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빠사나 길라잡이 (14) - 염念·지止·관觀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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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빠사나 길라잡이 (14) - 염念·지止·관觀 명상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9.28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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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띠행자유  현
사띠행자유 현

필자의 애독서인 『청정도론』에 따르면 도 닦음은 사마타[止]와 위빠사나[觀] 의 쌍雙으로, 또는 계戒·정定·혜慧의 삼학으로 분류합니다. 중국의 선종에서는 이를 지관겸수止觀兼修 또는 정혜쌍수定慧雙手로 한역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수행법과 팔정도의 일곱 번째 항목인 정념(正念, sammā-sati)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하는 화두일념에서 지난 2007년경 부처님의 원음이 생생히 살아있는 4부 니까야(nikāya, 아함경)를 탐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염(念, sati)에 대하여 세존께서 설하신 대표적인 경들은 『중부』의 「출입식념경(M118)」, 「염신경(M119)」, 「염처경(M10)」의 셋을 들 수 있고, 이 셋을 집대성한 경이 『장부』의 「대념처경(D22)」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념처경(Mahāsatipaţţhānasutta)」은 수행자 자신을 몸(身)·느낌(受)·마음(心)·법(法)의 넷으로 해체하고 이 네 가지를 명상의 주제로 하여 잊지 않고, 새기고, 알아차리고, 관찰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눈먼 범부인 필자에게 해탈의 목마름을 해소시켜준 수행 지침서 역할을 했습니다. 
「출입식념경」과 「염신경」은 사마타 수행법과 관련 있고, 「대념처경」은 위빠사나 수행법과 관련 있는데, 현존하는 미얀마의 위빠사나 수행법은 이 경을 토대로 합니다.
초기경전을 많이 읽고 이해했다고 자부하더라도 이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이웃 목장의 소를 지키는 목동 신세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래서 믿음과 열의를 갖고 「출입식념경」을 토대로 하여 들숨날숨(호흡)에 대한 사띠(sati) 수행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진리를 찾는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내적 보상이 필자에게 나타났습니다. 호흡 사띠가 향상되어 가면서 몸의 경안과 법열이 느껴지고,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마치 하늘이 되어 구름을 바라보듯 바다가 되어 파도를 바라보듯 내안에서 일어나는 느낌, 갈망, 탐욕, 분노, 무지 등과 그 원인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겨났습니다.
호흡 사띠 수행의 결실인 마음의 고요함은 사마타[止, samatha] 수행의 토대가 되고, 느낌과 마음과 법에 대한 사띠를 통해 사성제에 대한 통찰이 깊어지면 이것은 위빠사나[觀, vipassana] 수행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자각하게 됐습니다.
호흡은 들숨날숨(아나빠나)이고, 지금·여기(코끝)에 현전하는 호흡을 잊지 않고 그곳에 지속적으로 주의를 기울여 나가는 의도가 사띠(sati)입니다.  
개념으로서의 들숨날숨에 사띠하는 것은 본 삼매를 증득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합니다. 같은 들숨날숨이라도 코끝에 들어가고 나가는 숨에 집중하는 수행은 사마타이고, 풍대風大인 배의 들숨날숨을 알아차리는 수행은 위빠사나 대상입니다. 
개념에 집중하면 실재가 숨어버리고, 실재가 강하면 개념이 숨어버리기 때문에 위빠사나 수행을 나아가려면 삼매(선정)에서 출정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 필자는 들숨날숨에 대한 사띠 수행이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의 태반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을 스스로 깨칠 수 있었습니다. 
필자가 사용하는 「염·지·관」이란 명칭은 사띠(sati, 念), 사마타(samatha, 止), 위빠사나(vipassana, 觀)의 합성어로서 초기불교의 3대 수행방법인 사띠·사마타·위빠사나 수행의 단계 내지 관계를 설명하기 위하여 병렬적으로 묶어 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인경 스님이 창안한 「염·지·관」 명상, 즉 느낌이나 감정에 초점을 맞추어서 그것을 알아차리고[念], 머물러서[止], 지켜보는[觀] 명상법과는 다르다는 점을 밝혀 둡니다. 
사띠빳타나(sati-patthāna)의 우리말 번역은 ‘마음챙김을 확립하는 수행’,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수행’, ‘사념처四念處 수행’, ‘새김의 토대에 대한 수행’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미얀마 쉐우민 수행센터에서는 「염·지·관」 3자의 관계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노력함이 있고, 노력함(정정진)이 있어야 사띠(정념)가 향상되고 사띠가 향상되어야 사마디(삼매)가 확립된다. 사마디가 확립되어야 사실 그대로 알게 된다(위빠사나).”
출가 사문이 아닌 범부중생의 처지에서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히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마음은 불안정하고 마치 물에서 건져 마른 땅에 내던진 물고기처럼 파닥거리고 길들이지 않는 망아지와 같이 제멋대로 돌아다닙니다. 이처럼 마음의 성질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마음의 일어남이라는 현장을 떠나서 법들(dhammā)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 법들이 유익한 것이든 해로운 것이든 마음이 일어나는 그 시점, 바로 그 현장에서 함께 일어나고 있습니다. 
내 삶의 현장인 내 안에서, 더 구체적으로 내 마음이 일어나는 지금·여기에서 함께 일어나는 법들은 조건 발생적이라는 가르침이 연기법입니다. 
어떻게 법들의 연기 혹은 조건 발생을 파악할 것인가?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마음챙김·삼매· 통찰지, 즉 사띠sati - 사마디samādhi- 빤냐paňňā의 셋을 현장성을 가진 법들을 파악하는 수행법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대념처경(Mahāsatipaţţhānasutta)」에서 제시한 네 가지 명상 주제 가운데서 어느 하나를 대상으로 마음을 챙기고(사띠), 이 대상에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사마디), 이들의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것(반야, 통찰지)의 상호 관련성을 염念·정定·혜慧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비록 재가수행자라 하더라도 몸과 느낌과 마음이 인연 소생하는 현장을 사띠(sati, 正念)하고, 삼빠잔냐(sampajañña, 正知)하는 기능과 힘을 키워 나간다면 자기의 마음을 제어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할 수 있고, 나아가 삼매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팔정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념正念이 대승불교의 실천도인 육바라밀에서는 빠져버리고 대승불교 수행의 어느 곳에서도 강조되지 않고, 간화선만이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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