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 뽑은 이띠웃따까 (Itivuttaka, 如是語經)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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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 뽑은 이띠웃따까 (Itivuttaka, 如是語經) (28)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11.02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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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주석서』에서 전해지는 쿳줏따라(Khujjuttara)는 선천성 꼽추이자‘꼬삼비’나라의 사마와띠 왕비의 하녀였다. 이런 비천한 신분임에도 전생에 벽지불을 시봉한 공덕이 있어 부처님께서‘꼬삼비’도시에서 설법하신 112개의 경을 듣고, 수지하여 예류과를 증득하였음은 물론, 그 경들을 왕비와 시녀 500명에게 전달하여 그 여인들까지 예류과에 확립하게 함으로써 보살도를 실천하셨기에 부처님의 재세 시에‘청신녀 제자들의 모범이고 표준’이라는 칭찬을 받으신 님. 법의 창고지기인 아난다 존자를 포함한 500명의 아라한들이 빠알리 삼장 가운데 경장의 다섯 번째인『쿳다까 니까야』의 네 번째 경전으로 결집하여 2600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 전승된 이 경전의 정수를‘각묵’스님께서 정리하여 격 주간으로 30여 회 법문한다.
각묵 스님은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로 지난 30여년간 초기 불교의 교학과 수행체계를 널리 알리는 초기불전들을 한글로 옮기는 번역불사를 꾸준히 전개하며 불교의 현대화를 통한 불교교리의 대중화에 기여해 왔다. 1957년 밀양 출생으로 1979년 화엄사에서 도광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수지, 1982년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부산대 수학교육과 3학년 재학 중 출가 7년간 제방선원에서 수행하였고, 1989년부터 10년간 인도로 유학(산스끄리뜨, 빠알리, 쁘라끄리뜨를 수학)하여, 인도 뿌나대학교 산스끄리뜨어과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2년 대림 스님과 초기불전연구원을 설립하여, 팔리어 삼장을 번역하였으며, 조계종 교수아사리, 실상사 화림원 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각묵 스님은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로 지난 30여년간 초기 불교의 교학과 수행체계를 널리 알리는 초기불전들을 한글로 옮기는 번역불사를 꾸준히 전개하며 불교의 현대화를 통한 불교교리의 대중화에 기여해 왔다. 1957년 밀양 출생으로 1979년 화엄사에서 도광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수지, 1982년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부산대 수학교육과 3학년 재학 중 출가 7년간 제방선원에서 수행하였고, 1989년부터 10년간 인도로 유학(산스끄리뜨, 빠알리, 쁘라끄리뜨를 수학)하여, 인도 뿌나대학교 산스끄리뜨어과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2년 대림 스님과 초기불전연구원을 설립하여, 팔리어 삼장을 번역하였으며, 조계종 교수아사리, 실상사 화림원 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내면의 때 경(It3:39)

【경전】

1. 이것은 참으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아라한께서 말씀하신 것을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내면의 때, 내면의 적, 내면의 원수, 내면의 살인자, 내면의 반대자가 있다. 무엇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은 내면의 적, 내면의 원수, 내면의 살인자, 내면의 반대자이다. 비구들이여, 성냄은 내면의 적, 내면의 원수, 내면의 살인자, 내면의 반대자이다. 비구들이여, 어리석음은 내면의 적, 내면의 원수, 내면의 살인자, 내면의 반대자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내면의 때, 내면의 적, 내면의 원수, 내면의 살인자, 내면의 반대자가 있다.”
이러한 뜻을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2. 여기서 이것을 이렇게 
‘게송’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탐욕은 손해를 낳고 
탐욕은 마음을 요동치게 하고
안으로 두려움이 생기지만 
사람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탐하는 자는 이익을 알지 못하고
탐하는 자는 법을 보지 못하나니
탐욕이 사람을 지배하면 
그때는 칠흑 같은 어둠만이 있을 뿐.
그러나 탐욕을 제거한 자 
탐나는 것을 탐하지 않는다.
탐욕이 그로부터 제거되나니 
물방울이 연잎으로부터 그러하듯이.

성냄은 손해를 낳고 
성냄은 마음을 요동치게 하고
안으로 두려움이 생기지만 
사람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성난 자는 이익을 알지 못하고
성난 자는 법을 보지 못하나니
성냄이 사람을 지배하면 
그때는 칠흑 같은 어둠만이 있을 뿐.
그러나 성냄을 제거한 자 
성나는 것에 성내지 않는다.
야자나무 열매가 줄기로부터 그러하듯이.

어리석음은 손해를 낳고 
어리석음은 마음을 요동치게 하고
안으로 두려움이 생기지만 
사람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어리석은 자는 이익을 알지 못하고
어리석은 자는 법을 보지 못하나니
어리석음이 사람을 지배하면 
그때는 칠흑 같은 어둠만이 있을 뿐.
그러나 어리석음을 제거한 자 
어리석게 하는 것에 어리석지 않는다.
그는 모든 어리석음을 제거하나니
태양이 뜨면 어둠을 그러하듯이.”

이러한 뜻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셨으니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 

【해설】

본경에는 모두 9개의 게송이 실려 있는데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각각 3개씩 배대가 된다. 
본경에서 탐·진·치 삼독에 물든 자는 ‘이익을 알지 못한다.’라고 한 게송은
열 가지 유익한 업의 길이라는 법(十善業法)을 체험하여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는 뜻이고, ‘법을 보지 못한다.’라고 한 게송은 사마타와 위빳사나의 법을 보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주석서는 풀이하고 있다.
고대 인도의 바라문 전통에는 팍구나 달(음력 2∼3월)의 보름날에 강물에 목욕하면 한 해 동안 지은 죄업이 모두 씻겨 진다는 사견邪見이 있었다. 
강가 강에서 목욕재계하는 순다리까 바라드와자 바라문에게 부처님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마음의 때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와 같이 게송을 읊으시며 따끔하게 충고하셨다.    『바라문 상윳따』(S7)
“바라문이여, 팔정도는 계행이라는 여울을 가진 호수
지혜의 달인들은 거기서 목욕하여 
물들지 않은 몸으로 저 언덕으로 건너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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