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함께하는 ‘노자’ 산책 (8) - 도덕경 - “도를 지니고 있는 자는 가득 채우려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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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함께하는 ‘노자’ 산책 (8) - 도덕경 - “도를 지니고 있는 자는 가득 채우려 하지 않는다”
  • 글 · 고은진 철학박사
  • 승인 2022.03.16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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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이 장은 도를 지닌 선비의 모습을 형용하고 있다. 선비 사(士)자는 단순한 통치자나 선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나라나 백성을 다스리는 일을 맡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렇듯 도를 지니고 나라나 백성을 맡아 다스리는 사람의 모습은 개념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여 다만 묘사할 뿐이다. 도덕경 1장에 나오는 말처럼 도의 속성을 언어화하기는 힘들다. 그 이유는 미묘(微妙)하고 현통(玄通)하여 그 깊이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인식은 아는 만큼 보인다. 모자 장수의 눈에는 모자가 보이고, 신발 장수의 눈에는 신발이 보이듯 도를 잘 터득한 사람의 눈에는 도의 세계가 보인다. 그 도의 세계는 일반인이 보기에 미묘하고 현통하다. 그것은 도의 세계가 어떤 체계나 일정한 관점으로 접근하여 이해하는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이성이나 알음알이로 알 수 있는 지식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식은 이미 일정한 가치 체계나 욕망이 깃들여 있는 것으로 어떤 지향성을 가진 의식 활동이다. 따라서 유한하고 제한적이다. 
그러나 도는 이러한 앎의 영역이 아니다. 굳이 억지로 그 모습을 묘사하자면 마치 겨울 내를 건너듯이 천천히 움직이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듯이 주춤거리고,  몸을 도사리는 것같이 한다. 그 모습은 손님처럼 진중하고, 얼음이 봄철에 녹듯이 쉽게 풀어지고, 다듬지 않은 통나무처럼 소박하다. 그 마음은 돈후해서 통나무 같고, 그 마음은 비어서 골짜기와 같고, 흐린 물과도 같다. 
도를 체득한 사람들의 행위가 항상 주저주저한 것은 비겁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반대편까지 고려하여 전체를 아우르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을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를 지닌 선비의 모습은 흡사 이중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이는 도가 서로 상반된 것들의 교차로 존재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도는 유무, 전후, 선악, 미추, 상하, 생멸, 왕래, 장단, 시비 등 서로 반대편 존재들의 짜임으로 이루어진다. 노자가 보기에 세계가 두 계열의 대립면이 자신의 존재 근거를 반대편에 두면서 꼬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그 자신의 삶을 다른 것들과 뒤섞어 혼탁하게 꾸려 나갈 뿐 특정한 가치를 선명하게 부각시키지 않는다. 그러기에 혼탁한 흐린 물의 모습을 하지만 고요하게 하여 서서히 맑게 할 수 있다. 즉 흔들려서 흐려진 물은 가만히 안정되어 가는 과정을 거쳐 서서히 맑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도 변동이 가해져 서서히 새로운 형태의 생기를 갖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모두가 이미 도를 가지고 있다. 가령 우리 마음속에 이미 무한한 미묘함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사물에 응할 때 저절로 현통할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무한한 도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뭔가 새롭게 이루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꽉 채우려 한다. 그러나 뭔가를 이루게 되면 곧 인위적인 것이 되고, 채우면 더 이상 들어갈 곳이 없다. 그래서 노자는 꽉 채워서 본질을 추구하기 보다는 비우고 해체해서 중심이 없거나 여럿인 다원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본질을 추구할수록, 채울수록, 인위적일수록 도로부터는 멀어져간다. 도로부터 멀어져감이란 속박과 주장 규범 속에 놓여 진솔, 순박, 꾸밈없음으로부터 멀어져 감을 의미한다. 이러한 것은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궁핍과 고갈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것과 같다. 따라서 노자는 도를 보존한 사람은 도를 안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을 뿐 도를 방치한 채 새롭게 뭔가를 이루려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는다고 하고 있다. 
불가에서는 지관(止觀)수행을 통해 멈추고 그치게 되면 저절로 지혜의 눈을 통해 여여(如如)하게 된다고 한다. 이는 공(空)의 체득과 무관하지 않다. 공(空)은 비어있음이 아니라 충만함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이다. 비어있기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있고, 비어있기에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처럼 도를 체득한 사람 또한 비우고, 무위로 행하기 때문에 작위하지 않고 능히 나날이 새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그 힘은 낡아서 못쓰게 되는 법이 없기 때문에 새롭게 이룰 필요도 없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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