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함께하는 ‘노자’ 산책 (12) - 도덕경 - “무기는 상서롭지 못한 기물이니… 부득이하게 그것을 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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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함께하는 ‘노자’ 산책 (12) - 도덕경 - “무기는 상서롭지 못한 기물이니… 부득이하게 그것을 쓸 뿐”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5.31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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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비록 승리하더라도
슬픔과 자비로써 죽은 이에 예를 다해야 한다는 것
상대적이고 대대적인 관계의 포용 담아내

 

이 장은 곽점본과 백서본에 원문 그대로 들어있다. 이 말은 노자 문헌이 쓰여질 당시부터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논의와 더불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세상 사에 관한 논의까지 다 갖추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노자의 결구와 병서의 사상적 기반은 완벽하게 하나로 융합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철학은 평화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라야 가능하다. 결국 전쟁을 컨트롤해야 평화, 문화, 태평성세가 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이 장은 30장에 이어 평화주의자로서의 노자의 사유를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 
이 장에서 왼쪽, 오른쪽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옛날 중국에서는 왼쪽을 양(陽)적인 것, 곧 남성적인 것으로 하늘, 동쪽, 생명 등을 관장하는 자리로 생각하고, 오른쪽을 음(陰)적인 것 곧 여성적인 것으로서 땅, 서쪽, 죽음 등을 관장하는 자리라 생각하였다. 노자가 오른쪽보다 왼쪽을 중시여기는 이유는 오른 쪽은 왼쪽에 비해 늘 무기를 잡는 쪽이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악수를 오른쪽으로 하는 이유는 무기를 잡는 쪽이 오른쪽이기 때문에 무기가 없음을 상대방에게 보이기 위함이다. 따라서 보통 때는 생명을 관장하는 자리인 왼쪽이 귀하게 여겨지지만, 전시에는 죽음이 판치므로 오른쪽이 귀하게 여겨진다. 지위가 높은 장군을 오른쪽에 배치하고 낮은 장군을 왼쪽에 배치하는 것도 흉사로 인식되는 전쟁은 상례에 따라 오른쪽이 주된 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노자의 경우 전쟁을 해야 할 경우 신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경계한다. 이러한 무기들은 상서롭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하기 때문이다. 전국시대 노(弩)의 발명으로 사람들은 원거리의 사람을 활로 쏘아 죽일 수 있게 되어 전쟁으로 인한 살상자가 대폭 증가하게 되었다. 근대에 와서 총, 다이너마이트, 탱크가 개발되면서 살상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고 현대의 핵무기는 지구 존립을 위협할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기에 노자는 훌륭하다는 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전쟁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노자는 비록 평화주의자이지만 부득이한 방어전의 경우 전쟁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노자는 전쟁에서 비록 승리하더라도 슬픔과 자비로써 죽은 이에 예를 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아무리 전쟁에 승리하였더라도, 전쟁 자체는 부득이한 흉사이다. 사람이 대량으로 살상되기 때문이 방어전에서 승리하고 돌아와서 그 승리에 도취될 것이 아니라 아군이든 적군이든 그 싸움에서 죽어간 많은 사람을 애도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흉사에서 승리하였다고 그것을 기뻐한다는 것은 예가 아니기에 천하를 관장하는 사람은 전쟁에 승리하고도 비통함으로 떠들썩한 승리의 잔치가 아니라 엄숙한 상례(喪禮)따라 처신해야 함을 밝히고 있다. 
싸움이란 물질적 조건보다 참여하는 인간 모두의 심리의 싸움이기 때문에 그 심리를 잘 관장하는 사람이 궁극적으로 이기게 된다. 전쟁을 할 때 위대한 장수는 전쟁을 하지 않고 이기는 장수다. 병가(兵家)는 항상 변화를 중시한다. 병법이란 시시각각 변하는 모든 요소를 전관적으로 고려하는 데서 성립한다. 지형(地形), 시세, 천후(天候) 등 만반의 조건의 변화를 항상 동적으로 파악한다. 더구나 병법에서 임기응변도 잘 활용해야 한다. 싸움이란 물질적 조건보다 참여하는 인간 모두의 심리의 싸움이기 때문에 그 심리를 잘 관장하는 사람이 궁극적으로 이기게 된다. 결국 사실과 경험의 관찰, 연구의 축적과 예지를 통한 병법의 세계는 노자의 세계와 만난다. 노자가 말하는 상대적이고 대대적인 관계의 포용을 병가는 실전 속에서 실천한다. 최고의 모략가는 유위가 아닌 무위, 코스모스가 아닌 카오스의 무형적 존재가 되어야한다. 그것이 대도(大道)의 논리이다.  

/글·고은진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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