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45)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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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45)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13)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3.1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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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천이 설법을 청하고 녹야원에서 첫 설법을 하다

각원사 대웅보전 동쪽 벽의 마지막 칸에 그려진 벽화는 총 15장면이다. 모서리 벽의 기둥 사이 간격이 중앙의 두 벽에 비해 좁아 한 단에 세 장면씩 배치하였다. 장면 앞에 표시된 번호는 『석씨원류』의 실린 판화 순서이다.

5단    74청불환국(請佛還國) 
         73가잉방불(假孕謗佛)
         72가섭구도(迦葉求度) 

4단    71영도투불(領徒投佛) 
        70죽원정사(竹園精舍)
        69기제제기(棄除祭器) 

3단   68급류분단(急流分斷) 
       67항복화룡(降伏火龍)
       66야사득도(耶舍得度) 

2단   65선사회책(船師悔責) 
       64선인구도(仙人求度)
       63도부루나(度富樓那) 

1단   62전묘법륜(轉妙法輪) 
       61범천권청(梵天勸請)
       60이상봉식(二商奉食)    

북천축국에 사는 두 명의 상인이 마침 보리수 숲 근처를 지나다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룬 사실을 알고 부처님께 음식을 공양하고 부처님으로부터 오계를 받아서 득도하였다. 두 상인이 부처님께 징표를 주시면 탑을 세워 공양하겠다고 하니 머리카락과 손톱을 내려주었다(이상봉식). 
한편 대범천이 여러 권속들과 함께 부처님이 계신 곳에 찾아와 성불하셨으니 중생들을 위해 설법해주시길 청했다. 부처님께서는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고 조용히 세간을 관찰하시더니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깨달은 것은 적정한 열반의 법이다. 그것은 매우 깊고 미묘한 경지여서 보기도 깨닫기도 어렵다. 그런데 탐착에 물든 이들이 어떻게 이 법을 보겠는가? 내 중생들을 위해 설법한다고 해도 그들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대범천은 부처님께서 중생들을 위해 설법하지 않으면 세상이 소멸하고 말 것이라고 생각해 다시 부처님께 간청한다. “부처님이시여! 중생들을 위해 법을 설해주소서. 중생들이 비록 탐착하고 사도에 빠졌어도 아직 제도할 사람도 있으니, 그런 사람은 마땅히 청정한 부처님의 진리로 제도해야 합니다. 오직 부처님만이 그들을 제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세 번의 간청을 들은 부처님은 다시 중생들의 근기를 비추어 보고, 큰 자비심을 일으켜 중생들에게 설법하기로 결정하셨다(범천권청). 
이 상황에 대해 팔리어 율장의  『대품(마하박가)』에서는 물속에 잠긴 연꽃으로 비유하였다. 연못 속에는 청련, 홍련, 백련 등이 모두 물속에서 자랐지만 어떤 것은 물속에 잠겨 있고, 어떤 것은 수면에 떠있거나 물 위로 솟아나 물에 젖지 않은 채 꽃을 피운 것처럼 이 세상에는 어리석은 사람, 선한 사람도 있고, 가르치기 어려운 사람이 있는 반면에 가르치기 쉬운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설법을 들으면 깨달을 수 있는 있는데, 듣지 못해 깨달을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진리를 설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대범천의 간청으로 부처님께서 중생들에게 설법하기로 결심한 것은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당신이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되었지만 그 깨달음을 우리에게 가르치지 않았다면 불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 1) 석씨원류 판화 범천권청
(사진 1) 석씨원류 판화 범천권청
(사진 2) 통도사 영산전 북벽 포벽화 범천권청
(사진 2) 통도사 영산전 북벽 포벽화 범천권청
(사진 3) 각원사 범천권청 벽화
(사진 3) 각원사 범천권청 벽화

 『석씨원류』에 실린 판화 ‘범천권청(사진 1)’과 통도사 영산전 내부에 그려진 벽화(사진 2)와 큰 차이가 없다. 각원사 벽화(사진 3)는 색채가 많이 박락되어 희미하지만 그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시간을 달리하여 그려진 세 장면을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설법하기로 결심한 부처님에게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바로 맨 처음 누구에게 가르침을 펼쳐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설산에서 육 년 고행을 할 때 같이 수행하던 다섯 비구에게 가르침을 전하기로 결심하고, 보드가야에서 2백 킬로나 떨어진 갠지즈강 기슭에 있는 바라나시로 간다. 그곳에 있는 사슴동산인 녹야원에는 자신이 고행을 풀고 유미죽을 먹는 것을 보고 타락했다고 비난하며 떠난 교진여 등 다섯 비구가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녹야원에서 수행하던 다섯 비구는 먼 곳에서 부처님이 오는 것을 보고, 싯다르타는 수행을 그만둔 타락한 사람이니까 경의를 표하지 말고 발 씻을 물과 음식만 내주자고 말을 맞춘다. 그런데 부처님이 가까이 오자 자신들도 모르게 일어서서 예배하고, 싯다르타의 가사를 받아 들고 발을 씻어 주고 가장 윗자리에 모신다. 싯다르타의 얼굴빛이 이전과 달리 아주 맑고 몸에서 광채가 나는 것을 보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자신도 모르게 부처님께 예배하게 된 것은 깨달은 사람은 말을 하지 않더라도 아우라가 밖으로 들어나 상대가 그 위대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사진 4) 녹야원에서 첫 설법 장면을 표현한 석씨원류 판화 전묘법륜
(사진 4) 녹야원에서 첫 설법 장면을 표현한 석씨원류 판화 전묘법륜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에게 양 극단을 버린 중도와 그것을 실천하는 여덟 가지 바른 길과 네 개의 성스러운 진리인 사제팔정도를 설법하는 장면인 ‘전묘법륜(사진 4)’은 우리나라 팔상도의 일곱 번째 상인 녹원전법상의 주제이다. 그런데 실제로 녹원전법상의 구성을 보면 ‘전묘법륜’ 장면보다 노사나불로 나투어 화엄경을 설법하는 장면인 ‘화엄대법’이 더 강조되어 표현된다. 화엄경이 대표적인 대승 경전이라는 점과 ‘화엄대법’이 불보살과 여러 권속들을 장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장면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사진 5) 쌍계사 녹원전법상 중 녹야원 인연담인 선록왕 이야기
(사진 5) 쌍계사 녹원전법상 중 녹야원 인연담인 선록왕 이야기

한편 쌍계사 녹원전법상에는 다른 녹원전법상에서는 볼 수 없는 녹야원 관련 인연담인 착한 사슴왕(善鹿王) 이야기(사진 5)가 표현되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전생에 녹야원에 사는 사슴 왕이었는데 그 나라 왕 범마달이 사슴 사냥을 하며 사슴 몰이를 하는데, 선록왕이 왕에게 가서 우리 사슴들이 한 번에 죽으면 고기가 다 상할 터이니 하루에 한 마리씩만 진상케 하면 왕께서도 성한 고기를 드시고 우리도 하루라도 더 살 수 있어 좋겠다고 청하니 왕이 그리 하라고 했다. 어느 날 새끼 밴 사슴 차례가 되자 새끼 밴 사슴이 새끼를 낳은 뒤 죽고 싶다고 하고 아무도 대신 가려고 하지 않자 선록왕이 대신 죽으러 가니, 왕 범마달이 선록왕을 보고 어찌 네가 왔냐고 물었다. 이에 새끼 밴 사슴이 새끼를 낳은 뒤 죽고 싶다고 하는데 대신 올 이가 없고 진상을 빠트릴 수 없어 자신이 왔다고 하자 왕이 선록왕의 어진 마음에 감동하여 다시는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하며 진상을 그만 두고 녹야원을 사슴 동산으로 만들고 한다. 
이 전생담이  『월인석보』에 실린 것으로 보면 우리나라 팔상도의 시작이 되는 팔상 판화가 실린  『석보상절』에도 이 내용이 실려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쌍계사 팔상도를 제작한 화원들은 녹원전법상 제작 당시  『석보상절』이나  『월인석보』의 판화뿐만 아니라 그 내용도 참고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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