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에 담긴 선취여행⑨ - 왕유에게 자연은 삶의 안식처이자 수행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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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에 담긴 선취여행⑨ - 왕유에게 자연은 삶의 안식처이자 수행공간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12.28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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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경립 - 시인, 수필가
곽경립 - 시인, 수필가

왕유王維(701-761)에게 자연은 선취禪趣를 일으키게 하는 대상으로, 번뇌를 씻어주고 근심을 해소하는 정신적 위안처였습니다. 이백처럼 낭만적이지도 못했고, 두보처럼 인간 사회의 모순을 아파하지도 못했던 왕유는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융화시켜 사물의 참 모습을 들여다봄으로써, 자기 응시를 통해 인간생활의 고뇌를 되돌아보게 되는(返照) 내적內的경험으로 승화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왕유에게 자연은 삶의 안식처이자,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는 맑고 고요한(淸靜閑逸) 선禪수행의 공간이었습니다. 왕유는 나이 30세에 아내를 잃게 됩니다. 아내의 죽음은 시인으로 하여금 사상적 변화를 가져오게 합니다. 삶에 대한 깊은 회의와 허무감, 인간존재에 대한 깊은 사고는 왕유의 초기 도가사상을 불가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로지 불도에 심취하여 세상의 인연을 멀리함으로써 마음의 번뇌가 없는 한가롭고 고요한(閑靜) 삶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이번에는 젊은 시절 지방 출장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잠시 들렸던 변각사辨覺寺의 풍경과 그 느낌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변각사에 올라                               

대숲 우거진 길 절 입구로 이어지더니 
연화봉에 문득 불사의 전당이 나타난다.  
창문으로 초나라 땅 훤히 바라보이고   
숲 너머로 구강이 굽이굽이 흘러간다.    
부드러운 풀밭에 가부좌 틀고 앉으니   
울창한 솔 사이로 들려오는 독경소리  
스님은 구름 밖 법계에 홀로 머물며   
세상일 바라보며 생멸의 번뇌를 잊는다.  

登辨覺寺 등변각사                        

竹徑連初地 죽경연초지
蓮峰出化城 연봉출화성
窗中三楚盡 창중삼초진
林上九江平 임상구강평
輭草承趺坐 연초승부좌
長松響梵聲 장송향범성
空居法雲外 공거법운외
觀世得無生 관세득무생

시인은 대나무 숲길을 따라 절을 향하여 걸어갑니다. 대나무 숲을 벗어나자 소나무 우거진 산등성이 사이로 그윽한 불사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잠시 산 아래를 바라보니 멀리 초나라 땅이 보이는 숲 너머로 강물이 머무는 듯 흘러갑니다. 그때 어디선가 독경소리가 들려옵니다. 스님이 생멸의 번뇌를 잊었다는 것은 현실생활의 헛된 욕심들을 버렸다는 뜻입니다. 인연에 의해 생겨나는 모든 것은 변화하며 흘러갈 뿐 영원하지 않습니다(諸法無我). 따라서 생기고 없어짐도 본래 없으니(諸行無常), 생로병사의 고뇌 역시 모두 참(實體)이 아닌데도 어리석은 자는 죽고 사는 일(生滅)에 매달립니다. 부처는 보이는 현상이 참이 아님을 깨닫고(無生), 헛된 망상에서 벗어나 열반涅槃에 이르라고 합니다. 열반의 진리는 생멸生滅이 본래 없으니 무생無生이라 합니다. 왕유는 그 무생의 이치를 깨달아 인간 근본의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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