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38)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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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38)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6)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9.1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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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각원사 14벽 천친조론과 달마서래
(사진 1) 각원사 14벽 천친조론과 달마서래

 

각원사는 당나라 정관연간(627-649)에 창건된 후 원나라 때 훼손된 것을 명 천순연간(1457-1464)에 주지 정지(淨智)와 제자 도방(道芳)이 중건을 시작하여 30여 년이 지난 1492년에 완성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중수각원사기(重修覺苑寺記)」와 대웅보전에 있는 1489년에 만들어진 석제 사각 향로에 적힌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대웅보전의 석씨원류 벽화도 이 기간에 그려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정확히 언제 누가 그렸는지 확인되지 않다 보니 학자들 간 벽화에 대해 이견들이 있다. 특히 여러 시기에 만들어진 석씨원류 판본 중 모본이 무엇인지 확인되지 않았고, 벽화의 장면 수와 석씨원류 및 석씨원류를 만든 보성이 쓴 또 다른 책인 『석가여래응화록』과의 관계, 벽화의 첫 장면을 석씨원류의 첫 장면인 〈석가수적(釋迦垂迹)〉이 아니라 〈최초인지(最初因地)〉로 시작하는지 등과 같은 문제는 학자마다 의견이 제각각이다.

(사진 2) 선운사 천친조론 판화
(사진 2) 선운사 천친조론 판화

 

먼저 벽화가 어떤 판화본을 참고했는지 살펴보자. 대웅보전 내부 14개의 벽에 그려진 벽화는 총 205장면이다. 대부분 판화본은 전체 장면이 총 400, 406, 408, 항목 등으로 구성됐으며, 상(1-2권), 하(3-4권)으로 나뉘는데, 상권은 석가모니의 일대기, 하권은 중국에 전래된 이후의 이야기로 이루어졌다. 각원사에 그려진 벽화는 총 205장면으로 먼저 200번째가 넘은 장면이 무엇이며, 어떤 판화본과 관련 있는지 확인하는 게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벽화의 201번에서 205번까지 다섯 장면은 〈제바착반(提婆鑿畔)〉, 〈신승응공(神僧應供)〉, 〈사자전법(師子傳法)〉, 〈천친조론(天親造論)〉, 〈달마서래(達磨西來)〉이다. 이 다섯 항목 중 400항목으로 이루어진 성화본 등의 판본에는 〈사자전법〉이 2권 마지막 장면이고, 나머지 네 항목은 실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보성이 쓴 『석가여래응화록』에는 이 다섯 항목이 차례대로 202, 203, 204, 207, 208번으로 실려 있다. 한편 『검각각원사명대벽화』(王振會, 院榮春, 張德榮, 2010), 『명대사원불전도』(李松, 2011), 『범상유진(梵相遺珍):사천명대불사벽화』(劉顯成, 楊小晋, 2014)과 같이 근래에 출판된 각원사 벽화를 다루는 문헌에는 마지막 장면을 승려가 경전을 쓰는 그림에 〈역경전법(譯經傳法)〉이라는 출처 불명의 화제를 제시하고 있다. 아마도 정확한 모본을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림의 제목이 분명하지 않아 그림의 내용을 유추하여 적은 것 같다. 사실 대웅보전 14번째 벽면의 벽화 중 오른쪽 아래 그려진 〈역경전법〉의 도상(사진 1)은 세친(世親)이 기와집 안에서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장면인 〈천친조론〉(사진 2)과 일치하는 것인데, 위에 언급된 문헌들에서는 아마도 성화본 등에는 없는 도상이기 때문에 따로 유추하여 〈역경전법〉이라는 화제를 만든 것 같다. 그래야 다음 장면인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가는 〈달마서래〉와 나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 같다. 

(사진 3) 석씨원류 석가수적
(사진 3) 석씨원류 석가수적

 

앞에서 언급한대로 벽화는 늦어도 중창이 완성된 1492년 이전에 그려진 것으로 보는 게 정설이다. 그렇다면 벽화를 그릴 때 참고한 석씨원류 판화본은 1492년 이후에 만들어진 판본을 제외하면 영락본(1425년), 정통본(1434-1436년), 경태본(1450-1457년), 대흥륭사본(1486-1535년)과 성화본(1486년)으로 좁혀진다. 여기서 상권(1-2권)에 200항목이 넘는 판본이어야 하므로 다섯 개의 판화본 중 200항목인 경태본과 성화본은 제외된다. 그리고 영락본이 400장면인지 408(410)장면인지 완질본이 확인되지 않아 연구자들 간에도 이견이 있는 실정이므로 현재 시점에서는 영락본도 배제하는 게 나을 듯하다. 그렇다면 벽화 제작에 참고했을 가능성이 높은 판본은 정통본과 대흥륭사본이다. 정통본도 완질로 남아있지 않아 확인 불가능하며, 정통본을 모본으로 하여 만들어진 대흥륭사본도 하권 일부만 알려졌다. 이런 상황 때문에 대부분 연구자들은 모본이 아님을 알면서도 완질로 잘 남은 성화본을 비교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다 보니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속적으로 몇 가지 이견들이 나오게 된 것이다. 
벽화의 첫 장면이 왜 석씨원류의 첫 장면인 〈석가수적〉이 아니라 〈최초인지〉로 시작하는가의 문제 또한 학자들 간 쟁점이 되었다. 독일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불교판화에 대해 박사논문을 쓴 채수령(蔡穗玲)과 동국대 최연식 교수는 각원사 벽화의 모본을 『석가여래응화록』으로 보았다. 각원사 벽화와 400, 406, 408항목 세 종류의 석씨원류와 일치하지 않음을 근거로 들었다. 채수령은 더 나아가 408항목의 석씨원류에 각원사 벽화 204항목이 포함되지만 맨 첫 장면인 〈최초인지〉가 408항목의 석씨원류에는 없는 것을 그 이유로 보았다.  

(사진 4) 각원사 대웅보전
(사진 4) 각원사 대웅보전

 

한편「명대불전고사화연구」(2008, 중앙미술학원)로 박사학위를 받은 형리리(邢莉莉)는 ‘각원사의 〈최초인지〉가 석씨원류의 〈석가수적〉이 분명히 아니지만 〈석가수적〉이 석가모니와 아난, 가섭, 사천왕이 그려진 일종의 표지 그림인데, 대웅보전 안에 이미 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굳이 그림으로 그릴 필요가 없고, 판화를 모본으로 해서 벽화를 그릴 때 나타날 수 있는 필요한 조정’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석가여래응화록』이 내용만 있지 삽화는 알려진 바 없고, 한 폭이 다르다고 204폭이 동일한 것을 부인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했다. 사실 대웅보전에 석가모니와 아난, 가섭, 사천왕이 상으로 봉안되어 있어서 설득력 있다고 여겨진다. 게다가 208항목 중 〈석가수적〉과 함께 빠진 〈십대명왕〉과 〈호법제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 주장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런 의도로 그려졌는지는 의문이다. 
이러한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주는 열쇠가 바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선운사본 석씨원류이다. 대흥륭사본의 경우 중국에는 현재 하권 일부만 전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과거 대흥륭사본을 모본으로 해서 만든 선운사본이 다행히 완질로 남아있어서 석씨원류와 각원사 벽화 사이에 엉킨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대흥륭사본(선운사본) 상권의 항목 수는 『석가여래응화록』과 같이 총 208항목이다. 이 중 첫 번째 장면인 〈석가수적〉, 205번째 〈십대명왕〉, 206번째 〈호법제천〉 세 항목이 빠진 205장면이 각원사 벽화로 그려진 것이다. 이들 세 항목이 빠진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각 항목의 주인공들이 공통적으로 대웅보전과 밀접하게 관련된 존상들이기 때문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먼저 첫 번째 장면인 〈석가수적〉(사진 3)이 빠진 이유는 대웅보전 그 자체가 곧 〈석가수적〉의 장면이기 때문이다. 석가모니불을 아난, 가섭, 사천왕이 둘러싸고 있는 장면이 바로 대웅보전 불단에 구현되어 있다(사진 4). 범천과 제석천을 위시한 제천과 십대명왕도 마찬가지다. 대웅보전의 주인공 석가모니불을 위호하는 존재이고,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실제 불상으로  만들어졌는데 굳이 작은 공간에 다시 그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석씨원류의 두 번째 장면인 〈최초인지〉를 첫 장면으로 보는데 하등의 문제가 없을 것이다. 각원사 벽화의 첫 장면 〈최초인지〉는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선운사본과 각원사 벽화의 〈최초인지〉를 비교하면 동일한 도상임을 알 수 있다. 이 항목이 성화본이나 가경본 등에는 없는 도상이기 때문에 형리리, 채수령 등 여러 학자들이 다양하게 해석을 시도했던 것이다. 정리하면 각원사 벽화는 정통본(대흥륭사본)을 모본으로 하되 판화집 1-2권의 208항목 중 세 장면을 빼 205항목을 그린 벽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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