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과 死를 뛰어넘는 진리의 횃불 - 사성제·팔정도·12연기 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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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과 死를 뛰어넘는 진리의 횃불 - 사성제·팔정도·12연기 ⑷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11.17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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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제.팔정도.12연기(4)

불자 여러분! 우리의 삶은 마냥 지속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어렵사리 인간의 몸을 받아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 불가에서는 ‘인신난득(人身難得)이요, 불법난봉(佛法難逢)이라. 불법을 만나도 정법을 만난다는 것은 더욱 더 어렵다’고 말을 합니다.  
저가 알고 있는 지식과 부처님의 깨달음을 향한 롱롱 스토리를 종합해 보면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기적이고 무지무지 어렵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가 있습니다. 얼마나 어려운지 아십니까? 
여기에 대한 내용이 『상윳따 니까야』(S56) 제11장 「다섯 갈래 운명의 품」에 상세하게 나타나 있는데, 어느 날 부처님과 제자들이 경행을 하시던 중 어떤 비구에게 한 가지 의심이 떠올랐습니다. 무슨 의심이냐 하면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거나 인간 이상으로 태어나는 수가 많을까? 아니면 인간 이하의 세계인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라고 하는 사악도(四惡道)에 떨어지는 수가 많지 않을까에 대한 의심이 일어나서, 세존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여쭙겠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으로 죽어서 다시 인간 내지는 인간 이상으로 태어나는 수가 많겠습니까? 아니면 인간 이하, 즉 사악도에 태어나는 수가 많겠습니까? 그렇게 물어요. 
부처님께서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가 손톱 끝으로 흙먼지를 집어 들어 비구들에게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큰 대지와 내가 손톱 끝에 집어든 이 흙먼지와 어느 쪽이 더 큰가?” 비구들이 이렇게 답을 합니다. “세존이시여, 이 큰 대지가 훨씬 크고 세존께서 손톱 끝에 집어든 흙먼지는 아주 작습니다. 세존의 손톱위에 있는 그 흙먼지는 극히 미미하고 또 미미합니다. 그러나 대지의 흙먼지는 셀 수 없이 많고 또 많습니다.” 
이것을 한문 경전에서는 ‘조갑토(爪甲土)의 비유’라고 번역을 했어요.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으로 죽으면 다시 인간 내지는 인간 이상으로 태어나는 수는 내 손톱 위에 있는 흙먼지에 지나지 않고 사악도 가운데 태어나는 중생들이 더 많다는 게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이 가르침은 윤회를 부정하는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을 겁니다.
저가 이 경을 처음 접했을 때 약간의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로 두렵고 아찔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20여년 넘게 초기불교를 배웠고 또 동국대 경주캠퍼스에서 7년간 초기불교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겪고 보아온 그리고 초기불교를 배우기 이전 30여 년 동안을 대승불교를 공부하면서 경험한 여러 정황들을 비교해 볼 때 초기불교와 대승불교를 막론하고 재론의 여지가 없는 선업선과, 악업악과라는 생사윤회의 진리를 말씀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는 ‘상윳따56’ 마지막 품에서 무엇을 생각해 봐야 되는가? 여기에는 두 가지 사안을 가지고 숙고를 해 봐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이 자리에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다는 이것은 기적입니다. 기적이라는 게 뭡니까? 숫자로서 측정할 수 없을 때 그것을 기적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기적입니다.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더라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즉 사성제를 모른다는 
무명이 원인이 되어서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 생, 노사라고 하는 12고리의 사슬에 묶여 우리는 생사(生死)라는 윤회의 세계에서 고통에 반복을 거듭 거듭하고 있다는 겁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러한 윤회의 고통을 실존적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부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는 나의 가르침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경봉스님께서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다르마((dharma, 법)를 사부대중들에게 전할 때는 더욱더 조심을 해야 한다고 늘 강조를 했습니다.
깨달음의 노래라고도 하는  『증도가(證道歌)』에서 현각(玄覺, 647∼713)대사는 ‘약장망어 광중생(若將妄語 誑衆生) 자초발설 진사겁(自招拔舌 塵沙劫)’이라는 무섭고 두려운 경책을 해놓았습니다. 만약 너희들이 사실과 다른 엉뚱한 소리를 해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엉뚱한 곳에 떨어지게 한다면 너는 혀를 빼는 지옥 고를 진사겁 토록 면치 못한다는 뜻입니다.
또 한 가지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일본의 동명만화 시나리오를 멋지게 인용하여 그것을 잘 영상화한 것이 박찬옥 감독의 ‘올드보이’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보신 분이 아시겠지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소개하면 헛된 말 한마디 잘못한 과보 때문에 15년 동안을 지하 감방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배우 최민식)은 혀를 꺼내 가위로 자르려는 장면으로 이 영화는 끝을 맺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2004년 세계 최고에 속하는 영화제인 프랑스 칸 국제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황경환 박사- 사단법인 21세기불교포럼 공동이사장 - 초기불전연구원 선임연구원
황경환 박사- 사단법인 21세기불교포럼 공동이사장 - 초기불전연구원 선임연구원

부처님의 다르마를 자의적으로 왜곡되게 말하는 이들은 팔정도의 계목인 정어(正語), 즉 고대 인도의 빠알리 어로 표현하면 삼마바차(sammā-vācā)의 계를 어기는 게 됩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반야심경 강의를 하는 소위 저명한 인사들이 반야심경의 다섯 만트라를 정확하게 이해해서 설하고 있는지를 되새겨보면 궤변에 가까운 소리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금강 삼매경」은 전8품으로 되어있는데 그 가운데 제6품 ‘진성공품(眞性空品)’에는 오온이 모두 공했다는 것을 설하면서 부처님께서 설하신 팔정도에 대해 극찬을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팔정도는 계정혜 삼학이고, 그것이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이고, 이 뿐만 아니라 중생의 모든 고통을 덜어주는 주(呪)라고 명확하게 얘기를 해 놨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 팔정도에 대한 전설 같은 얘기를 비유해서 두 가지로 요약을 해 놨어요.  “선남자야 향산 가운데 못이 있으니 그 이름이 아나바답타라이르는데 그 물은 여덟 가지 맛을 갖췄으므로 마시는 사람마다 모두 병이 없어지듯이 금강 삼매도 그러하여 여덟 가지 바른 도를 구족 하였으므로 보살이 닦아 익히면 모든 번뇌의 병을 끊어버린다.” 팔정도의 위대함을 얘기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라고 하는 이 불가사의한 법이 계정혜 삼학이라는 것을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금강삼매경」은 그 뜻이 얼마나 난해했던지 전해오는 내용이 이렇습니다. 불교문화가 왕성했던 신라시대 때도 이 경은 원효 스님 이외에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하는 스님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 경의 전8품을 자세하게 읽어보면 반야심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거의 일치합니다. 사실은 반야심경은 너무 쉬운 내용이기는 하지만 반야심경에 대한 심도 있는 관찰의 부족함 과 초기경전의 기초지식이 없이 반야심경을 이해 한다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저의 경험이고 입장입니다. 
예를 들면 이 반야심경에서 쟈아나(선정)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네 가지 禪 가운데서 초선정에서는 제2선정에서는 제3선정에서는 제4선정에서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고 4선처인 무색계라고 하는 곳에 들어가서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는 어떤 곳이고 그것을 뛰어 넘어가서 신·구·의(身·口·意)삼업이 완전히 사라진 상수멸진정의 세계는 어떤 것이라고 하는 점은, 초기경전(상윳따41)에서 ‘까마부 존자’와 ‘짓따 장자’ 사이의 법담에서 나타나 있고, 여기에 대해서는 산스크리트 원문에서 본 「반야심경 역해」(김영사 출판, 김사철·황경환 공저)라는 책에서 알기 쉽게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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