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불교가 만난 사람 - 수열 스님 - “묵담 큰스님 법력 이을 다음 스님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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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불교가 만난 사람 - 수열 스님 - “묵담 큰스님 법력 이을 다음 스님 기다려”
  • 김익수 대기자
  • 승인 2021.10.26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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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불교의 등불을 밝히다.
근대 제주불교 발전에 밑거름이 되어온 도내 원로 스님들의 발자취를 찾아가보며, 지혜를 들어보는 기획 프로그램 “제주불교의 등불, 원로를 만나다.” 라는 주제로 연재한다.
이번 호에는 지난 호에 이어 도내 태고종단의 법맥을 있고 있는 수열 스님(남원 선광사 회주 수열 스님)을 지면에서 만나본다.
/편집자 주
선광사 경내를 걷고 있는 수열 스님
선광사 경내를 걷고 있는 수열 스님

선광사대작불사 이루고 법보전 갖춰
태고종 종무원사 기금마련에도 앞장
천지연유등문화축제 탄생주역으로

▶수열 스님께서는 지난 1980년 4월에 경남 함양군 지리산 영원사에 소장되어 있는 목판본류등불경전 59종, 164책, 경전 16종, 조사어록 33종, 의례류 10종을 스님께서는 선광사로 옮겨 오셔서 그 후 2004년 9월9일 제주도가 유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를 연구하시거나 공부를 원하시는 분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요?
▷예. 잘 보관은 돼있습니다만, 필요하시는 분들을 위해 시절 인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인본을 만들어서 필요하신 분들을 위해 성보문화원 같은 곳에 비치해서 쉽게 열람할 수 있는 기회가 닿는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유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면서 지난 2011년 10월 문화재를 보관할 ‘법보전’ 를 낙성한 것으로 알고있습니다만, 이에 대한 설명을 들었으면 합니다.
▷예. 한마디로 신도분들의 원력입니다. 30평 규모의 법보전은 선광사의 성보박물관이나 다름없습니다. 여법한 법보전의 낙성은 문화재를 전시할 수 있게 됐을 뿐 아니라 순례객들의 참배도 늘어나면서 신도들은 가슴 뿌듯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도분들은 이구동성으로 스님께서 사찰을 투명하게 운영하신다고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그동안 선광사를 어떻게 살림을 챙겨 오셨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예.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1972년 제가 27세에 선광사 3대 주지로 취임한 후 신도들이 법문을 펴기 위해서 공부의 필요성을 느껴 3년 동안 순천 선암사 불교전문강원의 문을 두드렸고, 선광사 도량 내 중창불사로 대웅전 각 탱화를 봉안하고 범종을 조성하게 됩니다. 30여년이란 세월이 흐른 대웅전은 비가 새고 누추해져 법당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자 1984년에 대작불사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대웅전과 사천왕문, 범종루, 전통한옥 양식인 요사와 정재소가 함께 신축되었습니다.
80년대 초 만하더라고 도내 사찰은 거의 기와를 얹은 전통양식보다 슬레이트 지붕이 많았었습니다. 그만큼 사찰 환경이 열악하기도 했었죠. 
1982년 선광사에서 재자불자 500여명이 보살계를 수계하는 보살계 법회가 열렸는데, 전계사가 바로 묵담대종사였습니다. 중창불사에 매진할 무렵 안타깝게도 묵담대종사 사리 열반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선광사 뒤뜰에 묵담대종사의 사리 8과 가운데 1과를 봉안한 3층 사리탑을 세워서 큰 스님의 뜻을 기리고 있는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대작불사뿐만 아니라 종단 발전에도 한 획을 그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 태고종 제주교구 종무원 총무국장 소임을 맞기도 했습니다. “종무원사를 지을 때 참으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부지는 매입했지만, 종무원사를 지을 재정은 열악했습니다. 하지만 건설업을 하셨던 서상흠 태고종 제주교구 신도회장의 도움과 성산포 터진목에서 유등재 등을 통해 기금을 조성하는 등 수많은 종도들의 노력으로 오늘날의 종무원사가 탄생을 하게 되었죠. 이를 토대로 제주불교대학이 태동하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며, 이어 2005년 1월 개원한 제주태고원의 마중물이 되는 등 종무원사는 재가불자 교육과 불교계가 사회복지시설로 뻗어나갈 수 있는 뿌리가 된 셈이라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잠시 멈춰진 상태입니다만, 서귀포 천지연유등문화축제를 탄생하는데, 주역이 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 2010년 서귀포불교문화원 2대 이사장에 취임하고 나서 불교의 생활화, 대중화, 사회화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지역 내 불교문화의 뿌리를 튼튼히 다져보기로 결심을 했었죠. 그래서 서귀포불교대학을 비롯해 다양한 불교문화사업을 통해 문화원 창립 당시의 취지를 더욱 공고히 해나갔습니다. 제1회 도민화합과 시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천지연 유등문화축제’가 처음 열릴 때 반대하시는 분들도 많았지만, 설득을 통해 성공적으로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수행자로서 출가한 지 60년이란 세월이 흐른 가운데도 그 세월이 무뎌지지 않은 것은 스스로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뼈저리게 실천하는 것만이 환한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열어갈 수 있었기에. 고행을 넘고 넘어왔으리라 생각합니다. 
 늘 마음엔 남에게 보탬이 되는 삶이 곧 이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하신다는 게 스님의 지론이신 것 같습니다. 수열 스님. 뭔가 고민스러운 일이 있으신 것 같은데, 이 기회에 말씀을 주시는 것도 좋으실 것 같습니다.
▷한 가지 고민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걱정스럽기도 하고  짐이 되기도 합니다. 무거운 짐을 쉽게 다른 분에게 넘긴다는 것, 그 자체가 제 자신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묵담대종사의 법을 상징하는 가사는 동산 스님이 입적하자 제게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큰 스님의 가사를 법력을 갖춘 스님에게 넘겨줘야 하는 책무가 저에게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스님께서 고민하시는 책무가 잘 풀릴 수 있기를 함께 기원하겠습니다. 스님께서 걸어오신 삶과 수행의 발자취를 2회에 걸쳐서 들어봤습니다만, 아직도 다 풀어보지 못한 일들이 많은데,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오늘 여기서 접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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