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41)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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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41)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9)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12.0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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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가출, 유성출가

각원사 대웅보전의 동벽의 세 번째 칸은 두 번째나 다섯 번째 칸보다 기둥 사이의 간격이 조금 더 넓어 한 칸에 총 20장면의 이야기가 표현되었다. 이들 장면은 세로로 네 줄, 각 줄에 다섯 장면씩 배치되었는데, 이야기 전개는 아래 단 맨 오른쪽에서 시작하여 왼쪽으로 진행되며 네 장면이 채워지면 윗단으로 올라가는 방식으로 그려졌다. 표현된 이야기는 대흥륭사본 석씨원류의 순서로 20번째 장면  〈오욕오락(五欲娛樂)〉부터 39번째 장면  〈선하조욕(禪河澡浴)〉까지이다. 그 사이의 장면은 다음과 같다. 단에 붙여진 번호는 아랫단에서 윗단으로 올라가는 순서이고, 각 단의 장면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진행되며 앞에 붙여진 번호는 석씨원류에 게재된 순서이다.

 

1단: 20오욕오락(五欲娛樂)        21공성경책(空聲警策) 
      22반왕응몽(飯王應夢)        23노봉노인(路逢老人)
2단: 24도견병와(道見病臥)        25노도사시(路覩死屍)
      26득우사문(得遇沙門)        27야수응몽(耶輸應夢)
3단: 28초계출가(初啓出家)        29야반유성(夜半逾城)
      30금도낙발(金刀落髮)        31차익사환(車匿辭還) 
4단: 32차익환궁(車匿還宮)        33힐문림선(詰問林仙)
      34권청회궁(勸請廻宮)        35조복이선(調伏二仙)
5단: 36육년고행(六年苦行)        37원향자량(遠餉資糧)
      38목녀유미(牧女乳糜)        39선하조욕(禪河澡浴)
 

이 20장면은 태자 탄생 후 아사타(阿私陀) 선인이 태자가 성장하면 전륜성왕이 되든지 출가하여 여래가 될 것이라고 점쳤던 것을 기억한 정반왕이 태자가 성장하자 혼인을 시키고 궁성 안에서 온갖 욕망을 다 채우며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했다는 이야기인 〈오욕오락〉에서 시작한다. 아버지의 의도대로 싯다르타 태자는 10년의 세월 동안 한 번도 궁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하늘에서 이러한 광경을 본 작병천자(作甁天子)는 ‘태자가 10년 동안 궁에서 받은 온갖 즐거움에 빠지면 출가할 마음이 갖지 못한다. 더 늦기 전에 스스로 깨달아 속세를 버리고 출가해야 하는데 내가 그 일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한다(공성경책). 그리고 태자에게 출가할 마음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 먼저 정반왕이 일곱 가지 꿈을 꾸게 하고 바라문으로 모습을 바꾸어 그 꿈은 태자가 출가하여 성불할 것이라는 해몽을 한다(반왕응몽). 그러자 정반왕은 태자가 궁중 생활에 만족하여 출가하지 않게 하려고 고민한다. 작병천자는 태자가 삶의 좋고 나쁨을 보면 출가를 결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태자에게 성 밖의 숲을 찬탄하며 나가서 감상하기를 권한다. 태자가 외유를 하려고 하자 정반왕은 태자가 가는 길가에 좋지 않은 것을 모두 없애라는 칙령을 내렸고, 태자는 화려하게 장식된 수레에 타서 성의 동문 밖으로 나갔다. 이때 작병천자는 허리가 굽어 지팡이에 의지한 남루한 옷을 입고 엉킨 머리카락과 수염은 하얗게 센 걸음조차 불안한 노쇠한 노인으로 변해 태자가 가는 길에 나타난다. 항상 젊고 건강한 사람들만 봤던 태자는 깜짝 놀라서 수레를 모는 시종에게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시종이 답하였다. 
“노인으로 몸이 쇠약하고 기력이 쇠잔하여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순간이 되면 목숨을 놓는 사람입니다.”
그러자 태자가 다시 물었다.
“나도 저 사람처럼 늙은 모습으로 변하는가?”
수레 모는 시종이 귀하든 천하든 세상 모든 사람은 늙음을 피할 수 없다고 하자, 태자는 숲으로 가던 수레를 돌리라고 해서 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늙음을 피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노봉노인).
얼마 후 태자는 다시 성 밖으로 나가려다 이번에는 성의 남문으로 나선다. 이때도 작병천자가 태자 앞에 나타나는데, 이번에는 뼈만 앙상하게 남고 피부도 누렇게 뜬 가쁜 숨을 겨우 내쉬는 병자의 모습으로 변했다. 이에 태자가 시종에게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시종이 답하길, ‘병자는 고단함이 쌓여 힘이 없고 죽을 때가 되었으나 돌아가 의지할 데가 없는 사람으로, 살려고 해도 그럴 방법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에 태자는 모든 사람이 그러하냐고 묻자 시종은 ‘이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 세계의 모두가 이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태자는 숲으로 가서 놀지 않고 궁으로 돌아가 고요히 앉아 생각하기 시작했다 (도견병와, 사진 1).

(사진 1) 태자가 길에서 병자를 만나는 장면, 각원사 도견병와
(사진 1) 태자가 길에서 병자를 만나는 장면, 각원사 도견병와

 다시 시간이 지나 태자는 시종에게 숲으로 가자고 했고, 이번에는 서쪽 문으로 나갔다. 이에 작병천자는 시체로 변해 길 위에 누워 있었고, 태자가 시종에게 누구냐고 묻고 시종에게서 ‘세상 모든 사람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태자 역시 그러하다’는 말을 듣는다(노도사시). 
태자가 성 밖으로 갔다가 돌아온 후 근심하고 즐거워하지 않는 것을 본 정반왕은 태자가 다시 숲으로 나가려고 하자 시종에게 이번에는 북문으로 나가라고 하고, 가는 길을 깨끗하고 하고 더욱 화려하게 장식하라고 명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정거천인(淨居天人)이 수염과 머리카락을 깎은 비구의 모습으로 변해 태자 앞에 나타난다. 태자가 시종에게 누구냐고 묻자 출가인이라고 하자 태자가 수레에서 내려 비구에게 출가한 사람에게는 어떠한 이익이 있냐고 묻는다. 이에 비구가 대답하길, ‘세상에서의 삶은 생로병사로 한결같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허물어진다. 그러므로 출가하여 한적한 곳에서 수행하며 방편을 구해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모든 중생을 고통으로부터 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행하면 세간의 번뇌에 물들지 않고 해탈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은 들은 태자는 그동안 억눌렸던 마음이 환해지며 자신도 도를 닦고 배우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궁으로 돌아갔다(득우사문).
궁으로 돌아온 얼마 뒤 태자비인 야수다라(耶輸陀羅)가 악몽을 꾸고 그 내용을 태자에게 말하자, 태자는 자신이 출가하려고 하니 그 징조라고 생각하고 태자비를 달래며 위로하였다(야수응몽).
그 후 태자는 부왕에게 말씀드리지 않고 출가하면 도리가 아니라 생각하고, 부왕에게 허락을 청하니 왕은 당연히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자 태자는 자신이 늙지 않고, 항상 젊고 씩씩하며, 병이 들지도 않고, 죽지 않아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출가하지 않겠다고 하니, 부왕은 그런 삶은 불가능하다며 태자가 성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힘센 장사들로 하여금 성 곳곳을 감시하고 지키게 했다(초계출가).
그러던 어느 날 밤 태자는 단정히 앉아 ‘내가 깨달음을 얻어 생사윤회에서 고뇌하는 중생들을 구제하여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겠다.’고 결심하고 마부에게 말을 준비하라고 했다. 태자가 말을 타자 대지가 진동하고 범천과 제석천, 사천왕이 나타나 호위를 하고, 사천왕은 성안 사람들이 깨지 않도록 말의 네 다리를 받들어 성을 넘어 예전 발가선인(발가선인)이 고행하던 숲에 이르러 내려앉았다(야반유성). 

(사진 2) 중국 윈강 석굴에 조각된 사천왕이 말 발굽을 받들고 성을 나서는 유성출가 장면
(사진 2) 중국 윈강 석굴에 조각된 사천왕이 말 발굽을 받들고 성을 나서는 유성출가 장면
(사진 3) 통도사 팔상도 중 유성출가상 (1)
(사진 3) 통도사 팔상도 중 유성출가상 (1)

이 싯다르타 태자의 가출을 영어로는 ‘위대한 출발(Great Departure)’이라고 한다. 그렇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가출이 아니라 중생을 구원하기 위한 위대한 가출, 출가였다. 중국 석굴에는 여러 곳에 이 장면을 조각하여 장엄하였다(사진 2). 우리나라 팔상도의 네 번째 장면도 바로 이 장면을 그린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사진 3)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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