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빠사나 길라잡이 (42) - 법들의 조건에 대한 지혜(法住智)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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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빠사나 길라잡이 (42) - 법들의 조건에 대한 지혜(法住智) 3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5.24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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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
유현

물질[色]과 정신[受·想·行·識]이 서로 엉켜 붙도록 윤회의 자양분을 공급하는 것이 무명과 갈애이고, 그로 인해 말과 생각과 행동으로 선업 또는 불선업을 짓게 되어 그 과보의 굴레에 따라 삼계 중의 어느 한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이 연기의 유전문입니다.
연기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12연기는 원인과 결과의 반복적 지속을 나타낸다는 점입니다. 12연기는 괴로움의 원인과 결과의 고리들이 반복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세존께서  「코끼리 발자국 비유의 긴경」 (M28)에서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연기를 보는 자’란 조건[緣]을 보는 자라는 뜻이고, ‘법을 본다.’는 것은 조건을 따라 생긴 법들을 본다는 뜻입니다. 
이 몸뚱이,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라는 것은 ‘되어있는 것’, ‘생긴 것’, ‘존재하는 것’인데, 현재에 이렇듯이 과거에도 조건으로부터 생겼고, 미래에도 조건으로부터 생길 것이라고 내관하여야 합니다. 바꿔 말하면 업業의 회전과 과보의 회전으로 정신·물질의 조건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전의 업으로서의 존재에서 어리석음이 무명이요, 노력이 상카라(行)들이며, 집착이 갈애요, 접근이 취착이며, 의도가 존재[有]이다.” 이 다섯 가지 법, 즉 <무명-행-애-취-유>가 금생의 재생연결의 조건이요, 괴로움의 원인[集]이라고 파악합니다. 
“금생의 재생연결이 알음알이[識]이고, 모태에 들어감이 정신·물질[名色]이고 감성이 감각장소[六處]요, 닿음이 감각접촉[觸]이며, 느껴진 것이 느낌[受]이다.” 이 다섯 가지 법, 즉 <식-명색-육처-촉-수>가 금생의 과보요, 괴로움[苦]이라고 파악합니다. 
“현생의 <갈애⇒취착⇒유⇒무명⇒행>이 미래 재생연결의 조건이 된다.”라고 파악하면서 업의 회전과 과보의 회전을 통해서 조건으로부터 정신·물질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현재에 이렇듯이 과거에도 업의 회전과 과보의 회전을 통해서 조건으로부터 생겼고, 미래에도 업의 회전과 과보의 회전을 통해서 조건으로부터 생길 것이라고 내관합니다. 
업과 과보에 대한 큰 지혜는 제자들이나 유학들이 공유할 수 없는 부처님들께만 고유한 것이어서, 위빠사나 행자의 입장에서 하늘에 별 따기와 같이 깨닫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쉼 없이 연기의 순관順觀을 하여 숙달하게 된다면, 16가지 의심(=과거5가지+미래5가지+현재6가지)이 사라집니다. 따라서 숙명통으로 과거를 되돌아보지 않더라도, 천안통으로 미래로 치달려 가지 않더라도, 그리고 현재로 치달려 가지 않더라도 연기 혹은 조건발생을 정확하게 알게 되어 모든 의심이 말끔히 해소될 때가 반드시 옵니다. 
앞에서 살펴본 16가지 의심이 깨끗하게 해소될 때 오른 쪽 [도표]에 나타난 위빠사나의 7청정 가운데 4번째인 의심을 극복함에 의한 청정의 경지에 들어선다고  『청정도론』 에서 밝혔습니다. 
 「수시마 경」 (S12:70)에 나타난 법문을 되새겨 봅니다. 수시마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여쭤 보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여기서 존자들은 구경의 지혜(아라한과)를 드러내었지만 오신통五神通을 증득하지 못하였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됩니까?” 
세존께서 “수시마여, 먼저 법들의 조건에 대한 지혜가 있고 나중에 열반에 대한 지혜가 있다.”라고 답하십니다.
이 경의 가르침은 삼매가 아무리 수승하더라도 법들의 조건에 대한 지혜가 없다면 혜 해탈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세존께서 늘 강조하신 도(magga)와 과(phala)는 삼매의 소산이거나 삼매의 이익이거나 삼매의 열매가 아니라 오로지 위빠사나의 소산이고 위빠사나의 결과물임을 이해하게 됩니다.
오온은 그 태어남이 무상하고 형성되었고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고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며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며 탐욕이 빛바래기 마련인 법이며 소멸하기 마련인 법들이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분명하게 보는 지혜, 이를 ‘법들의 조건에 대한 지혜’라 합니다.
법들은 인연소생법입니다. 법의 바다에서 뒤파도가 앞 파도에 연이어 출렁대며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거듭하듯이 법들(정신과 물질)이 조건 생生·조건 멸滅하고 흘러가고 있을 뿐이고, 나의 과거 생·현생·미래 생이 실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태어나는 존재가 죽은 바로 그 존재와 동일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답은 나가세나 스님이 ‘밀린다’ 대왕에게 한 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라고 답하셨습니다. 재생再生은 있지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육화再肉化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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