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함께하는 ‘노자’ 산책 (11) - 도덕경 - “홀로 서서 변하지 않고 두루 행해지면서도 위태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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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함께하는 ‘노자’ 산책 (11) - 도덕경 - “홀로 서서 변하지 않고 두루 행해지면서도 위태롭지 않다”
  • 글·고은진 철학박사
  • 승인 2022.05.10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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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을 알지 못하므로 그것을 道라 이름 지어

25장은 노자의 우주발생론, 세계관, 인생론의 대강을 압축시킨 장으로 도덕경 전체 텍스트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으며 전체 논리 체계를 가장 체계적으로 요약시켜 놓은 장이다. 더욱이 이 장은 지금의 통행본과 거의 일치하는 모습으로 곽점 죽간본에도 나온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도덕경의 기본 골격 이미 BC 400년 경에 확실하게 규정지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왕필의 노자에도 이 25장 내용은 완전한 형태로 들어있을 뿐만 아니라 주석 또한 공을 들여 성실하고 치밀하게 논리를 담고 있다. 그 말은 왕필 또한 25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유물(有物)은 어떤 것, 어떤 존재, 있는 것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유물이 혼돈스러운 모습으로 천지보다 앞서 생겨났다. 천지는 유형·유명의 세계라고 하는 점에서 규정 즉 로고스의 세계이다. 그런데 규정이란 다른 한 편으로 제약을 의미한다. 노자는 오직 무규정을 통해서만이 무한한 개별성을 가진 만물들이 나올 수 있다고 보았고, 이 무규정의 세계를 곧 혼돈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 혼돈인 카오스는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내에서 생성하는 과정이다. 즉 어떤 것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생육하고 생활하는 것이다. 혼돈하여 하나가 된 그 무엇이 천지가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하는 중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고요하여 소리도 없고, 아득하여 모양도 없고, 어느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삼라만상에 두루 나타나 잠시도 쉬는 일이 없다. 그것을 만물의 어머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 그 이름마저 알 수 없다. 임시로 이름 지어 도라 하고, 억지로 이름 붙여 크다 한 것이다.
이름은 무엇인가를 규정짓고, 한정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도는 한정할 수 없는 무제약적인 것이다. 크다는 것은 일체의 유한한 것들을 모두 포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대립되는 것들조차 그 안에 수용하기 때문에 크다 한 것이다. 이 큰 것은 흘러 움직이면 끝이 안 보이는 넓이를 갖게 되고, 멀고 먼 넓이를 가지면 또 본래의 근원으로 되돌아간다. 이것은 대립면으로 부단히 운행하여 극점에 이르면 다시 그 반대방향으로 되돌아가는 자연의 운행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리하여 도는 큰 것이라 불리지만 큰 것으로는, 하늘도, 땅도, 제왕도 크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하늘이나 땅도 전체 자연이 존재하는 원칙을 본받아 운행(逝)하고 멀어지고(遠) 되돌아가기(反)에 크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천도(天道)와 인도(人道)가 한 덩어리로 같이 움직이고, 하늘과 땅도 전체 자연의 원리를 실현하면서 운행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네 가지 큰 것 중 제왕 역시 크다고 한 것은 천지 운영에 있어 인간의 책임성을 강하게 부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억지로 이름 붙인 도의 특성을 이어받은 제왕은 인류의 지배자로서 땅의 참모습을 본받고 땅은 하늘의 참모습을 본받으며 하늘은 다시 도의 참모습을 본받는다. 그리고 도의 본 모습은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다. 
자연은 실체가 아니라 도가 존재하는 방식이다. 도가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다는 것은 결국 도의 완전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를 중국 불교와 연결 시켜 본다면 이미 우리 안의 자성(自性)은 이미 청정하기에 그대로 지켜보면 그대로 불국토인데 헛된 망상으로 중생심을 짓는 것과 다르지 않다.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다는 것은 스스로 부처임을 알아 우리 안의 부처의 마음을 쓰는 것과 유사하다. 우리가 이미 부처인데 왜 중생으로 사는가? 그것은 부처임을 모르고 구하고, 망상 지어 윤회를 거듭하는 것이다. 수행이란 바로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 것, 즉 우리 안의 부처의 마음을 쓰면서 사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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