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빠사나 길라잡이 (13) 통찰지(慧)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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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빠사나 길라잡이 (13) 통찰지(慧)란 무엇인가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9.0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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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띠행자 유현
사띠행자 유현

지난 10년간 내 책상머리에는 초기경전인 4부 니까야(Nikāya)와 이에 대한 주석서인 『청정도론』이 항상 놓여 있었습니다. 
『청정도론』은 네 가지 전승된 가르침[四阿含]의 기본주제인 팔정도, 즉 계戒· 정定·혜慧의 삼학三學을 설명하는 책으로서 남방 상좌부불교의 부동의 준거가 되는 매우 중요한 불서佛書입니다. 
상좌부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교학[pariyatti, 배움], 수행[patipatti, 도닦음], 통찰[pativedha, 꿰뚫음]의 세 가지 측면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비담마를 배워 교학의 문에 들어섰으면 팔정도의 수행으로 나가야 하고, 마침내 도를 닦아 번뇌를 꿰뚫어야 열반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꿰뚫림’의 참뜻은 일체 법의 보편적 성질인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의 세 가지 특상을 꿰뚫어 보는 빤냐[paňňā], 즉 지혜의 완성을 말합니다. 
번뇌는 위빠사나의 지혜로써만 끊을 수 있으므로 위빠사나 수행은 빤냐를 얻기 위한 수단 또는 빤냐와 관련된 방법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반야심경」의 반야般若는 빠알리어 빤냐[paňňā]의 한문 음사 표기이고, 산스크리트어로는 프라즈냐[prajňā]입니다. 그냥 피상적으로 대상을 분별해서 알거나 뭉뚱그려 아는 것을 넘어서서 법을 능숙하게 잘 아는 지혜를 뜻합니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합니다. 이는 다른 동·식물보다 ‘앎’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는 것을 높이 평가하는 말입니다. 부처님은 인간의    ‘앎’을 그 수준이나 기능에 따라 엄밀하게 구분하여 가르쳐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꽃이 눈의 감관에 부딪칠 때, 순간적으로 “아, 저게 꽃이구나.”를 인식하는 것은 산냐[saňňā, 想]이고, “저건 빨간색 장미꽃이구나.”라고 그 특징까지 자세히 아는 것은 윈냐나[viňňāna]입니다.
나아가 법을 보는 눈, 즉 법안法眼이 열려서 “저건 지금 현재론 저렇게 머물러 있지만 곧 다른 상태로 변할 거야. 그리하여 살아있는 것들이란 늘 한결같을 수 없는 괴로움이야”하는 것을 아는 지혜를 빤냐(반야)라 합니다.
「반야심경」의 ‘아뇩다라삼막삼보리’는 산스크리뜨어 ‘아누따라삼약삼보디’(ānuttarām-samyak-sambodhi)를 음사한 것입니다. 한문으로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부처님의 지혜를 일컫는 말입니다. 
범부가 팔정도의 도 닦음을 통해 마침내 아라한이 될 때 얻는 지혜는 ‘앗냐(aňňā)’라고 하는데, 이를 구경의 지혜라고도 말합니다.
『청정도론』에서 ‘통찰지’는 유익한 마음[善心]과 연결된 위빠사나의 지혜(vipassanā-ňāna)라고 말합니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이러한 주석을 존중해서 ‘빤냐’를 통찰지로 옮겨 쓰고 있습니다.
『청정도론』에서 통찰지의 특징은 법의 고유성질을 통찰하는 것이고, 그것의 역할은 법의 고유성질을 덮어버리는 어리석음의 어둠을 쓸어버리는 것이고, 미혹하지 않음으로 나타나고, 삼매(samādhi)가 가까운 원인이라고 설명합니다.
옛 선사께서 “계戒의 그릇이 견고해야 정定의 물이 맑게 고이고 정定의 물이 청정해야 지혜의 달이 둥글게 비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금언은 “계·정·혜 삼학은 솥발[鼎足]같아서 발하나만 짧아도 솥이 바로 설 수 없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범부가 계(도덕성)을 확립할 때 근접삼매와 본삼매인 선정(jhāna, 자나)을 계발할 수 있고, 그 후에 지혜 수행인 위빠사나 수행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다름 아닌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苦諦]와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集諦]의 특상인 무상·고·무아를 깨닫는 것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철저히 하고 이 두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완전히 깨달았을 때에만 출세간 도(Magga) 진리와 함께하는 출세간 팔정도[道諦]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출세간의 도에는 예류(sotāpatti)-일래(sakadāgami)-불환(anāgami)-아라한(Arahant)의 네 가지가 있습니다. 팔정도의 목적은 세 번째 성스러운 진리(Nibbāna, 닙바나)를 깨닫기 위함입니다.  
지혜 수행의 길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초기불교를 배우기 전에는 필자도 ‘단박에 깨닫는다.’는 돈오頓悟의 신화에 경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마치 잭팟(jackpot)을 꿈꾸는 도박사처럼 말입니다. 
수십 년간 여기저기 서성거리다가 전생의 수행 인연이 있었는지, 위빠사나 수행을 접하고 또 가속도가 붙게 되자 나에게 이런 생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과거세 부처님들의 교단에서 위빠사나를 수행하여 수순(隨順, anoruma)과 고뜨라브(gotrabhū, 種姓) 근처까지 이르렀던 것이 아닌가. 
그런 까닭에 선지식으로부터 듣거나 스스로 생각하거나 몸소 수행 체험으로 얻는 문聞·사思·수修의 통찰지를 계발하는 점진적 방법이 필자의 기질과 심통에 적합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 세 가지의 통찰지 분류는 「합송경」(D33)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통찰지를 어떻게 닦아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을 『청정도론』에서 구해봅니다. 
『청정도론』은 무더기[蘊]·감각장소[處]·요소[界]·기능[根]·진리[諦]·연기緣起의 가르침이 통찰지의 토양이라고 설명하고 있고, 「반야심경」에도 기본교학은 온蘊·처處·계界·제諦·연緣의 다섯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초기불교의 기본 가르침은 교학과 수행의 둘로 요약됩니다. 교학은 5온·12처·18계·22근·4성제·12연기이고, 수행은 4념처·4정근·4여의족·5근·5력·7각지·8정도의 37보리분법입니다.  
계·정·혜 삼학이 초기불전에서 강조하고 있는 불교 수행의 키워드라면 일곱 가지 청정(visuddhi, 淸淨)은 상좌부 불교에서 교학과 수행체계를 설명하는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그 중에서, ①계청정(戒淸淨, sila-visuddhi), ②마음청정(心淸淨, citta-visuddhi), 이 둘을 통찰지의 몸통이라 하고, ➂견청정(見淸淨), ➃의심을 극복함에 의한 청정(度疑淸淨), ➄도와 도 아님에 대한 지와 견에 의한 청정(道非道智見淸淨), ➅도 닦음에 대한 지와 견에 의한 청정(行道智見淸淨), ➆지와 견에 의한 청정(智見淸淨), 이 다섯을 통찰지의 몸통이라고 정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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