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판(理判)·사판(事判)의 올바른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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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판(理判)·사판(事判)의 올바른 이해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5.10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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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판과 사판은 서로 협력하는
수레의 두 바퀴처럼
둘이 아닌 공생의 관계
김성도(봉림사신도회장, 포교사)
김성도(봉림사신도회장, 포교사)

이(理)는 이치를 뜻하며, 사(事)는 일을 뜻한다. 판(判)은 노력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데 막다른 데 이르러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체념적 의지를 이판사판이라 여기고 있다. 즉, 궁지에 도달하여 뾰족한 묘안이 없음을 비유할 때 이판사판 끝까지 가보자고 한다. 이 제목으로 수 년 전에 SBS채널에서 드라마로 방영된 바 있다. 이 드라마는 법정의 아닌 법원드라마로써 판사들의 치열한 삶, 갈등과 애환, 욕망과 좌절 등을 다룬 끝장 드라마로 구성되어 이판사판의 아름다운 본래의 뜻이 왜곡, 변질되어 우리 사회에 잘못 인식되는데 한 몫 한 바 있다.
불교 용어인 이판사판은 조선시대에 생성된 단어로써 우리 사회에서 극과 극으로 묘사되는 생각과는 반대로 원래의 참 뜻을 헤아린다면 위기를 기회로 삼아 아름다운 역할 분담으로 그 시대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 나간 당시 스님들의 지혜를 엿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는 유교의 사대부 세력인 유학자들의 눈을 피해 새로운 살길을 찾아 나서야만 했다. 은둔 생활로 불경 연구와 참선 등을 통한 수행으로 불법의 맥을 잇는 수도승을 이판승이라 했고, 폐사를 막기 위해 기름이나 종이, 신발을 만드는 잡부 역에 종사하면서 사찰을 존속시키는데 역할을 맡은 스님을 사판승이라 불렀다.         
당시 불교가 탄압받던 조선 시대에 스님들께서 헌신적인 자기희생으로 역할 분담의 소명의식 속에 그 법맥이 전수되어왔다. 공부를 하는 이판승과 사찰의 행정 업무나 살림살이를 하는 사판승으로 구분지어 직책을 부여받고 역할에 충실하며 불교 발전에 이바지하여 왔다. 그러므로 이판과 사판은 서로 협력하는 수레의 두 바퀴처럼 둘이 아닌 공생의 관계가 자명한데도 이 둘 사이를 원수처럼 풀이 했으니 이는 잘못된 해석이며 모순이다.
화엄교학에서는 평등의 본체를 이(理)라 하고 이치와 현상의 차별적인 사상, 사물을 사(事)라 칭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진리, 도리, 추상, 판단력, 지식 등은 이에 속하고 사물, 현상, 일 등은 사에 속한다. 이와 사는 서로 융합되어 걸림이 없이 원융하다고 설한다, 즉, 절대의 진리와 차별 있는 현상계가 둘이면서 하나요, 하나이면서 둘이 되는 관계 즉, 이사불이(理事不二)라 가르치고 있다.
의상스님께서는 화엄경, 법성게에서 “이사명연무분별”이라 설하셨다. 이는 법계이며, 사는 현상계로서 두 세계가 어둡고 깊어 은은하여 명확하지 않다. 그러므로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밤의 아침 새벽과, 아침의 밤 새벽처럼 두 세계가 분별이 없음으로 둘이 아니라고 일깨워 주신다.
예를 들면 물의 축축한 습기를 이(理)라하고, 물이 얼음 이슬 안개 등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사(事)라고 한다. 이는 본질이요, 사는 본질이 변하여 여러 가지 작용을 일으키므로 체용이라 한다. 그러므로 본질인 이는 영원무궁한 세계로 고통과 윤회를 초월한 세계이나 이 역시 현상계인 사의 범주 속에 있는 것이므로 이와 사는 명연하여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큰 사찰의 일주문을 지나면 천왕문이 나오고 다음에 나오는 문이 불이문인데 이 문의 명연(冥然)을 뜻하며 해탈을 뜻하고 완전한 불법의 세계이며, 부처님의 나라로 들어서는 관문이니 법문은 문 문(門)자를 써서 법문(法門)이라 쓰이는 이유이다.
모든 기업이나 단체 역시 이와 사로 나뉘어 보직을 부여 받고 있으나 이와 사를 하나로 묶는 이사회(理事會)를 구성하여 기업경영 관리의 최고 결정 기관으로 삼고 있다. 이와 사의 결집체인 이사회의 권한은 상법에 명시하여 법의 보호를 받고 있으니 법적으로도 이와 사는 둘이 아니기에 이판사판의 참 뜻을 되새기며 올바로 알고 올바르게 써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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