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44)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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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44)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11)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1.25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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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나무 아래에 앉아 마군을 물리치다

각원사 대웅보전 벽화의 네 번째 칸은 동쪽 벽의 세 번째 칸으로 동벽 두 번째 칸과 같은 크기와 방식으로 벽화가 그려졌다. 즉 세로로 네 줄, 각 줄에 다섯 장면씩 총 20장면의 이야기가 표현되었다. 이야기는 맨 아래 단 오른쪽에서 시작하여 왼쪽으로 네 장면이 채워지면 윗단으로 올라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사진 1). 벽화 내용은 대흥륭사본 『석씨원류』에 게재된 순서로 보면 40번째 장면인 태자가 6년 고행을 마치고 목욕을 하자 제석천이 새 옷을 바친다는  〈제석헌의〉부터 59번째 장면,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자 사천왕이 발우를 공양하는   〈사왕헌발〉까지이다. 그 세부 장면은 다음과 같다.

(사진 1) 동벽 세 번째 칸 벽화 장면 배열 순서
(사진 1) 동벽 세 번째 칸 벽화 장면 배열 순서

1단: 40 제석헌의(帝釋獻衣)    41 예보리장(詣菩提場) 
      42 천인헌초(天人獻草)    43 용왕찬탄(龍王讚歎)

2단: 44 좌보리좌(坐菩提座)    45 마왕득몽(魔王得夢)
      46 마자간부(魔子諫父)    47 마녀현미(魔女妶媚)

3단: 48 마군거전(魔軍拒戰)    49 마중예병(魔衆拽甁)
      50 지신작증(地神作證)    51 마자참회(魔子懺悔) 

4단: 52 보살항마(菩薩降魔)    53 성등정각(成等正覺)
      54 제천찬하(諸天讚賀)    55 화엄대법(華嚴大法)

5단: 56 관보리수(觀菩提樹)    57 용궁입정(龍宮入定)
      58 임간연좌(林間宴坐)    59 사왕헌발(四王獻鉢)

이 20장면은 팔상도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팔상도의 다섯 번째 장면인  〈설산수도상〉의 마지막 부분, 여섯 번째  〈수하항마상〉 전체와  〈녹원전법상〉의 일부 장면에 해당한다. 
먼저  〈설산수도상〉에 해당하는 부분은 맨 아랫단에 그려진  〈제석헌의〉,   〈예보리장〉,  〈천인헌초〉,  〈용왕찬탄〉과 아래로 두 번째 줄의 처음 장면인  〈좌보리좌〉이다. 『대장엄경』에 따르면, 〈제석헌의〉는 태자가 목욕한 후 손수 세탁한 낡은 옷을 입자 무구광(無垢光)이라는 정거천의 천자가 사문이 입기에 마땅한 가사를 공양했다는 내용이다. 제석천왕이 옷을 바쳤다고 하지 않았지만, 목욕할 때 제석천왕이 옷을 세탁하겠다고 청했으나 훗날 비구들이 다른 사람을 시켜 옷을 세탁하지 못하게 하려고 청을 물리치고 직접 세탁한 일과 제석천왕이 태자가 유미죽을 먹은 후 강물에 던진 금 발우를 용왕에게서 빼앗아 자신의 궁으로 가져가 탑을 세워 공양한 내용과 겹치면서 제석천왕이 옷을 바친 것으로 제목을 만든 것 같다.

(사진 2) 석씨원류 판화 〈천인헌초〉
(사진 2) 석씨원류 판화 〈천인헌초〉

〈예보리장〉은 가사를 입고 유미죽으로 기운을 차린 후 청정한 곳에서 깨달음을 얻겠다는 서원을 하고 보리도량으로 나가는 장면이다. 보리도량으로 가는 보살 앞에 천신들이 나타나 음악을 연주하고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린다. 〈천인헌초〉(사진 2)는 보리도량에 이른 보살이 어떤 자리를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자 정거천신이 과거의 모든 부처님은 풀 자리에 앉아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하고, 제석천왕은 보살과 멀지 않은 곳에 길상이라는 이름의 풀 베는 사람으로 변하여 나타나 보살에게 풀을 보시하는 장면이다. 길상초를 든 보살은 천천히 보리수나무로 걸어가 나무 아래에 풀 자리를 만들었다. 다음의  〈용왕찬탄〉은 보살이 풀을 들고 보리수나무로 걸어갈 때 파랑새, 가릉빈가, 공작, 구시라조 등 수많은 새가 보살 주위를 맴돌고, 천녀들이 향과 꽃을 뿌리며 보살 주위를 에워싸서 걸어가는 장면이다. 이때 땅이 흔들리자 놀란 용왕이 궁전에서 나와 이 광경을 보고 저 보살이 곧 깨달음을 얻으리라는 것을 알고 무릎을 꿇고 얼굴이 땅에 닿게 예를 올렸다.

〈좌보리좌〉는 보리수나무에 이른 보살이 풀 자리 위에 가부좌를 맺고 ‘내가 만약 무상보리를 얻지 못하다면, 이 몸이 부서지더라도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장면이다. 숲 안의 나무들 아래에는 보배로 장식된 대좌들이 있었는데 천인들이 거기에 앉아서 정각을 이루길 원하여 만든 것이다. 하지만 보살은 자신이 택한 자리에 길상이 보시한 풀을 깔고 앉았다(사진 3). 이 〈좌보리좌〉 장면은 팔상도의  〈설산수도상〉에 그려지지만 〈수하항마상〉(사진 4)의 시작 장면이기도 하다. 

(사진 3) 보배로운 대좌가 아닌 길상이 보시한 풀을 깐 자리에 앉은〈좌보리좌〉벽화
(사진 3) 보배로운 대좌가 아닌 길상이 보시한 풀을 깐 자리에 앉은〈좌보리좌〉벽화
(사진 4) 통도사〈설산수도상〉1775년 오른쪽 하단에〈마녀현미〉 , 중앙에는〈마군거전〉  과〈마중예병〉 이 그려졌다
(사진 4) 통도사〈설산수도상〉1775년 오른쪽 하단에〈마녀현미〉 , 중앙에는〈마군거전〉 과〈마중예병〉 이 그려졌다

『불본행집경』에 따르면, 보살이 보리좌에 앉고 선정에 들자 보살의 눈썹 사이에서 백호광명이 뻗어 나와 마왕이 있는 궁전을 두루 비췄다고 한다. 이때 잠을 자던 마왕 파순은 꿈속에서 궁전이 진동하고 곳곳에 불이 나고, 담장과 벽이 허물어지고, 샘물이 마르고, 마군과 백성은 근심에 싸이고, 신하들은 도망쳐 흩어지고, 친한 친구가 원수로 변하는 등 여러 가지 무서운 꿈을 꾼다. 꿈에서 깬 후 자신의 권속을 불러 꿈에서 본 일을 말하며 이는 큰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나타날 징조이니 그가 깨달음을 얻지 못하도록 해야겠다고 말한다〈마왕득몽〉. 그때 마왕의 아들이 깨달음을 얻을 보살과 원수가 되는 것은 훗날 후회하는 일이 될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고 간언한다〈마자간부〉. 하지만 마왕은 아들의 간언을 무시하고 코끼리, 말, 전차를 모는 병사와 보병 네 종류의 마군을 소집하고 보살이 있는 보리수 아래로 진군한다. 마왕의 군대가 보리수나무 근처에 도착해 멀리서 보살을 살펴보니 보살의 몸에서 눈부신 광명이 발산되는 것을 보고 모두 공포심에 싸여 도망쳐버린다. 그러자 마왕은 그를 달래 보겠다고 말하고는 딸들에게 보살에게 가서 유혹하라고 명한다. 이에 마왕의 딸들이 가까이 가서 보살을 보니 깊은 선정에 든 모습에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부왕의 명을 상기해 보살에게 온갖 교태를 부리며 유혹하다. 그러자 보살은 그녀들이 전생에 지어놓은 복이 있어서 천신의 몸을 받아 태어났지만, 무상한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요염하고 음탕한 행동으로 다른 사람의 착한 생각을 어지럽히니 그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고 더럽다고 질책하며 헛되이 말을 걸지 말고 당장 물러가라고 했다. 그러자 젋고 아름다웠던 마왕의 딸들은 갑자기 머리가 세고 주름투성이의 노파로 변하여 황급히 보살에게서 도망친다〈마녀현미〉.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 젊음, 즐거움도 무상한 것이며 애욕을 버리고 참된 도를 추구하라고 전한 것이다. 이에 마왕은 말로는 마음을 바꿀 수 없음을 알고 마군에게 공격을 명한다. 수많은 마군이 보살을 에워싸고 공격했지만 보살의 털끝 하나 움직이지 못했고, 보살은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마군거전〉. 마왕은 자신의 군대가 공격해도 소용이 없음을 알고 직접 보살 앞에 나서서 그곳에서 일어나 떠나지 않으면 다리를 잡아 세상 밖으로 던지겠다고 위협했다. 이에 보살은 자신 옆에 놓인 작은 정병을 가리키며 그 정병을 움직일 수 있다면 나를 세상 밖으로 던질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자 마왕은 병사들에게 보살의 정병을 끈으로 묶어 힘껏 당기라고 명한다. 수많은 병사와 코끼리가 작은 정병을 움직이려고 끌어당겼지만 정병은 꼼짝달싹 않는다〈마중예병〉.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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