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빠사나 길라잡이 (25) -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出入息念] Ⅳ
상태바
위빠사나 길라잡이 (25) -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出入息念] Ⅳ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1.18 23: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현
유현

호흡법이 순풍에 돛을 단 듯 순조롭게 명상의 바다를 여행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마치 빛과 그림자가 함께 하듯, 지금까지의 삶의 과정에서 축적된 조건 지어진 개개인의 성향은 그것이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다양한 형태로 솟아나 깨달음으로 향하는 노력들을 방해합니다. 
종종 좌선하기 위해 앉자마자 꾸벅꾸벅 졸거나 피곤한 몸 상태로 인해 정신이 아주 혼미할 수도 있습니다. 초심 수행자들의 대다수가 겪는 졸음이나 혼침昏沈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세존께서는「졸고 있음 경」 (A7:58)에서 이렇게 설하셨습니다. 
세존께서 천안으로 마하목갈라나(목련) 존자가 마가다의 깔라왈라뭇따 마을에서 졸면서 앉아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세존께서 신통력으로 존자 앞에 나타나서 존자에게 졸음이 오면 두 귓불을 잡아당기고 손으로 사지를 문지르거나, 그래도 졸리면 자리에서 일어나 물로 눈을 씻고는 사방을 둘러보고, 별자리와 별들을 쳐다보거나, 광명상光明想을 마음에 잡도리하여 마음을 밝게 만들거나 경행을 하도록 권고하였습니다.
첫 번째 두 개조(①∼②)에서 들숨과 날숨의 장단을 ‘꿰뚫어 안다.’는 의미는 마음챙김(sati)과 지혜(ňāna)로 들숨과 날숨의 몸을 내관한다는 뜻입니다.
첫 번째 ③단계에서 ‘온 몸(kãya)’은 호흡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호흡이 육체의 조건이란 점에서 호흡의 덩어리도 하나의 몸 덩어리로 보는 것입니다. 
다만 더욱 섬세하게 내관하기 위해서 호흡의 몸과 육체의 몸으로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호흡관법[아나빠나사띠]를 수행하는 자는 호흡이 거칠어지면 육체가 호전성을 띠고, 반면에 호흡이 섬세해지면 몸이 편안해지는 사실을 실제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첫 번째 ③단계에서 ‘온 몸(호흡)을 경험하기’는 연기적 관점에서 호흡과 육체의 관계 외에 들숨날숨의 처음과 중간과 마지막을 알아차리면서 몸 전체를 내관하라는 뜻입니다. 
초심자가 호흡의 처음(코끝), 중간(심장), 마지막(배꼽)을 쫓아갈 때 그의 마음은 산만해지고 동요되므로 마음이 결코 안팎으로 움직이지 않아야 하고, 오로지 들숨날숨이 닿는 코끝에만 마음을 두면서 내관해야 합니다. 
여기서 ‘공부 짓는다.’라는 말은 수행자가 계戒·정定·혜慧 삼학三學을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실제로 수행자는 호흡에 집중할 때 자신이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 자제력을 갖고 있는지 숙고하여 자제력을 행사할 때 계율을 위반할 수 없게 되므로 계학을 닦는 것이 됩니다. 
이에 더하여 수행자의 사띠(sati)가 호흡에 고정될 때 완전한 집중[삼매]을 성취하게 되고, 또한 수행자가 사띠(sati)의 네 가지 대상들에 대하여 개별적 특징과 일반적 특성(존재의 삼법인)을 내관할 때 그는 지혜 또는 통찰지를 가지게 되므로 혜학을 수행하는 학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첫 번째 ④단계에서 ‘몸의 작용[身行]’이란 들숨날숨을 뜻합니다. 비록 이것은 마음에서 생긴 것이지만 그것의 존재가 몸에 묶여있고, 즉 심장 토대에서 생기기 때문에 몸의 작용이라 부릅니다. 또한 여기서 ‘편안히 하면서’라는 뜻은 거친 숨의 작용을 편안하게 하면서, 멈추면서, 가라앉히면서 들이쉬고 내쉬라는 뜻입니다.
수행자가 아나빠나사띠를 실행하지 못했을 때는 그의 몸과 마음은 불안하고 거칠지만 그의 몸과 마음이 파악될 때 이것들은 고요해지고 가라앉습니다. 몸과 마음이 가라앉을 때 들숨날숨도 미세해지고, 나아가 “들숨날숨이 있는지, 없는지”를 조사해봐야 할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수행자가 들숨과 날숨을 아직 내관하지 못했을 때에는 ‘나는 몸의 거친 현상(들숨·날숨)이 점점 고요해지고 있다’라고 알아차리는데 아무런 관심, 반응, 주의력, 반조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단 들숨과 날숨에 관심을 갖게 되면 관심, 반응, 주의력, 반조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내관할 때에 몸의 현상(들숨·날숨)은 내관찰하지 못했을 때에 비해 미세해진다는 뜻입니다.  
명상주제[호흡]을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하면 할수록 그에 비례하여 들숨날숨은 더 미세하고 더 고요해집니다. 
여기에 이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수행해야 합니다. <첫째> 관심의 단계로 ‘나는 호흡을 고요히 하겠다.’라는 생각으로 호흡에 최초로 주의를 기울이고, 호흡을 알아차리고 호흡으로 마음을 돌립니다. <둘째> 반응의 단계로 ‘나는 호흡을 고요히 하겠다.’라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마음을 호흡에 유지시킵니다. <셋째> 열의의 단계로 문자적으로는 ‘호흡을 고요히 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넷째> 반조의 단계로 ‘나는 호흡을 고요히 하겠다.’라는 생각으로 호흡을 반조하고 마음에 분명하게 합니다.
호흡법을 실행하는 수행자의 들숨과 날숨은 처음에는 거칠다가 점점 미세해지고 마지막에서 숨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럴 때 내 명상주제가 사라져버렸다라고 생각하면서 명상을 끝내서는 아니 됩니다. 청정도론에서는 그 해법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수행자는 앉아있는 그 상태에서 평소에 숨이 닿는 곳, 즉 코끝의 장소로 마음을 가져가라고 가르칩니다. <둘째> ‘이 들숨날숨은 어디에는 있고, 어디에는 없는가? 누구에게는 있고 누구에게는 없는가?’라고 숙고하라고 가르칩니다. <셋째> ‘이들은 모태 안에 있는 자에게 없고, 물에 빠진 자들에게도 없다. 마찬가지도 인식이 없는 중생들과 죽은 자들과 제4선에 든 자들과 색계 및 무색계의 존재에 태어난 자들과 멸진정에 든 자들에게도 없다.’고 알아차려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