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빠사나 길라잡이 (41) - 법들의 조건에 대한 지혜(法住智)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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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빠사나 길라잡이 (41) - 법들의 조건에 대한 지혜(法住智) 2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5.17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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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
유현

순수 위빠사나 행자는 비록 본삼매의 증득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근접삼매나 찰나삼매에서 마치 의사가 처방하기 위하여 질병의 원인을 찾듯이 정신과 물질의 원인과 조건을 탐구할 수 있습니다.  
먼저, 나를 구성하는 오온五蘊, 즉 정신과 물질이 만약 원인과 조건을 갖지 않았다면 모든 곳, 모든 경우, 모든 사람에게 오온이 동일한 상태로 일어날 것이라고 숙고합니다.   
그 다음, 같은 모태에서 태어난 형제들끼리도 몸과 마음이 다른 이유는 그 원인과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 원인과 조건인가?
  『상윳따』의  「조건의 경」(S12:20)에 나타난 무명연행無明緣行(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들이 있다.)부터 생연노사生緣老死(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다.)까지의 연기의 정형구에서 ‘연緣’은 조건을 말합니다. 
사람은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태어납니다. 12연기를 정확히 이해하면 ①무명과 ⑧갈애와 ⑨취착과 ⑩업유, 이 네 가지 법들이 태어나게 한다는 점에서  원인의 조건이라 하고, 음식(영양소)는 10개월 동안 태아의 성장을 도와주기 때문에 지탱하는 조건이라고 파악합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식에게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이 되듯이 ➁의도[行]는 ➂알음알이의 특별한 조건이 되어 업(業, kamma)을 통해서 ⑩존재로 태어나게 만든다고 파악하고 다시 묻고 판별합니다.
사람은 어떤 경로로 태어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인다까 경」 (S10:1)에 나타나 있습니다. 세존께서 “맨 처음 모태에서 ‘깔랄라’(수정란)가 있고, (수태 후 1주일) 그 다음에 ‘압부다’가 있다. (수태 후 2주일) ‘빼시’가 생기고, 이것이 성장하여 (수태 후 3주일) ‘가나’가 된다. 또 (수태 후 5주일) 다시 돌출부가 생겨 머리털, 몸 털, 발톱 등이 생겨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교의 연기법에 의하면 죽음의 순간, 마음에 업의 표상[業相]이 일어났다가 멸하고 이 업상은 밀랍 위에 찍힌 도장처럼 자궁(모태) 속에 새로 생성하는 식(알음알이 = 재생연결식)에 각인되어 정신·물질[名色]가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아비담마』 불교에서는 인간으로 재생할 때 자궁에서 제일 먼저 생기는 물질은 심장, 몸, 성姓 10원소 깔라파(물질의 최소단위)인데, 이것은 모두 업에서 생긴 것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물질의 몸의 조건을 파악한 뒤 다시 “눈과 형상을 조건으로 눈의 알음알이[眼識]가 일어난다.”라는 방법으로 정신의 몸을 파악합니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인과법칙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사람이 죽어서 무엇이 되며, 어디로 가나 하는 의문은 까마득한 옛적부터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였습니다.
죽고 난 후에 내생이 있다고 믿는 것을 비과학적이라고 보는 유물론자들(=사후단멸론)도 있는가 하면, 전통 기독교에서는 인간은 하느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불멸의 영혼을 갖고 있고 죽은 뒤 선한 사람은 천당에, 악한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되며 그 천당과 지옥은 영원하다는 게 ‘사후 존속론’의 입장입니다.
불교는 삶과 죽음이란 비인격적[無我] 의식의 흐름일 뿐이고 그것이 무지와 갈애의 충동을 받아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흐르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불멸의 영혼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물론 상대적 진리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계속 몸을 받는다는 사실 때문에 필시 불멸의 영혼이 있을 거라 여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삶과 죽음의 인과과정이 어떤 절대적인 조물주(기독교의 하느님)나 천신의 계획적 의도나 조정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업에서 업으로부터 전개된다는 진리를 깨달으셨고 “업은 나의 모태이자 상속자이다.”라고 사자후를 토하셨습니다. 
온蘊·처處·계界·연緣의 네 가지 법들을 배우지 못한 범부들은 전생과 내생에 대하여 큰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숙명통으로 나의 전생을 보고 알지 못한다면 “나는 정말 과거에 존재했는가? 아니면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는가? 나는 과거에 무엇이었을까? 나는 과거에 어떠했을까? 나는 과거에 무엇이 되었다가 무엇이 되었을까?”라고 과거에 대한 5가지 의심이 일어납니다.
천안통으로 나의 미래 생을 보고 알지 못한다면 “나는 정말 미래에도 존재할까? 아니면 미래에는 존재하지 않을까? 나는 미래에 무엇이 되어 있을까? 나는 미래에 어떠할까? 나는 미래에 무엇이 되었다가 무엇이 될까?”라고 미래에 대한 5가지 의심이 일어납니다.
지혜가 없으면 현생의 삶에 대해서도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존재하는가? 아니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떠한가? 이 중생은 어디서 왔는가? 그리고 이 중생은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라고 하면서 현재에 대한 6가지 의심이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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