸丑孟夏四月如來結制日大報恩寺堅密室沙門釋寶成謹誌)’를 통해 중간본이 제작된 시기, 대보은사에서의 보성의 역할과 함께 알려지지 않았던 보성의 생애를 조금이나마 조각해 볼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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