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호 시인이 들려주는 내 마음을 젖게 하는 시 - 옥상의 가을 / 이상국(194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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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호 시인이 들려주는 내 마음을 젖게 하는 시 - 옥상의 가을 / 이상국(1946 ~ )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11.0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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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 올라가
메밀 베갯속을 널었다
나의 잠들이 좋아라 하고
햇빛 속으로 달아난다
우리나라 붉은 메밀대궁에는
흙의 피가 묻어있다
지구도 흙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는 가을이 더 잘 보이고
나는 늘 높은 데가 좋다
어쨌든 세상의 모든 옥상은
아이들처럼 거미처럼 몰래
혼자서 놀기 좋은 곳이다
이런 걸 누가 알기나 하는지
어머니 같았으면 벌써 달밤에
깨를 터는 가을이다
오영호 시조시인
오영호 시조시인

이상국 시인은 강원도 양양에서 출생했다. 1976년 <심상>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문학지 『유심』 주간을 역임했고,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윗 시는 제24회 정지용 문학상 수상작이다. 
시적 화자는 넓지 않은 옥상에 올라 매일 배갯속을 널면서 햇빛 속으로 잠이 달아나고, 흙의 피를 보고, 넓은 하늘의 꿈을 생각하는 일, 깨를 터셨던 어머니 생각 등 여러 이미지들이 옥상의 가을을 형상화하고 있다. 또한 농사꾼의 자식으로 태어나 유년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동심의 세계도 들어 있다. 메밀밭이 지천인 강원도 특유의 정서를 바탕으로 토속적 향기도 물씬 풍긴다. 오래 숙성되어 발효된 시의 향기가 은은한 달빛을 타고 내면 깊숙이 밀려들게 하는 서정시의 진수를 보는 것 같다. 
이상국 시인 스스로가 수상 소감에서 말했듯이 “모든 것이 어머니의 집만 못했다……결국 어머니에게로 가는 길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듯이 시인의 삶이 갖는 외로움과 힘든 여정의 길이라는 걸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옥상의 가을은 우리의 삶의 굴레를 되돌아보는 생의 그루터기,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품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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