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 선시 禪畵 禪詩 - 다이아몬드 부채
상태바
선화 선시 禪畵 禪詩 - 다이아몬드 부채
  • 김희정 아동문학가
  • 승인 2021.08.18 14: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둥그런 부채가 내 손에 들어오니
시원한 바람이 분에 넘치게 들어오네.
찌는 더위와 치성한 번뇌는 사라져버리고
가을날 동정호반에 나를 앉히네.

 

고려시대 백운선사 시래.
한여름 쨍쨍한 뙤약볕도 아랑곳 않고 삼삼오오 어울려 놀고 있는 너희들을 보면 흐뭇해. 얼굴은 사과처럼 발갛게 익어서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그런 너희들을 만나면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에너지를 받고 가. 요즘 내가 얻은 에너지 중에 가장 건강한 에너지야. 요즈음은 에어컨과 사랑에 빠진 친구들이 많으니 그 모습이 더더욱 귀하게 느껴지나 봐.
얼마 전 어떤 아저씨가 읊어대던 금강경 한 구절도 내게 큰 에너지를 주었어.
“이와 같이 나는 들었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습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공양 때가 되어서…….”  오십이 넘은 아저씨가 마치 랩을 하듯이 금강경의 첫 구절을 줄줄 읊으셨어. 요즈음 금강경 100일 기도를 하신다는 거야. 그러다보니 입에 붙어서 자기도 모르게 흥얼거리신대. 귀에 스치는 소리가 어찌나 좋은지 후덥지근한 무더위를 싹 날려버리더구나. 다른 아빠들이 술 마시고, 담배피우고, 노래방 가고 그러는 대신 금강경을 읽으신다니 그것만으로도 다이아몬드 하나 발견한 것 같았어. 
사실 내가 최초로 만난 불교경전도 금강경이야. 한 교수님이 수업 중에 그러셨어.
 “논술을 가르치려면 종교를 떠나서 금강경을 꼭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눈을 실처럼 가늘게 만들어 하늘을 보더구나. 마치 제주도 말로 ‘골앙 몰라. 읽어 봐야 알주.’하는 듯 했어. 뭐 살짝 떨리기는 했지만(그때까지는 카톨릭 신자였거든.) 너무 궁금해서 금강경을 사서 읽었어. 좋았냐고? 무슨 말씀! 너무 재미없어서 결국 끝까지 다 읽지 못하고 책을 덮었어. 너무나 평범했고, 너무나 지루했고, 비슷한 말을 하고 또 하고…. 금강경도 이상하고, 부처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웬만큼 어려운 책은 다 읽고 이해하는 내가 못 읽겠고, 이해 못하겠고, 재미도 없었으니……. 나는 이상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지. 
그 다음 다시 금강경 만난 것은 18년 전이야. 아는 사람이 내게 맡겨놓은 책(육조단경)을 쓰윽 넘기다 보니 가난한 나무꾼이 금강경 한 구절을 듣고 스님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지. 도대체 금강경이 뭐야? 나는 또다시 금강경에 도전했어. 어,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어. 마음에 바람이 부는 것 같았어. 읽고 또 읽을수록 가슴이 시원해졌어. 
금강은 다이아몬드를 이르는 말이야. 금강경을 만난 덕분에 요즘 같은 더위에 나는 다이아몬드 부채로 더위를 식혀. 정말 바람이 부냐고? 물론 종이부채나 플라스틱 부채로 부채질 하는 것처럼 쉽지는 않아. 수행을 좀 해야 한다는 뜻이야. 
폭염은 물러갔다고 해도 아직 덥지? 꼭 금강경이 아니어도 부처님 말씀을 소리 내어 읽어봐. 무슨 말인지 몰라도 자꾸 읽다보면 연꽃 향기 실은 맑은 바람 한 줄기 만날 수 있을 거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