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불 - 오어지를 가슴에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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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불 - 오어지를 가슴에 담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1.25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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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선 - 우도 남훈문학관 관장
고미선 - 우도 남훈문학관 관장

천년고찰을 찾아다녔다. 깊은 병을 앓으면서 도력이 깃든 절이라면 더 의지하고 싶었다. 일반인이 왕래가 뜸한 곳에서 나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 가득하였다. 
아들한테 오어사에 가자고 부탁하였다. 아들은 인터넷 검색하며 무작정 출발하였다. 따라나선 유치원생 손자와 함께해서 좋았다. 부산으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들은 암 수술 회복단계의 나를 격려하며 무조건적 사랑으로 응해 주었다. 
도로가 평탄치 못하다. 안내길 따라 올라가는데 버스가 올라가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 찾아가는 사찰은 애끓는 내 마음을 알아주고 있나 보다. 꾸불꾸불 도로에 폭조차 좁으니 차량 두 대의 교차는 힘들어 보인다. 주말에는 출입을 제한한다. 그런 도로에 들어서자 손자는 얼굴이 파래지더니 순식간에 자동차 안을 뒤범벅하고 말았다. 오어사 입구에 도착하자 아들과 손자는 뒷정리하며 앉았다. 
맞은편 돌계단 위로 보이는 오어사 편액이 특이하다. 나의 착각은 다섯 마리 물고기 사연이 깃든 줄 알았다. ‘나 오(吾)’자와 ‘물고기 어(魚)’자를 쓰고 있다. 편액 아래로 대웅전 문이 열려 삼존불이 내려다본다. 마당에 내린 햇살이 반사하여 이상세계인 듯하다. 
 이 사찰은 삼국유사에 일연스님이 신라 진평왕 때 ‘항사사’로 기록되었다 한다. 갠지스 강가의 자잘한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이 출세할 것이라 하였다. 오어사는 신라 고찰로 원효, 자장, 혜공, 의상 등 당대의 고승들이 수도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삼배를 마치고 나왔다. 대웅전의 꽃 창살문에 국화와 모란꽃이 그윽하다. 모란을 바라보니 마음이 평안해진다. 경전을 읽으며 기도하고 싶은 마음 가득했는데 손자 생각으로 일어섰다. 경내를 나서자 마음속의 짐을 조금씩 내려놓아서 가벼워졌다. 
손자는 오어지의 수변이 상쾌해서 정신이 드나 보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달려와 손을 잡으며 이끈다. 오어지의 기(氣)라도 받고 내려가야 둘이 건강할 것 같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 원효교를 손잡고 건넜다. 원효대사는 구름다리 놓아 건넜다는 도력(道力) 때문이었는지 출렁다리가 생겼다. 흔들흔들 출렁거리는 다리를 건너면 오어사 둘레길이다. 
출렁다리를 지나자 나무와 비스듬한 흙길에 산책길이 이어졌다. 수묵화처럼 보이는 오어사 주변은 새로운 관광 명물로 떠오르고 있다. 둘레길에는 오어사의 지형적 특성이 살려 지친 심신을 달랠 수 있게 간이의자까지 놓여 있다. 앙상한 나무뿌리도 물가에 발을 뻗어 영원한 생명력으로 이어가고 있다. 나무뿌리가 드러나자 신라 시대 사람을 만난 듯이 저잣거리에 나선 것 같다. 운제산의 숲으로 둘러싸인 자연환경은 사계절이 변화무쌍하겠다. 낙엽이 깔리고 구부러진 보행로에 왁자지껄한 옛날 소리가 들린다. 특이한 어울림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손자는 내 손을 꼭 잡고 나무 등걸 계단을 내려서며 조심하라고 일러 준다. 손자는 생태 유치원에서 나무숲을 많이 걸었다고 자랑한다. 숲이 인간에게 주는 이익을 줄줄이 늘어놓는다. 
연못은 수묵화 병풍 속의 내가 되었다. 연못이 호수 같고 사찰을 감아 돌게 산으로 에워싸여 물 끝이 보이지 않는다. 굴곡진 산세는 가을 단풍이 들면 탄성을 지를 태세다. 연둣빛에서 청록 잎사귀가 붉은빛을 발하면 극락이 따로 없겠다. 이곳은 사시사철 물이 풍부한 오어지인가 보다. 비가 오면 산에서 내려온 빗물은 모아 흐르다 산세의 아랫부분을 만나면 소리 없이 꺾이고 꺾였다. 물빛 따라 흐르는 곡선이 아름답다. 신선은 이곳에 거주하고 구름을 타고 이산 저산 다닐 것만 같다. 

오어사(사진 : 한국학중앙연구원 발췌)
오어사(사진 : 한국학중앙연구원 발췌)

오어지를 가슴에 담고 싶다. 잔잔한 연못은 산 그림자가 물 위에 그림자를 드러냈다. 반영사진은 화가의 작품이다. 물비늘조차 숨을 죽이고 있어서 물속에 큰 나무가 어린 듯하다. 
물가로 내려갔다. 손자와 나는 손이라도 씻으며 감촉을 느끼고 싶었다. 예상외로 물이 깨끗하고 시원하다. 돌멩이 하나까지 드러나며 이끼조차 없어 보인다. 손자가 물고기 한 마리를 발견하였다. 그러고 보니 투명한 물고기가 떼 지어 다닌다. 손가락 크기였지만 생명의 신비에 뚫어지게 쳐다보니“할머니, 물고기 잡지 마셔요.” 일러준다. 스님과 일화가 깃든 물고기가 생각났다.
오어사 유래는 원효암에 계셨던 원효와 항사사에 만년(晩年) 계셨던 혜공스님이 물고기를 살리는 법력을 겨루었다. 혜공스님은 소싯적부터 신령스러운 현상을 자주 나타내자 출가했다. 원효대사는 많은 불경을 저술하며 자주 혜공스님에게 묻고 농담을 나누었다. 뱃속에 들어갔던 물고기를 살려내는 스님의 도력이 핵심이다. 노스님의 장난이란 서로의 도력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가끔 선문답을 통해 세상의 이치와 불교의 진리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혜공스님의 도력은 절의 우물에 들어갔다가 나와도 옷이 젖지 않았다는 전설도 있다. 오어지에서 발견된 동종이 연못 준설 하다 발견된 사실은 혜공스님의 화신(化身)으로 여겨진다. 오어지에 묻힌 동종은 오랜 세월 수중(水中)에 있어도 학술적, 문화적 가치가 뛰어나다 하였다.
스님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삶과 애환을 함께하며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애썼을 것이다. 불살생이나 자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어설프게 꾸며진 이야기 속에 도력을 부각한다. 신령스러운 속설을 많이 남긴 혜공스님은 공중에 떠서 열반했다 한다. 사리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출현했다는 일은 관음경 하나로 삼십 년을 공부한 법력으로 나타났다.
노부부가 오어지 둘레 간이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뒷모습이 정겹게 보인다. 축 늘어진 어깨에서 삶의 애환을 느낀다. 물가에 옹이 진 나무를 바라보며 나무의 비바람에 힘들었던 일생도 생각해본다. 인생길에서 병고는 누구나 겪고 나서 눈을 감는 것이라고 일러주고 있다. 황혼이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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