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2주년 특집 - 섬 속의 뱃길 따라 만난 대한민국의 최남단 마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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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2주년 특집 - 섬 속의 뱃길 따라 만난 대한민국의 최남단 마라도!
  • 김익수 대기자
  • 승인 2021.09.07 1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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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 기원정사 최근 대웅전 중건
수행과 기도, 힐링 도량으로 거듭나
마라도에서 바라본 산방산 전경
마라도에서 바라본 산방산 전경

 

국토의 끝이자 시작인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마라도. 뛰어난 해안절경과 독특한 섬 풍광을 자랑하는 마라도, 이곳은 모슬포항에서 11㎞ 떨어져 있는 면적이 0.3㎢, 35가구 인구 100여명, 동서폭이 0.5㎞, 남북길이 1.2㎞, 해발39m 해안선길이 4.2㎞의 작은 섬, 1시간이면 한 바퀴 둘러 볼 수가 있다.
마라도는 원래 가파도에 속해 있었다가 1981년 4월 1일 마라도로 분리되었다. 1750년(영조 26) 제주 목사가 조정에 진상하기 위해 소 50마리를 방목하면서 가축을 보호하기 위해 40가구 주민의 입도를 허용했다고 전한다. 섬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바다는 전복, 소라, 옥돔, 자리돔 등 수산물이 풍부하다. 
모슬포항에서 출발하는 도항선이 물살을 가르며 길을 낸다. 먼 바다에서 숨비 소리가 들려온다. 저 숨비 소리는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생계를 지켜온 억척스러운 제주해녀의 포효다. 오늘 저 삼촌의 망사리 속에는 얼마만한 보물들을 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순간 물위로 나왔다 날숨을 내쉬고는 곧바로 다시 잠수한다. 

◆섬 속의 섬에 관음성지로 다시 태어난 기도도량 기원정사를 만나다

마라도 기원정사 해수관음보살상
마라도 기원정사 해수관음보살상

 

한 척의 항공모함을 연상케 하는 타원형의 형체를 보여주고 있는 마라도 중심에서, 은은함과 웅장한 타음을 담은 범종이 아침저녁으로 영락없이 타종된다. 철썩이는 파도소리와 함께 작은 섬의 삶의 애환을 달래주기도 한다. 먼저 마라도의 첫 취재의 발길은 기원정사로 향했다.
▷혜덕 스님. 국토최남단 마라도에 있는 기원정사는 어떤 사찰인지 소개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예. 마라도의 기원정사는 아름다운 자연이 숨 쉬고 있습니다. 넘실거리는 파도와 일출, 일몰이 한 번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섬 속의 섬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섬을 찾아오시는 일상에 지친 많은 분들이 찾아오셔서 마음을 치유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스님께서는 이 기원정사에 언제 부임해오셨습니까?
▶그러니까. 지난해 9월입니다. 
▷부임하셔서 큰 불사를 이루셨다고 하시던데요. 
▶예. 부임해왔을 때 기원정사는 태풍으로 대웅전이 훼손되고, 요사채도 새로 수리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대웅전을 중건할 때도 날씨가 좋지 않아 단청작업에 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면 대웅전 낙성식은 언제 하신건가요?
▶지난 5월에 낙성식을 가졌습니다. 낙성식에는 부산 문수사 명주선사, 신도회장을 비롯해서 마야 합창단, 지원 스님, 강명순 신도회장님 등 많이 동참하셔서 격려를 해주셨기에 낙성법회가 잘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밖에 참석하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고마운 말씀과 감사를 드립니다.
▷이곳에 기원정사는 언제 어떻게 부처님을 모시게 되었는지 사찰의 내역에 대해서 말씀주셨으면 합니다. 
▶예. 마라도 기원정사에는 1977년 미신 타파의 목적으로 마라분교 인근에 작은 건물에 최초로 관세음보살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당시 관음사 신도였던 마라분교 교사가 매일 조석으로 예불을 드렸다고 합니다. 이후 밭농.반어업을 하며 살아가는 마라도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법당을 창건하려했으나, 관세음보살님의 목이 잘리는 훼불 사건을 겪는 어려움이 있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마라분교 교사와 마라도 주민들이 관음사로 찾아가서 어려움을 호소한 끝에 정관 스님이 마라도 법당 창건의 소임을 맡게 됩니다. 1987년 10월에 정관 스님이 국토 최남단에 평화통일을 기원하며 사찰창건에 나서게 됩니다. 그 후 기원정사는 시련이 계속되어 사찰에 상주하는 스님이 없었고, 정관 스님도 입적하게 되셨던 것이죠.
그래서 기원정사는 경매에 넘어가 민박집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이게 되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부산 문수사 지원 스님께서 2003년에 개인에게 매각된 것을 알고 이를 설득하여 매입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지원 스님의 상자인 혜진 스님이 초대 주지로 상주하면서 2004년 8월에 해수관음전 신축하고 도량을 정비하게 됩니다. 
▷예. 그런 역사를 갖고 있군요. 앞으로 코로나 19가 종식되고 나면, 기도도량과 함께 쉼터로써 어떻게 조성해나가실 계획이 있으시면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예. 코로나19로 인해서 기원정사를 찾아오시는 개인이나 단체들의 발걸음이 많이 줄었습니다만,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나면, 사정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기원정사도 아름다운 이곳을 찾아오시는 분들을 위해 명상수행과 기도, 힐링의 도량으로 발전시켜나갈 계획을 구상하고 있기도 합니다. 
▷스님. 오늘 소중한 시간을 내주셔 마라도 기원정사에 대한 여러 가지 말씀 잘 들었습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마라도 기원정사 주지 덕혜 스님
마라도 기원정사 주지 덕혜 스님

 

기원정사 취재를 마치고 발길을 마라도 경로당으로 향했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제423호 지정,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

경로당은 마치 평온한 가정집 같다. 경로당에서 기다리고 있던 송재영(75세) 회장을 만났다. 
▷환경이 잘 꾸며진 것 같습니다. 어르신들의 건강관리를 위한 안마기가 여유롭게 보입니다. 요즘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시고 계시는지요?
▶일을 적당히 하고 음식도 소식하구요. 생각나면 낚시로 잡은 물고기를 이웃에게 나눠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게 낙이죠. 
▷회장님은 언제 마라리에 정착하시게 되었는지요. 
▶저는 90년도에 이곳 마라도에서 공무원을 했었지요. 그 다음해에 이곳에 정착하기로 결심하고 이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원래 고향은 안덕면 덕수리입니다. 젊었을 때는 마라리 이장으로 마을발전을 위해 힘써 노력해왔습니다. 그러니까. 섬을 찾아오시는 관광객들이 늘어남에 따라 마을의 가계와 상점에서는 소득이 향상되어, 마을사람들은 유치경쟁에 골프카를 운영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서 언쟁이 오가면서 불편한 상태에 이르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끝에 마을사람들과 충분한 의사소통을 통해 마을 발전을 위해 설득한 끝에 잘 마무리 되어서 평온을 되찾게 되었고, 포장마차도 집안으로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마라도의 기반시설인 하수구 정비나 숲이 없기에 무더운 여름철에는 그늘막이 필요했고, 겨울철에는 바람막이 역할을 할 수 있는 대합실을 마련함으로써 찾아오시는 관광객들의 불편을 덜어주게 되었습니다.
▷경로당에서 일을 하시게 된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경로당 회장을 5년 째 맡고 있는 가운데, 마을 협동조합도 구성해 20명의 회원들이 마을의 발전을 위한 문화시설과 콘텐츠를 잘 운영해 나가고 있습니다. 일출과 일몰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마라도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마라도를 찾아오시는 청정지역을 잘 보존하고 보호하는 마음으로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또한 아직도 마라도가 최남단에 있다는 것. 홍보가 부족한 것 같고, 주민들이 서로가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친절함이 부족함을 느끼고 있어 더욱 친절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마라도 항구
마라도 항구

 

1990년도에는 주민들이 사오십 명이었던 것이 최근에는 35가구에 91명이 마라도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발길은 재촉해, 이번에는 마라리에서 평생을 물질작업을 해오시고 있는 김춘금 어촌계 해녀회장을 만났다.

◆보물의 바당밭 일구는 마라리 해녀들
  
호이 호이 호이 섬 속에서 들려오는 숨비소리.
“꽃처럼 피어날 무렵부터 험한 파도를 타기를 함께 해온 소녀”는 마라도에서 평생을 물질해오고 있다는 마라리 어촌계 해녀회 김춘금 회장(67세)의 얘기다.
5~6년 전부터 입어를 해보면 바닷물 수온이 다르게 느낄 수 있으며, 갯녹음(바닷돌 석회) 현상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태풍이 지나간 후에는 깊은 바닷돌들이 얕은 바다로 밀려오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종전에는 연안가에서 칼슘성분이 풍부한 바다의 채소인 미역과 톳을 많이 채취해왔으나, 최근에는 자원이 고갈되어 전혀 채취를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바다 환경이 좋지 않은 쪽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현재 마라도에서 물질작업을 하고 있는 해녀는 6명이라고 하시면서, 이 가운데 한 명이 해남(남자해녀)이다. 언제나 물질은 공동으로 작업하러 나가며, 자원이 고갈되지 않도록 윤채입어를 한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태풍이 몰아칠 때를 제외하고는 바당밭을 떠나본 일이 없었습니다. 바당에서 나오민 배고팡 입에 밥을 물고 있어도 그걸 씹지 못할 정도로 고된 작업이었죠. 그러나 이제부터는 물질작업도 조금씩 해나가면서 여유를 갖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합니다.”
오전에 얕은 바당에서 보말을 잡아 저녁 반찬으로 장만해두고 오셨다면서 이젠 삶의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피어오른다. 
 
◆환갑을 마라리에서 맞는 행복한 부부 제2의 아름다운 삶을 구상하며
 
1982년도에 20세 때 제주에는 처음 여행길에서 처음으로 송악산을 만난 느낌은 매우 감동적이었다.(경기도 안성시 남기홍씨 (61세) 부부) 주상절리가 그러했고, 한라산 등반도 매우 인상적이어서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어 제주를 해마다 한 번쯤은 찾아오고 있다. 그런데 찾을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개발만이 반드시 좋은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제주는 섬입니다. 섬은 섬으로서 간직해야할 것이 있고, 섬다움이 남아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제주다움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제주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마음에 상처받고 지친 일상에서 사람들은 평온과 치유를 위해 이처럼 환경이 좋은 곳을 찾게 되고 힐링의 장소로써 보고(寶庫)라고 생각한다며 이번에도 환갑기념으로 제주에서 열흘 동안 머물다 가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꿈 많은 아이들이 없다. 마라분교장은 지난 2016년 3월부터 휴교에 들어가 지금까지 입학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낡아지고 있는 종(鐘)과 교실의 책상과 의자가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교실문을 열고 들어서는 학생은 없다. 외롭게 홀로 서 있는 마라분교장 언제 문을 열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취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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