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42)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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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42)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10)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1.1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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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을 구하다, 육년고행

각원사 대웅보전 동벽의 세 번째 칸에는 우리나라 팔상도 여덟 장면 중 사문유관상, 유성출가상, 설산수도상 세 상의 세부 장면들이 표현되었다. 지난 호에 그 중 사문유관에서 유성출가 장면까지 살펴보았고, 이번 호에서 볼 세 번째 칸에 그려진 나머지 장면은 한밤중에 사천왕의 도움을 받아 카필라 성을 나선 싯다르타 태자가 상투를 자르고(金刀落髮) 사냥꾼과 옷을 바꿔 입고 마부를 성으로 돌려보낸(車匿辭還, 車匿還宮) 후 선지식들을 만나고(詰問林仙, 調伏二仙), 태자를 궁으로 모셔오기 위해 신하들이 찾아가는 장면(勸請廻宮, 遠餉資糧)과 육년 동안 고행((六年苦行)을 하다 고행으로는 안 되겠다 생각하고는 목녀로부터 유미죽을 얻어먹고(牧女乳糜) 기운을 차린 뒤 니련선하에서 목욕을 하는 장면(禪河澡浴)까지 총 10장면이다. 

(사진 1) 금도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태자와 그것을 받는 제석천을 그린 금도낙발 장면
(사진 1) 금도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태자와 그것을 받는 제석천을 그린 금도낙발 장면

성을 나선 태자는 발가선인(跋伽仙人)이 고행하는 숲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단정하게 앉고는 수염과 머리카락을 없애지 않는다면 출가인의 법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가지고 온 금으로 된 칼로 머리카락을 자른다(금도낙발, 사진 1). 그러자 하늘에서 제석천왕이 내려와 천의자락으로 머리카락을 받아들었다. 사진에서 머리카락을 자르는 태자 앞에 무릎을 꿇은 이가 제석천왕이고, 위쪽에 있는 인물은 마부 차익(車匿), 말은 애마 칸타카(乾陟)이다. 이후 정거천인이 낡은 가사를 입은 사냥꾼으로 변해 나타나자 태자는 자신이 입은 화려한 옷과 바꾸자고 하고 옷을 바꿔 입는다. 그리고 몸에 걸었던 목걸이 등 장신구들을 떼어내어 마부 차익에게 주며 부왕과 아내 야수다라에게 드리며 자신이 정각을 이룬 후 만나게 될 거라고 말씀드리라고 말한다. 
 숲으로 들어간 싯다르타는 진흙과 가시밭에 눕거나 불과 물 옆에 누워서 수행하는 선인들과 만난다. 그들과 토론을 하다 날이 저물자 그곳에서 하룻밤을 잔다. 다음날 그들에게서 더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해 떠나려고 하자 한 선인이 북쪽에 아라라(阿羅羅)와 가란(迦蘭) 선인에게 가보길 권한다. 
한편 정반왕은 태자의 스승과 대신들을 파견하여 태자가 궁으로 돌아오도록 설득하라고 명한다. 발가선인의 숲에 이르러 태자가 얼마 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아라라 선인이 있는 곳으로 싯다르타의 뒤를 쫓아간다. 그곳에서 싯다르타를 만나 정반왕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으며, 궁에서도 도를 닦을 수 있으니 궁으로 돌아가자고 간청한다. 싯다르타는 자신도 부왕의 사랑을 잘 알지만 생로병사의 고통을 끊어 없애기 위해 출가한 것이며 도를 완성하지 않으며 결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태자의 스승은 태자의 결심을 돌이킬 수 없음을 알고 같이 왔던 교진여(憍陳如) 등 다섯 사람을 남겨 태자를 모시게 하고 슬피 울면서 궁으로 돌아간다. 

(사진 2) 그려진 송광사 설산수도상, 설산을 상징하기 위해 오른쪽 상단에는 눈 덮인 산을 묘사하였다.
(사진 2) 그려진 송광사 설산수도상, 설산을 상징하기 위해 오른쪽 상단에는 눈 덮인 산을 묘사하였다.

설산에서 수도하는 내용을 그린 송광사 팔상도 중 다섯 번째 장면인 〈설산수도상〉(1725년, 사진 2)에는 ‘금도낙발’에서 회궁을 청하는 ‘권청회궁’까지의 장면과 나중에 하루에 삼씨 한 톨과 보리 한 톨만 먹으며 고행하는 상황을 궁에 전하자 궁에서 수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수레에 실어 보내는 ‘원향자량(遠餉資糧)’ 장면을 하단부에 표현하였다. 화면이 제한되다보니 소수의 사람으로 각 장면을 묘사하고 오른쪽 하단에 산과 구름에 가린 깃발과 일산 등을 묘사해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대신한다. 
싯다르타가 아라라선인을 만나 문답하는 장면에 대해 『과거현재인과경』에서는 이렇게 전한다.
“생사윤회의 근본을 어떻게 끊을 수 있습니까?”라고 태자가 묻자 아라라선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계율을 지키고 인욕과 선정을 닦고 익히면 ’각(覺)‘과 ’관(觀)‘이 있는 초선(初禪)의 경지에 이르고, 그 각관을 제거하여 선정에 들면 기쁜 마음이 생기는 이선(二禪)의 경지에, 그 기쁜 마음마저 버리고 정념(正念)을 얻으면 삼선(三禪)의 경지, 이후 괴로워하거나 즐거워하는 마음이 제거되고 청정한 염을 얻으면 사선(四禪)의 경지에 들며 무상천에 태어나는 과보를 얻게 됩니다.”   
이에 태자가 다시 물었다. 
“생각도 생각 아님도 없는 곳(非想非非想處)에는 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만약 내가 없다고 말한다면 ‘비상, 비비상’이라 말해서는 안 되며, 또 내가 있다고 말하면 이때의 아(我)는 앎이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아’에 앎이 없다면 초목이나 다름이 없고, 앎이 있다고 하면 인연에 매달리는 것이 됩니다. 인연에 얽매이는 게 되면 거기에는 집착하는 것도 있게 되는 까닭에 해탈이 아닙니다. 진정한 해탈은 아와 아상(我想)을 제거해서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싯다르타는 더 뛰어난 법을 구하기 위해 아라라 선인과 헤어지고 가란선인에게로 갔고, 거기서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후 싯다르타는 6년 안에 꾸준히 고행하여 깨달음을 얻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이때의 모습을 『불설보요경』에서는 이렇게 표현하였다.             

(사진 3) 한적한 숲 속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6년 동안 고행하는 육년고행 장면
(사진 3) 한적한 숲 속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6년 동안 고행하는 육년고행 장면

‘보살이 하루에 삼씨 한 톨과 보리 한 톨만 먹으며 6년 동안을 가부하고 앉았으매 위의와 예절에 어긋남이 없었다(사진 3). 머리 위를 덮거나 가리지 않았고, 비와 바람도 피하지 아니하며, 머리에 먼지 끼는 근심도 막지 아니하고, 일어나서 걸어 다니거나 대소변도 보지 않을 뿐더러 침도 뱉지 아니하였다. 또한 몸을 굽히고 펴거나 고개를 숙이고 쳐들지도 아니하고, 옆으로 기대지도, 몸을 눕히지도 아니하였다. 큰비가 내리고 번개와 우레며 벼락이 쳐도 네 계절을 조용히 앉아 있었으며, 여러 가지의 어려운 일을 맞닥뜨려도 손을 들어서 막는 일도 없었다. 마을의 남녀노소들이 마소와 양을 치느라고 땔나무를 메고 풀을 지고는 옆을 지나가면서 먼지를 내어도 상관하지 아니하고, 간혹 사람들이 그가 하는 일을 괴이하게 여기고 풀과 나무로 귀와 코를 찔러도 아파하거나 가려워하지 않았고 그 자리를 떠나지도 않았다.’        

(사진 4) 제석천이 분소의를 빨 수 있는 네모난 돌을 안치하고, 못에 있던 생명들이 목욕한 물을 마시고 하늘 위로 올라가는 선화조욕
(사진 4) 제석천이 분소의를 빨 수 있는 네모난 돌을 안치하고, 못에 있던 생명들이 목욕한 물을 마시고 하늘 위로 올라가는 선화조욕

6년 고행을 하며 피골이 상접한 자신의 모습을 본 싯다르타는 그렇게 여윈 몸으로 깨달음을 얻으면 여러 수행자들이 스스로 굶는 것이 열반에 이르는 길이라고 생각할 것이므로 이렇게 깨달음을 얻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목녀가 보시한 유미죽을 먹고 기력을 충족시킨다. 그러고는 낡고 해진 옷 대신 분소의를 구해 못으로 가서 세탁을 하고 목욕을 하였다. 목욕을 마치니 천신들이 그 물을 취하여 천궁으로 돌아갔으며, 못 안에 있던 생명들은 그 물을 마시고 하늘에서 태어날 수 있게 되었다(사진 4). 『방광대장엄경』에서는 이에 대해 물  속의 생명들을 제도하여 해탈시키기 위해 목욕을 시현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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