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에 담겨진 선취禪趣여행 ⑤ 자연의 오묘한 이치 선리禪理에 담아
상태바
한시에 담겨진 선취禪趣여행 ⑤ 자연의 오묘한 이치 선리禪理에 담아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8.31 14: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곽경립시인, 수필가
곽경립시인, 수필가

 예술 활동에 있어서 작품성향은 작가의 생활방식과 사유방식에 영향을 받습니다. 왕유王維(701-761)의 시 속에 일종의 세속을 초탈하는 풍격과 선의 정취가 깊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왕유가 이미 불교의 이치를 깨닫고 있으며 불가의 생활방식이 일상화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시인의 시는 심경이 맑고 깨끗하며(沖澹), 작품의 대상인 자연 역시 산뜻하면서도 아련한 느낌을 줍니다. 시인은 시 속에 함축된 의미를 음미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아 사물(象)을 통해 뜻(意)을 유추하도록 함으로써 형상에 머무르지 않고, ‘언어 이면의 의미(言外之意)’와 ‘형상 밖의 세계(象外之象)’인 초연탈속한 정신적 경지를 나타내는 깨달음(妙悟)의 경계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는 사물에 집착하지 않는 왕유의 성품이 그의 미의식과 융합되어 노련한 격조로 드러남으로써 욕심 없는 맑고 깨끗한 시인의 성정이 정교하게 묘사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가롭고 고요한 심정(閑靜逸致)과 풍광이 함께 어울려 선취가 일어나는 시 한편을 살펴보겠습니다.

 

종남산 별장                                 


중년에 들자 불도가 좋아지더니
만년에는 종남산기슭에 집을 마련했지
흥취가 일 때마다 홀로 길을 나서는데
즐거운 마음 그저 나 혼자 느낄 뿐
마냥 걷다 물길 다하는 곳에 이르러선
앉아서 구름 이는 것을 보기도 하는데
어쩌다 숲 속의 노인이라도 만나면
더불어 얘기하느라 돌아갈 줄 모른다오.

終南別業 종남별업                          


中歲頗好道 중세파호도
晩家南山陲 만가남산수
興來每獨往 흥래매독왕
勝事空自知 승사공자지
行到水窮處 행도수궁처
坐看雲起時 좌간운기시
偶然値林叟 우연치림수
談笑無還期 담소무환기

 

왕유는 남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자연의 오묘한 이치를 선리에 담아 그 느낌을 자연에 반조返照하여 표현합니다. 만물의 변화현상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생겨나고, 모든 실체는 생멸의 순환으로 존재합니다. 따라서 불변의 존재는 없다(諸行無常)고 하는 선리禪理의 사유思惟인 생멸의 현상이 시간상에 일어나는 것이라면, 그 변화하는 인간의 행위와 현상은 공간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시인은 셋째와 넷째 구句에서 시간상에 일어나는 변화를 공간상의 마음이 작용하는 ‘나’와 교묘하게 어우러지게 함으로써, 구체적인 사실 세계를 떠난 다른 세계가 두 구句 안에서 한 폭의 동양화로 존재하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왕유는 장자의 경우처럼 자연을 통하여 도를 맛보려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실세계를 떠나 다른 세계로 그저 ‘물 따라 끝 간곳에 이르러, 구름 피어오를 때를 바라보는’ 이상향理想鄕으로 자연의 한적함을 추구하였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