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시 - 다시 한해를 보내며
상태바
송년시 - 다시 한해를 보내며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12.21 14: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처님, 올 해는 일찍 겨울이 왔습니다
저기 흰 삿갓 눌러쓴 한라영산은
이미 안거에 들고
팔만대장판 같은 깊은 숲 속
나무들은 동면의 뿌리를 내렸습니다
신축년 초월부터 소를 찾던 목동들은
이제 모두 하산하고
외양간을 고치고 있습니다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일주문 앞에 서서
저녁 햇살을 받으며
올라온 길을 되돌아 봅니다

날개 접은 처마 지붕 넘어
억새꽃 무성하게 흔들거리는 들판길
바람처럼 흘러가는 세월을 보며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부처님, 지난해는 너무 어렵고
힘든 날이 많았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이웃들과 친구들
낯선 모습으로 고개를 돌리며
합장하는 손안에
때 묻은 염주알 같은 인사말
 “조십합서”
마스크 입 속으로 전하는 
두렵고 불안한 목소리

삶이 반쪽이 되고
수없이 헤아리던 일상의 시간들이
저 퇴색한 낙엽처럼
발밑에 깔리고
우리들 서로 등 돌리며 살았습니다

부처님, 이제 돌아봅니다
무량한 자비심과 가피 안에서
그래도 무사히 견뎌온 지난날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합장하며
새날을 맞을 준비로 
여기 문 앞에 섰습니다

부처님, 부디 새해에도
가피를 내려 주십시오
가볍고 평안한 걸음으로
일주문을 들어서게 해주십시오
우리 함께하는 이웃들과
눈빛 인사로 마주치는 사람들
세상을 가는 모든 이들에게
부처님의 밝은 지혜를 입어
마음을 여는 새해가 되게 해주십시오

“옴 마니 반 메 훔

2021년 끝달에 <관음사> 일주문 앞에서

 

김용길 시인
김용길 시인

지은이 김용길 시인은 제주대학교 재학 때 「시문학」추천과 「문학춘추」 문학상 당선으로 등단, 제주불교신문 논설위원, 서귀포 불교 정토거사림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혜향》불교문학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으로 『빛과 바람의 올레』 등 여러 권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