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함께하는 ‘노자’ 산책 (4) - [도덕경]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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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함께하는 ‘노자’ 산책 (4) - [도덕경]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 글·고은진 철학박사
  • 승인 2022.01.0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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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上善若水(상선약수)는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는 의미로 無爲自然(무위자연)과 더불어 도덕경에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구절 중 하나일 것이다. 
善(선)은 흔히 ‘착할 선’으로 알고 있는데, 상선약수의 善(선)은 惡(악)의 반대의미가 아니다. 여기서 善(선)은 좋다는 의미이다. 상선약수를 풀어 말하면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은 덕성을 지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대부분 생명체는 물이 없이 삶을 지탱할 수 없다. 그래서 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져 왔다. 
서양철학에서 소크라테스 이전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은 우주 현상의 궁극적 근거이자 모든 현상이 그것 하나로 설명될 수 있는 실체인 아르케를 추구하였는데, 탈레스라는 철학자는 그것을 물이라고 규정하였다. 1993년 중국 호북성 곽점촌에서는 대량의 죽간본이 발견되었는데, 그곳에서는 가장 오래된 판본인 노자의 죽간본과 함께 맨 첫 머리 글자를 따라 太一生水(태일생수)라고 이름 붙인 새로운 자료가 출토되었다. 태일생수는 글자 그대로 가장 큰 하나가 물을 낳는다는 의미로, 물이 天地(천지), 神明(신명), 陰陽(음양)을 생하게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물은 항상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아래로 흐른다는 것은 자기를 항상 낮춘다는 겸양의 미덕에 비유될 수 있다. 물은 자신을 낮추기 때문에 사람이 가기 싫어하는 더러운 곳도, 남이 가지 않으려는 곳도 마다 않고 다 흘러 들어간다. 자신 앞에 있는 장애물 또한 맞서거나 사양하지 않고, 그저 휘감고 돌거나 비켜간다. 
이러한 물과 같은 마음은 성인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도를 체득한 성인은 물처럼 자신 앞에 있는 사물들을 장애물로 생각하거나 그것들과 갈등을 빚지 않는다. 그저 無善無惡(무선무악)의 상태로 휘돌아 비켜갈 뿐이다. 이러한 성인의 마음은 더러운 연못의 물에 거주하면서 거기에 흔들리거나 물들지 않고 피는 연꽃에 비유될 수 있다. 이러한 물의 마음이 拈花示衆(염화시중)의 미소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선불교의 3조 僧璨(승찬)스님은 信心銘(신심명)에서 ‘至道無難 唯嫌揀擇 但莫憎愛 洞然明白(지도무난 유혐간택 단막증애 통연명백)’이라 하셨다. 이처럼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고, 오직 가리고 선택함을 꺼릴 뿐이니 다만 미워하고 사람하지 않으면 확 트여 명백한 것처럼 분별을 놓고 선악을 초탈한 마음이 바로 물의 마음이며 도의 마음이며 성인의 마음인 것이다. 
그래서 물은 다투지 않는다. 물은 만물에게 생명의 원천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무한한 공덕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공덕을 과시하지 않는다. 자신을 과시하려는 일체의 마음이 없기 때문에 다툼이 없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 감싸 안으며 어떤 곳이든, 어느 그릇이건 담길 줄 안다. 이는 자기를 고집하지 않아야 가능한 경지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정된 자아관을 가지고 자신이 선택한 가치관과 신념에 골몰한다. 그러나 물은 모두 싫어하는 낮고도 더러운 곳을 향해 흐른다. 그리고 그 낮고 더러운 곳에 생명을 띄운다. 이러한 모습이 바로 도를 체득한 자의 모습이라 하겠다. 그래서 물과 같은 사람은 거의 도에 가깝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물은 뭇 생명을 살리고, 낮은 곳에 처하고, 남과 다투지 않는다. 남과 다투지 않기 때문에 허물이 없다. 그런 사람은 땅에 처하기를 잘하고, 마음은 깊은 연못 같고, 타인과는 어짊으로 사귀고, 믿음 있게 말하며, 정치 또한 잘 하며, 일도 잘하고, 때에 맞게 행동한다. 이러한 물의 태도야 말로 함이 없는 자연스러운 무위자연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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