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에세이 - 아직도 뽑지 못한 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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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에세이 - 아직도 뽑지 못한 가시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6.22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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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 김승석
유현 김승석

여름의 길목으로 들어서는 6월에는 비소식이 잦다. 현충일을 앞두고 내린 비는 5월의 가뭄을 해갈하는 단비. 땅의 메마름을 해소하고 사람들을 시원하게 해주고 초록생명들에게 생기를 북돋워 주었다.
제주도는 4월 중순부터 하순까지 비가 자주 내린다. 이 무렵의 비를 ‘고사리 장마’라고 부른다. 그런데 올해는 예년과 달리 강수량이 적고 낮은 온도 때문인지 어린 고사리 순이 우후죽순처럼 올라오지 않았다.  
매년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이른 아침에 내자는 아란야 농원의 비탈진 언덕배기에서 고사리를 꺾는다. 휴경지인 양지 바른 돌무더기나 가시덤불 사이로 쑥쑥 올라온 고사리 채취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고사리는 꺾은 후 오래 두면 단단해져 버리게 되므로 바로 삶아야 한다. 가마솥에서 물 끓이는 일은 내 몫이다. 이에 앞서 낫이나 전정가위로 내자가 다니는 길섶의 가시덤불을 제거해 주어야 한다.
고사리 밭의 양지 바른 돌무더기는 찔레가 가장 즐겨하는 자람 터다. 찔레는 전국 어디에서나 자라며 키가 2미터 정도이고 가지가 밑으로 처져서 덩굴을 만들기 때문에 적당히 가지치기를 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손이나 팔이 가시에 긁히거나 찔린다.
가시는 과거의 기억이나 개념을 잉태한다. ‘장사익’의 찔레꽃 가요는 배달민족의 한과 정서를 떠오르게 하고, 낫으로 풀을 베다가 손톱 밑에 박힌 가시를 빼지 못해 안달이 났던 기억도 되살아난다. 
가시 박힌 곳이 바로 손톱 밑의 여린 살이라서 통증이 심할 뿐만 아니라 생손으로 곪기 전에 뽑아야 한다는 간절함 때문에 몸의 가시는 완전히 제거된다. 
그런데 늘 마음에 꺼림칙하게 걸리는 가시는 완전히 뽑아내지 못하고 팔순을 바라보고 있어서 문제다. 번뇌煩惱의 가시다. 
붓다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연기의 이치에 맞게 정신을 쓰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다 겁 생에 쌓아온 오염원의 습기가 남아 있어 마치 화가가 캔버스 위에 붓으로 그림을 그리듯이 여러 가지 회화 도구로 분별의 마음씨를 아직도 그려내고 있음이랴. 
번뇌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는다면 눈곱이 낀 눈으로 형상을 보는 것과 같고, 심산유곡의 물소리를 듣지 못함과 같을 것이다.
법의 사령관인 사리뿟따 존자는 “번뇌가 일어나기 때문에 무명이 일어난다. 번뇌가 소멸하기 때문에 무명이 소멸한다.”라고 설파하셨다.
내 마음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티 없는 거울이 되려면 팔정도의 물로 번뇌의 때를 씻어내야만 한다. 
아라한들은 탐·진·치의 가시 모두를 없앴다. 죽어서 관속에 들어갈 때 갖고 가는 것은 번뇌의 마음뿐임을 알 성싶다. 
번뇌는 실체적이고 영구적이 것이 아니라 인연 따라서 찰나 생·멸함을 알고 보는 지혜의 등불을 밝혀 웰-다잉(well-dying)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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