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당서舊唐書・왕유전王維傳』에는 왕유(701-761)의 생활에 대하여, “장안(京師)에서 매일 십여 명의 스님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귀한 담소로 즐거움을 삼았다. 방안에는 아무것도 없고, 다만 찻잔과 약탕기, 그리고 경전을 놓는 책상과 새끼줄로 엮은 의자뿐이었다.” “퇴궐退闕 후에는 향을 피우고 홀로 앉아 참선과 염불로 일을 삼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시인은 만년에도 여전히 관직에 머물러 있었지만, 생활은 거의 불교에 심취하여 향을 사르고 계율을 지키며(焚香長齋) 자연의 청정함에 기탁하여 불경을 독송하며 명상에 잠기곤 했습니다. 시 한편을 감상하면서 시인의 생활을 상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복부산 스님께 음식을 대접하며 늘그막에 청정의 이치를 알게 되어 |
飯覆釜山僧 반복부산승 晩知淸淨理 만지청정리 |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벼슬살이에 대한 갈등을 에둘러 말하고 있습니다. 자연으로 돌아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벼슬을 하면서 수행하는 자세로 살아갈 것인가, 하지만 우리의 삶이 모두 공허한 것인데 벼슬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면 어떻고, 돌아가지 않으면 어떠한가, 우리의 삶속에 진작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있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왕유의 시속에서 그의 세계관은 물론 시인자신의 독특한 관념적 가치로 만들어낸 선의 경계를 감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