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법정사지, 불교와 역사교육 현장으로 적극 활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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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 법정사지, 불교와 역사교육 현장으로 적극 활용해야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10.26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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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서귀포 중문 법정사에 있는 김연일 스님과 강창규 스님 그리고 방동화 스님 등 스님들이 중심이 돼 이끌고 마을 사람 700여명이 동참한 항일항쟁이 일어났다. 이들이 항쟁은 일본이 만든 중문주재소를 불태우고 일본 기마병에 진압되어 무산됐지만 그 의미는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는 1919년 기미독립선언을 하기 1년 전의 일이었기에 제주사람들의 항일의식이 얼마만큼 앞서 있는지도 짐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도모한 이들이 스님들이었다는 점에서 불교가 그만큼 사람들 의식을 깨어나게 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 뒤 법정사는 일본에 의해 불태워졌고 지금은 돌무더기와 무쇠솥단지, 도자기 파편만이 남아있는 폐사지가 되었지만, 이 스님들이 항일항쟁을 할 수 있게 도와준 이가 누굴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바로 안봉려관 스님이다. 봉려관 스님은 관음사를 창건한 후 대흥사를 다녀오면서 항일항쟁의식에 눈을 뜨게 되었다. 당시 1914년도에 김연일 스님을 관음사로 초청해 법문을 청했고 항일항쟁을 도모할 수 있는 은신처로써 법정사를 창건하게 된다. 따라서 이곳은 안봉려관 스님의 항일의식과 보살행을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성지의 의미도 또한 갖는다. 
하지만 기념탑에는 당시 감옥에 끌려간 스님들과 주민들의 이름만이 새겨져 있을 뿐 안봉려관 스님의 이름은 새겨져 있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치하에서 아주 비밀리에 이루어진 보살행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밖에는 없었다. 
안봉려관 스님이 당시에 감옥에 가지 않아 독립유공자로는 비록 인정을 받지는 못했으나 불자들에겐 법정사의 흔적만으로도 스님의 항일의식이 얼마나 각별했는지를 배울 수 있었고 보살행을 실천한 선지식을 만나는 순례지로도 손색이 없음을 알게 된다. 앞으로 이곳에도 사찰문화해설사들이 파견되어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알려주고, 후손들이 역사의식을 배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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