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에세이 - 초겨울 목련 옆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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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에세이 - 초겨울 목련 옆에서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12.14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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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
유현

12월에 접어들면서 아란야 과원의 나무들도 겨울채비에 나섰다. 집 주변의 감나무, 목련, 은행나무, 단풍나무 모두 잎들을 떨어내고 있다. 북풍한설을 이겨내고 새 봄을 맞이하기 위한 지혜로운 몸짓이라 하겠다.
봄 햇살의 따사로움을 느끼면서 백목련이 꽃을 피운 게 엊그제 같은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발가벗은 채 서서 하늘을 향해 길게 팔을 내뻗고 있다. 
가을이 되면 나무와 잎은 ‘떨켜층’을 만들고 서로 이별을 준비한다. 그 자리가 덕지덕지 매달린 온갖 애착과 갈애를 끊어가는 수행승의 모습을 닮았다. 
11월 내내 조생 감귤 따기에 바빠서 남녘 뜰 안에 노란 수선화가 피어나고, 선홍색 동백이 화사하게 핀 모습을 살피지 못했다. 이제야 겨울 꽃들을 바라보다 그 옆 나목이 된 목련을 쳐다보았다.  
잎사귀 다 떨어뜨리고 앙상하게 드러난 조금은 삭막한 끝가지에 아린芽鱗이 싹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순간 내안에서 고동치는 생명의 에너지가 흐르는 느낌이 일어났다. 
찬바람 눈보라가 몰아쳐도 따뜻한 곳을 찾아 옮겨갈 수 없는 숙명을 안고서 꿋꿋하게 같은 자리를 지키며 겨울을 의연하게 견뎌내고 또 다시 겨울눈(冬芽)속에 봄을 키우고 있음이다.
마른 잎 다 떨어진 빈자리에 새 봄날을 그리워하는 목련의 마음은 ‘코로나19’의 병통을 심하게 앓고 있는 우리네 마음을 닮았다.
‘꽃이 져도 너를 잊은 적 없다’는 정호승의 시 구절처럼 콧물 감기증세가 있을 때면 지난봄에 내자가 정성스럽게 만든 목련꽃차를 마시면서 그대의 향과 덕을 기려 본다.  
자연의 순환법칙에 따라 나무들은 스스로 '떨켜층'을 만들지만, 우리 인간들은 수많은 생을 거듭하며 끝없이 짐을 지고 있음에도 그 짐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범부중생들은 늘 지고 다니는 이 짐의 실체가 무엇인지, 누가 이 짐을 지고 있는지, 이 짐을 가볍게 하거나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하는 것인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월동 준비를 마친 목련 옆에서 세존께서 강조하신 “상온(想蘊, 인식)은 고통이다.”라는 금언을 되새겨본다. 
우리는 지난 한해 코로나 역병과 관련하여 좋거나 나쁜 기억을 갖고 있지만 나쁜 기억이 훨씬 많았을 터.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쁜 기억 때문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마음 안에서 투쟁이 일어나기도 하고, 나쁜 짓을 저지른 상대방을 거듭 떠올리면서 비난을 퍼붓기도 한다.
내 자신이 이를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로 인해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인식이나 기억 작용에 간섭하지 않고 인식이 기억의 원인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다면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심리적 병통을 통찰하신 세존께서 과거의 기억을 되새기는 것은 바로 고통을 낳는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게 바로 짐이요, 고통’이라고. 지금 우리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속에 헤매고 있다. 더 나은 삶,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삶의 방식은 명상을 일상화하는 방향으로 개선하고, 단순하고 깨어있는 삶을 살아야 할 성싶다. 
씨앗이 되면 꽃 지던 일 생각하지 않듯이 아린의 지혜를 배워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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