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의 수필가의 《숨은 눈》 발문비평 - 성찰과 깨달음의 거울 미학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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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의 수필가의 《숨은 눈》 발문비평 - 성찰과 깨달음의 거울 미학②
  • 글·안성수 제주대 명예교수
  • 승인 2021.10.2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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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의 수필가의 첫 에세이집 “숨은 눈”이 나왔다. 이번 에세이집의 발문비평은 안성수 제주대학교 교수가 썼다. 안성수 교수는 오랜 교분을 통해 알게된 고성의 수필가의 인간 됨됨이는 물론 문학적인 깊이와 매력을 짚어주면서 격조있는 비평을 펼치고 있다. 2회에 걸쳐 본지에 그 내용을 실었다. /편집자 주
고성의 수필가는 제주 출신으로 아호는 고담(枯淡)이다. 2006년 에세이스트 수필로 등단했다. 에세이스트 이사, 감사, 자문위원과 백록수필문학회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교육에세이로는『바보 교장의 교육 이야기』1,2가 있다. e-mail: jejukse@daum.net
고성의 수필가는 제주 출신으로 아호는 고담(枯淡)이다. 2006년 에세이스트 수필로 등단했다. 에세이스트 이사, 감사, 자문위원과 백록수필문학회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교육에세이로는『바보 교장의 교육 이야기』1,2가 있다. e-mail: jejukse@daum.net

3. 작품 속의 거울 철학
*거울의 메커니즘
이 수필집에는 67편의 작품들이 울울창창한 숲을 이룬다. 이를 형식적으로 분류하면 전통 수필, 단(短)수필, 시(詩)수필, 중편수필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고, 소재나 내용 중심으로 보면 가족수필, 자연수필, 철학수필, 취미수필, 기행수필, 전기수필, 예술가수필, 메타수필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형식과 유형의 다양성은 그의 폭넓은 작가적 역량과 지적 교양의 깊이에서 나오는 실험정신의 소산이다.
작가 고성의에게 수필은 한마디로 자신의 실존과 인생을 비춰보는 거울이다. 그의 거울은 J. 라캉식의 자아 개념을 생성시켜주는, 이른바 가짜 이미지(소타자)를 자리 잡게 하는 심리적 상징이 아니다. 고담의 거울은 라캉과 달리 자신의 현재 이미지를 비춰보게 도와주고, 나아가 바람직한 자아상을 각성하도록 환기해주는 정신적, 영적 거울이다. 
작가는 이러한 거울 이미지를 예술적으로 형상화하기 위해 유추의 구조(1차)와 통찰의 구조(2차)를 사용한다. 이 두 구조는 자연스럽게 연동되어 소재의 숲에서 거울 이미지를 찾아내고, 본질세계의 각성을 위한 몰입을 유도한다. 비유의 유추구조는 주제 의식과 유사성을 함유한 소재를 찾도록 도움을 주고, 통찰구조는 그 소재의 본질 세계로부터 들려오는 영적 깨달음을 체득하도록 이끈다. 그러므로 작가의 성찰 메커니즘 속에서는 유추의 거울과 통찰의 거울이 유기적으로 작동하여, 작가 스스로 소재를 총체적으로 인식하도록 돕는다. 
고성의 작가의 수필은 작품마다 다양한 깨달음의 거울을 담고 있다. 이를테면, 「백야」는 사랑의 본질을 묻는 영적 거울을, 「먼나무의 초상」은 우주 의식으로 포착하는 이상적인 자아의 거울을 의미화한다. 중편 「눈빛」은 아내에 대한 간절한 연민의 거울을,  「플러스 알파 방정식」은 부부관계의 내밀한 사랑의 거울을 형상화한다.  「연리목」은 천생연분의 거울을,  「본질과 허상」과  「도깨비도로의 단상」은 본질 갈망의 거울, 그리고   「숨은눈」은 이중자아의 갈등 속에서 깨어나는 양심의 거울을 초점화한다.
*사랑의 형이상학
이 수필집에는 사랑을 주제나 제재로 다룬 이야기가 많다. 사랑은 본시 깊고 오묘하여 고담에게도 집중적인 탐구의 대상이다. 시수필 형식으로 쓰인  「굼뜬 사람」,  「화석」,  「실과 바늘」,  「문패 달던 날」 등은 작가의 아내에 대한 사랑과 연민의 심리를 거울 이미지로 형상화한다. 이들 작품 속에서 작가는 한평생 지속해온 부부간의 사랑과 그 본질에 대하여 근원적이고 심원한 질문을 던진다. 
 「눈빛」과  「플러스 알파 방정식」은 작가의 은밀한 아내 사랑법을 보여준 작품이다. 전자에서는 위암과 싸우는 아내의 눈빛으로부터 생의 경이로움을 각성하는 거울 이야기를, 후자에서는 바람직한 부부관계의 해답을 찾는 방정식의 거울이 숨어있다. 또한 전무후무한 푸시킨의 사랑법을 그린 「백야」에서는 그의 비극적 사랑을 긴장감 있게 묘파하여 사랑의 본질에 대한 심미 철학적 물음이 절정을 이룬다. 고담이 예술가수필의 형식을 빌려 사랑의 본질을 추적한 것은 시인의 삶 속에서 인간이란 무엇이며, 인생이란 어떤 것인가를 더욱 밀도 있게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본질에 관한 개인적 차원의 물음은   「연리목」에 이르러 하나의 답을 찾는다. 곧, 부부관계의 사랑이란 “미묘함의 심리적 거리”로 정의되는데, 그것은 ‘너무 가까우면 답답하고 너무 멀어지면 불안해지는 황금률의 거리’이다. 그리고 그 이상적인 거리는 “밝음과 어둠, 모자람과 채워줌, 직선과 곡선의 조화”를 통하여 체득하는 지혜의 산물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사랑의 황금률은 구체적인 삶의 조건에 따라 새로운 깨달음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이 주제는 작가에게 영원한 탐구 과제로 남는다. 
사랑의 본질에 관한 사회적 차원에서의 해(解) 찾기는  「숨은눈」에서 시도된다. 인간은 이중자아의 갈등 속에서 공생과 양심, 나눔 등의 이치를 체득하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몽타주 형식으로 추적한다. 즉, 나뭇가지에서 돋아나는 숨은눈처럼, 딸의 중학교 선택과정에서 경험한 양심의 눈과 구세군 자선냄비 앞에서의 나눔의 눈, 마당가 감나무에서 체득한 공생의 눈 이야기를 모아,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이치를 거울 이미지로 형상화한다.
*우주의 본질 찾기
우주의 본질 세계는 모든 작가가 글쓰기를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보편적인 탐구대상이다. 인간은 현상세계에 살면서 끊임없이 본질 세계와의 통합을 갈망하지만, 그 목표는 실존의 숙명적인 유한성과 언어적 한계로 인해 영원한 욕망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J. 라캉에 따르면, 예술의 창작과정은 언어로 완전하게 인식하고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한 실재(實在)와의 만남과 그 체험과정을 고백하는 몸부림이다. 고성의 작가 또한  「본질과 허상」,  「달팽이의 유배」,  「도깨비도로의 단상」,  「비꽃」,  「벽안의 선구자 민병갈」,  「포토 넛」,  「삼족오의 꿈」,  「먼나무의 초상」 등에서 본질 체득에 도전한다. 
 「비꽃」은 작가의 인생에서 본질 찾기의 이정표가 되어준 스승과 멘토에 대한 고백이며,  「도깨비 도로의 단상」과  「달팽이의 유배」는 허상에 쫓겨 본질을 놓치고 사는 인간에 대한 성찰을 다룬다. 이러한 이원론적 모순 상황은 마침내  「본질과 허상」에 이르러 철학수필의 형태로 선을 보인다.  「먼나무의 초상」은 현상과 본질의 통합적 상징인 ‘늘 푸르게 정열을 태우며 사는’ 이상적 자아의 거울을, 그리고 「숨은눈」에서는 이중자아의 갈등 속에서 본성을 회복하도록 촉구하는 양식(良識)의 거울을 형상화한다.
한편, 「포토 넛」과   「삼족오의 꿈」은 본질 세계에 대한 갈망을 예술가수필 형식에 담아낸 작품이다. 작가가 사진광이 된 것도 우주의 본향을 담고 싶은 열망에서 비롯되었고, 전설 속의 삼족오를 서각하면서 본질에 대한 종교적 인식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도 본질 탐구의 욕망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벽안의 선구자 민병갈」에서는 현상과 본질의 이원론적 실존 양식을 조화롭게 통합하여 살다간 이상적 인간상의 거울로 표상한다.

4. 문장철학과 문장미학
수필문장은 작가의 실존적 삶을 의미화하는 인식과 소통의 거울이다. 고성의 작가의 문장은 섬세하고 격조가 높으며 따뜻하다. 게다가,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열정과 집중력으로 독자를 작가의 이야기 속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인다. 이런 문장 특성은 늘 젊게 살아온 작가의 인생관과도 관계가 있지만, 수필의 길을 따라 인생을 순진무구하게 살아온 고매한 인품에서도 나온다. 
고담의 문장과 문체에는 독자를 사로잡는 독특한 기운이 내재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사랑의 에너지이다. 그래서일까, 작품에 동원된 모든 단어와 문장들은 한결같이 따뜻한 포용의 에너지를 내뿜는다. 이런 문장의 힘은 기본적으로 만물이 하나의 본질에서 나온 동일체라는 철학적인 우주 의식에 바탕을 둔다. 삼라만상이 같은 본질에서 나온 것처럼 그가 찾는 우주의 본질 세계 또한 영원한 만물의 본향이다.
따라서 그의 문장이 꿈꾸는 의미의 원천은 우주적 사랑이다. 그는 사랑의 정념으로 자신이 선택한 소재로부터 존재의 의미와 관계성을 읽어내므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포용적인 문채(文彩)를 내보인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 금세 포근한 감성에 젖는 것도 그가 쓴 비유법이나 수사학이 기본적으로 사랑의 에너지를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성의 작가의 이러한 문장철학과 문장 심리는 매우 독특하고 개성 있는 자산(資産)이다. 흔히, 수필을 개성의 문학, 자기 철학의 문학이라고 한다면, 이 작가의 문장과 문체는 그의 철학을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설득술이 될 수 있다. 자기 철학과 자기 미학을 진실하게 담고 있는 문장이야말로 수필을 수필답게 만드는 속성이자 특성이다.
고담의 문장미학적 속성은 마르틴 부버의 만남과 대화의 철학을 연상시킨다. 삼라만상을 진실하고 선하며 아름다운 우주적 인격체로 인식하고 존중하는 데서부터 사랑의 문장은 탄생한다. 그래서 독자들은 작가의 따뜻한 이야기를 들으며 편안하고 부드러운 공감과 설득의 세계로 쉬 빠져드는 것이다. 

 5. 축원의 기쁨
 고담 선생님의 앞날에 청청한 백수(白壽)의 시간이 펼쳐지기를 소망한다. 노년의 수필 쓰기는 심오한 우주 의식으로 실존의 본질과 진실을 총체적으로 돌아보는 시간이다. 부디, 독자들에게 감동적인 삶의 이야기를 오래오래 들려주시길 바란다. 특별한 인연은 하늘이 맺어주는 법이니, 우리의 도반 인연도 하늘이 지켜주시리라 믿는다. 
세상에 수필을 잘 쓰는 작가는 많지만, 수필처럼 사는 작가는 많지 않다. 고담 선생님은 수필도 잘 쓰지만, 수필처럼 사는 작가이다. 그래서 이 작품집은 독자들이 수필의 진미를 맛보는 귀한 선물이 되고, 가족들에게는 고귀한 사랑의 철학을 전하는 가보가 되리라 확신한다. 고성의 작가님의 인생 여로에 신의 보살핌이 늘 함께하시길 빈다.
/ 글·안성수 제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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