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39)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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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39)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7)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10.19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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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각원사 제 1벽 벽화 전경
(사진 1) 각원사 제 1벽 벽화 전경

각원사 대웅보전의 내부는 동벽과 서벽은 네 칸, 북벽은 중앙에 출입문을 두고 양쪽에 두 칸의 벽이 있고, 정면인 남면에는 세 칸의 출입문과 양쪽에 한 칸씩의 벽이 있는 구조이다. 가장 큰 벽의 크기가 350cm × 354cm이니 전체 크기는 약 15m × 20m 정도 된다. 안에 들어가면 위압감을 느낄 만큼 크거나 좁아서 갑갑한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석씨원류 벽화는 탄생 전에서 시작하여 열반 이후까지의 내용은 입구에서 들어가 오른편(동쪽)으로 시작해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진행된다. 동벽과 서벽 중앙의 두 벽은 다른 벽들에 비해 조금 넓은데, 여기에는 각각 20장면을 그렸다. 남쪽의 시작과 끝 장면을 제외한 나머지 벽에는 13~15장면이 그려졌다. 각 벽에 그려진 주요 장면들을 통해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투신 의미와 여러 경전에 실린 그 내용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살펴보자.
석씨원류의 첫 장면이 그려진 첫 번째 벽(남동쪽, 사진 1)에 그려진 벽화는 보존 상태가 좋지 않다. 표면의 색 박락이 심해 일부 장면은 원래 상태가 어떤지 파악하기 힘들 정도이다. 벽면 하단에는 일렬로 나란히 서 있는 승려와 관리로 보이는 남자 공양자들을 그렸는데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그 위에 석씨원류의 첫 네 장면이 그려졌다. 그 내용은 최초인지(最初因地), 매화공불(買花供佛), 상탁도솔(上託兜率), 구담귀성(瞿曇貴姓)이다. 벽화의 순서는 오른쪽 아래가 <최초인지>, 그 위가 <상탁도솔>, 왼쪽 아래가 <매화공불>, 그 위쪽이 <구담귀성>이다. 아래 부분에 <최초인지>와 <매화공불>을 표현한 것은 그 장면이 연등불이 표현되는 장면이기 때문인 것 같다. 

(사진 2) 선운사본 최초인지와 매화공불 판화
(사진 2) 선운사본 최초인지와 매화공불 판화

 

<최초인지>는 부처님이 제자인 목련존자의 질문에 수기를 받기 위해서는 많은 공덕을 쌓아야 한다는 것을 자신의 경험을 들어 설명하는 내용이다. 어느 날 목련존자는 정거천에 올라갔다가 천인들이 부처님의 제자가 왔다며 환영하며 부르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듣게 된다.

백천 만 겁 동안을 
부지런히 보리도를 구하셨네. 
많은 세월 지내오면서 
중생들 가운데 큰 보배로세. 
세상에서 보기 어려운 분은 
오직 불세존뿐이네.

이 게송에 감동을 받은 목건련은 왕사성으로 돌아 온 후 석가모니 부처님께 정거천인들에게서 ‘여래는 세상에서 만나기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부처님은 자신이 과거세에 석가, 연등, 불사(弗沙), 가섭(迦葉), 등명(燈明), 사라왕(娑羅王), 능도피안(能度彼岸), 일(日), 교진여(憍陳如), 용(龍), 자당(紫幢), 연화상(蓮花上), 나계(螺髻), 정행(正行), 벽지불(辟支佛), 선사(善思), 시회당(示誨幢) 등 여러 여래를 만나 오랫동안 정성을 다해 섬기고 보시와 공양을 했지만 수기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다 시회당 여래의 나라에서 뇌궁(牢弓)이라는 이름의 전륜성왕이었을 때 초발심하여 모든 선근을 심어 보리를 구하기 위해 밤낮으로 정진하며 다음과 같은 서원을 세운 후 연등불로부터 수기를 받아 부처가 되었다고 말한다. 

‘미래 세상에 성불했을 때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거나, 사문을 공경하지 않거나, 집안에서 친소(親疎)와 존비를 모르거나, 삼세의 인연 업과를 믿지 않거나 오직 탐진치만 행하여 십악으로 꽉 찬 중생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고 법을 설해 교화하고, 많은 이익으로 중생들을 구호하며 자비로 구제하여 모든 괴로움을 없애기를 원하옵니다.’ 

(사진 3) 최초인지
(사진 3) 최초인지

 

이 내용이 실린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은 중국 수나라 때 북인도 출신의 사나굴다(奢那堀多, 523 ~600)가 한문으로 번역한 경전으로, 부처님의 생애를 이해하는 중요한 경전 중 하나이다. 판화(사진 3)의 내용을 설명하는 내용에는 출전을 본행경이라 했지만 남북조시대의 송나라 때 보운(寶雲)이 번역한 『불본행경』은 5구로 된 게송으로 부처님의 전기를 찬양하는 내용으로 판화를 설명하는 글과 차이가 있다. 본행경은 불본행집경을 가리키는 것이며, 편집자의 의도에 따라 편집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 경전은 그 내용이 크게 전생, 성도 이전, 성도 이후 전법기, 세 부분으로 나뉜다. 전생기는 총 5품으로 과거불 시대부터 도솔천에서 마야부인의 태중으로 입태하는 부분까지 다루는데, 이 <최초인지, 사진 3>는 1품 「발심공양품(發心供養品)」에서 그 내용을 따서 편집하였다. 벽화는 여러 보살과 성중들에 둘러싸여 대좌에 앉은 연등불과 그로부터 수기를 받는 뇌궁이 왼쪽 모퉁이에 그려졌다. 

(사진 4) 매화공불
(사진 4) 매화공불

 

그 옆에 그려진 두 번째 장면은〈매화공불, 사진 4>이다. 『과거현재인과경』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이다.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겁 전에 선혜(善慧)라는 선인이 연등불이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외도에게 강론을 하여 받은 돈으로 꽃 다섯 송이를 사서 공양을 드리려고 하였다. 연등불이 계신 곳에 가니 그 나라 왕과 대신들이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꽃을 뿌렸는데, 그 꽃은 모두 땅에 떨어졌지만 선혜 선인이 공양한 꽃은 공중에 머물다 연화좌로 변한다. 이에 부처님이 찬탄하며 아주 세월이 지난 후에 성불할 것이며 이름은 석가라 부르게 될 것이라는 수기를 내린다. 또한  땅이 진창인 것을 본 선혜 선인은 보고 사슴 가죽으로 된 옷을 벗어 거기에 깔고 머리카락을 풀어 그 위를 덮어 연등불이 그 위를 지나가게 한다. 이에 연등불은 다음 세상에 하늘과 인간을 제도할 것이라고 수기하셨고, 선혜 선인은 부처님께 출가하기를 청하여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고 출가한다. 조금 박락되었지만 왼쪽 아래에 머리를 풀고 바닥에 깐 선혜 선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드라마틱한 장면은 그림이나 조각으로 자주 표현되었다. 
오른쪽 윗면의 <상탁도솔>은 호명보살(護明菩薩)이 목숨을 다한 후 천인들을 교화하기 위해 도솔천에서 태어나기를 염원한 후 도솔천에 태어나 머무르다가 천안으로 인간세계를 내려다 보니 중생들이 악업을 짓고, 고통에 싸여 있는 것을 보고 인간 세상에 태어나 깨달음을 얻은 후 중생들을 제도하여 고통을 멸하겠다고 서원하는 내용이다. 호명보살은 일생보처보살로 사바세계에 내려오기 전 도솔천에 머무를 때의 석가모니 부처님의 이름이다. 
왼쪽 윗면에 그려진 <구담귀성>은 정반왕의 먼 조상이 한 나라의 왕이었다가 왕위를 동생에게 양보하고 산으로 들어가 선인에게 배우며 살았는데, 어느 날 도둑을 쫓아 온 관리에게 잡혀 나무에 몸이 꿰뚫리고 화살의 과녁이 된다. 후에 선인이 이를 보고 왕이 흘린 피를 모아 그릇에 담아 사람이 되살아나기를 기원하였다. 열 달 후 사람이 되었는데 그를 구담이라 불렀다. 이들 후예가 석가모니 부처님의 아버지인 정반왕이었다는 얘기로 석가족이 귀한 종족이었음을 밝히는 내용이다. 많은 부분이 박락되어 형태를 분명히 알 수 없으나 갈대처럼 보이는 것 사이에 화살의 과녁이 된 왕의 모습이 희미하게 확인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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