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진 철학박사의 '노자' 산책 (1) - 도덕경 - “노자는 가장 오래된 고전이면서 가장 현대적이다”
상태바
고은진 철학박사의 '노자' 산책 (1) - 도덕경 - “노자는 가장 오래된 고전이면서 가장 현대적이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11.09 10: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렇다면 노자의 어떤 면이 2500년을 거슬러
오늘날까지 큰 울림을 주는 것일까?
또한 노자의 사상과 불교는 어떤 면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지니며,
중국 불교는 노자를 어떤 식으로 수용하였을까?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를 맞으면서 한국에는 노자 열풍이 불었다. 그러한 열풍은 단순히 한 철학자의 호소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새로운 변화에 직면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 변화는 바로 이성을 넘어 감성으로, 단일을 넘어 다원으로, 남성성을 넘어 여성성으로의 회귀를 보여주는 흐름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노자』는 이처럼 가장 오래된 고전이면서도 가장 현대적이다. 그렇다면 『노자』의 어떤 면이 2500년을 거슬러 오늘날까지 큰 울림을 주는 것일까? 또한 『노자』의 사상과 불교는 어떤 면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지니며, 중국 불교는 『노자』를 어떤 식으로 수용하였을까? 
인도와 중국은 지리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이 두 나라는 지역적 차이뿐만 아니라 기후, 문화, 사상 또한 매우 다르다. 인도가 건기와 우기가 뚜렷한 사바나 기후를 특징으로 추상적 사고와 내세적인 성향이 강하다면, 상대적으로 추운 중국은 구체적이고 활동적이며 현세적인 성향을 지니었다고 할 수 있다. 공자와 더불어 중국의 대표적 사상가로 불리는 노자는 『노자』, 혹은 『도덕경』이라 불리는 고전을 통해 25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대인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그러나 노자가 사람인지 책인지, 사람이라면 실제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견이 분분하다. 
노자는 사마천『사기』에 따르면 초나라 고현 여향 곡인리 사람으로 성은 이(李)씨 이름은 이(耳)이며 자는 담(聃)으로 춘추시대 말기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 노자는 고유명사이면서도 보통명사가 된다. 그야말로 노자(老子) 즉 늙은 사람이 쓴 책 『노자』인 것이다. 이는 예를 들면 제주 사람이 쓴 『제주』라는 책이라고 하는 것과도 같다. 이처럼 노자는 사람이름이기도 하지만 책이름이기도 하다. 사마천 『사기』에는 『노자』 저술 동기에 대하여 노자가 주나라가 쇠미해지는 것을 보고 주나라를 떠날 때 함곡관 관령 윤희의 간청에 의해 상하로 두 권 5천여자의 글을 남겼다고 한다. 그러나 이 글이 지금 우리가 접하는 『노자』라고 보기는 힘들다. 2500년이라는 세월동안 시대적 요청에 의해 책 『노자』는 여러 번 변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원판이 따로 있다고 보면 곤란하다. 다만 여러 판본에 따라 해석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판본은 1993년에 발굴된 곽점본이다. 대나무 죽간에 씌여진 곽점본은 최소한 전국시대 중기 후반 이전으로 추정된다. 그 이전 1973년에는 중국 남부 마왕퇴 고대 묘지에서 두 종류의 『노자』 사본이 비단에 씌여진 채로 발굴되었다. 이것이 백서본이다. 이 판본은 전국 말엽에 씌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반유가화 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2009년에는 북경대학이 화교로부터 거의 온전한 상태의 전한대 죽간본을 기증받았는데 이것이 한간본이다. 이 판본은 곽점본과 백서본의 결함을 보완한 현존 최고의 판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도가의 차원에서 씌여진 돈황본과 하상공본이 있다. 이 판본에는 몸을 닦고 기운을 연마하는 양생술의 견지에서 붙인 주석들이 들어 있다. 최근까지 가장 많이 알려진 통행본으로는 왕필본이 있다. 왕필본은 위나라 현학자 왕필이 주석을 붙인 판본으로 주로 사대부들에게 선호되어 인쇄본으로 간행되었다. 이처럼  『노자』는 판본에 따라 주석에 따라 내용이 천차만별이다. 
『노자』는 판본만큼이나 해석 또한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이루어져왔다. 가장 대표적인 해석으로는 제왕학으로써의 『노자』를 들 수 있다. 제왕의 통치술을 위한 근거로 도가 이론이라면 덕은 그 실천으로 이러한 도덕의 정치적 작동 방식이 무위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노자』를 현학 혹은 형이상학적 해석으로 해석하는 갈래가 있다. 위진남북조 시대 청담 사상의 유행과 불교의 유입으로 『노자』에 대한 철학적이고 존재론적인 해석이 요청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당시 불교의 『반야경』에서 본체와 현상을 설명하는 용어로 『노자』의 유와 무를 든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세 번째로 황로학 혹은 도교적 해석이 있다. 『노자하상공장구』와 『노자상이주』가 이에 해당하는 문헌으로 이는 인간의 근원적 생명력을 보존하고 길러 장생불사를 목표로 한다. 이러한 갈래는 후한 이후 도교 교단의 성립과 더불어 양생학으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노자』는 신유학자들에 의해 성리학의 테두리에서 새롭게 해석되기도 하였다. 『노자』의 구절이 주돈이의 태극도설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율곡 또한 이와 비슷한 해석을 하였다. 다섯 번째는 현대적인 경향으로 신과학 혹은 신비주의적 해석이 있다. 과학자인『조셉니담』 , 『프리초프 카프라』는 중국의 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서양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유로   『노자』에 관심을 가졌다. 서양의 영성가들 또한 종교의 테두리 안에서『노자』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기울였다. 여섯 번째 우주의 생성과 소멸에 대한 접근으로 감산스님, 탄허스님, 왕필의 주석은 우주 자연이라는 역동적 세계가 어떻게 생성, 소멸, 지속하는 지에 대한 사유를 『노자』에 담고 있다. 특히 스님들의 불교적 『노자』 해석은 단순히 우주 자연의 원리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작용까지 담고 있어 중국 사상가들의 본체론적 접근과는 층위를 달리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2천 5백년을 거슬러 5천여 자에 불과한『노자』가 지금까지도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그 시대가 당면한 문제를 모두 담을 수 있는 열린 텍스트이기 때문이리라..그 옛날에 도(道), 덕(德), 무위(無爲), 자연(自然) 등등에 대해 사유하였던 고대인들은 어쩌면 현대인들에 비해 훨씬 지혜로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고대인처럼 사유를 통해 도(道)에 들어가지는 못하더라도 언어의 찌꺼기로라도 『노자』의 새롭고도 오래된 사유가 후대에까지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 산책의 첫걸음을 떼고자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