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49)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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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49)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17)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6.22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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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먹은 아이도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을 행하기는 팔십 먹은 노인도 어렵다

북쪽 벽 첫 번째 칸의 마지막 장면, 즉 왼쪽 줄 맨 위에 그려진 이야기는 세존께서 널리 계법을 편다는 부선계법(敷宣戒法)이다.  『범망경(梵網經)』에 나오는 이야기로 불자들이 마땅히 지켜야 하는 십계가 제시되었다. 십계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살생하지 말라(不殺生). 둘째, 주지 않는 것을 훔치지 말라(不偸盜). 셋째, 음행하지 말라(不邪淫). 넷째, 거짓말하지 말라(不妄語). 다섯째, 술을 마시지 말라(不販酒, 不飮酒). 여섯째, 재가출가인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不說在家出家人過). 일곱째,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비방하지 말라(自讚毁他). 여덟째, 재물을 아끼지 말라(慳惜財物). 아홉째, 성내지 말라(不得嗔心). 열째, 사견으로 삼보를 비방하지 말라(不得邪見謗三寶).
모두 익히 들어 봤던 내용이다. 다만 일부 내용이 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 등 다른 계율과 혼재되었다. 가령 대개의 범망경에는 다섯 번째 계율이 ‘술을 팔지 말라(不販酒)’이다. 술이 죄를 저지르는 인연이 되므로 보살이 중생에게 술을 팔아 중생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석씨원류』 의 부선계법 해설에는 ‘술을 마시지 말라’로 쓰였다. ‘불판주’ 대신 수행자들이 지켜야 하는 일반적인 계율인 ‘불음주’로 대체되었다. 이외의 다른 항목도 모두 잘 아는 내용이다. 하지만 잘 안다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쉽지는 않다. 이와 관련해서 백낙천((白樂天)과 도림(道林, 741~846) 선사의 일화가 전한다. 당송 팔대가 중 한 명인 백낙천이 항주 자사로 부임한 후 인근 절에 나무 위에 올라가 참선하는 선사가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까치가 옆에 둥지를 틀었다 해서 작소(鵲巢)라고도 불리는 도림 선사를 찾아갔다. 마침 선사가 소나무 위에서 좌선한 것을 보고 백낙천이 소리쳤다. 
“선사께서 계신 곳이 몹시 위태해 보입니다.”
그러자 선사는 미동도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위태한 것은 당신이오.”
백낙천은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다시 묻길,
“저야 자사이고 이렇게 땅 위에 있는데 무엇이 위태롭습니까?” 
그러자 선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티끌 같은 세상 지식으로 교만한 마음만 늘어 번뇌와 탐욕이 끊임없으니 어찌 위태롭지 않겠소.”
백낙천은 선사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간파하고 공손하게 가르침을 청했다.
“불법의 대의가 무엇입니까?”
선사는 막힘없이 답했다.
“모든 악한 일을 짓지 말고 많은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오.”
심오한 대답을 기대했던 백낙천은 실망해 다시 말하길,
“세 살 먹은 아이도 그런 말은 할 줄 압니다.”
이에 선사가 간단히 답했다.
“세 살 먹은 아이도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을 행하기는 팔십 먹은 노인도 어렵다네.”
이에 당대 최고의 문장가인 백낙천이 선사에게 예배를 드리고 떠났다고 한다. 제대로 알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로 『전등록(傳燈錄)』에 전한다.     
이 계법을 설하는 부선계법 장면은 이전 장면인 처음으로 계단을 세운 초건계단과 관련하여 표현된 것으로 여겨진다.       
각원사 벽화(사진 1)나 석씨원류 판화(사진 2)에서는 범망경에 언급된 노사나불이 연화좌에 앉아 대광명을 발하며 석가모니불에게 심지중금강보계(心地中金剛寶戒)를 설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화면 중앙에 보관을 쓰고 지권인을 취한 노사나불을 묘사하고 노사나불 뒤에는 대광명이 발하는 모습이 표현되었다.   

 
세존께서 술 취한 코끼리를 조복하시다
 
부선계법이 표현된 북쪽 벽 다음 칸은 북쪽 두 번째 칸으로 벽화가 그려진 열네 칸의 벽 중 일곱 번째 칸이다. 벽화는 세 줄로 각 줄에는 다섯 장면씩 총 15장면(석씨원류 90~104번째 장면)이 그려졌다. 진행 순서는 다른 벽과 마찬가지로 아랫열 오른쪽에서 시작하여 맨 윗열 왼쪽에서 끝난다. 각 장면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5단    104  추녀개용(醜女改容)   103  노인출가(老人出家)    102  빈공견불(貧公見佛)
4단    101  불화노지(佛化盧志)   100  장궁해불(張弓害佛)      99  조복취상(調伏醉象) 
3단     98  아난색유(阿難索乳)     97  화제음녀(化諸淫女)      96  항복독룡(降伏毒龍) 
2단     95  도제석종(度諸釋種)     94  불유영상(佛留影像)      93  위왕설법(爲王說法) 
1단     92  재환본국(再還本國)     91  도발타녀(度跋陀女)      90  이모구도(姨母求道)    

이들의 내용 중 이모구도, 도발타녀는 여성 출가자에 대한 이야기이고, 재환본국, 위왕설법, 불유영상, 도제석종은 세존께서 여러 나라를 돌면서 많은 사람을 교화시켰는데 가족과 석가족도 마찬가지로 교화시켰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항복독룡, 아난색유, 조복취상, 추녀개용은 세존께서 신이(神異)를 보여주는 이야기이고, 장궁해불, 빈공견불에서는 과거의 잘못에 따른 인과를 전해준다. 화제음녀, 불화노지, 노인출가는 교화의 대상 중에 천하고 소외된 사람들도 있어 교화에 남녀, 노소, 귀천으로 차별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들 중 불교 미술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가 있으니 바로 조복취상이다.  『법구경(法句經)』에 실린 내용으로 세존을 오랫동안 모셨던 세존의 사촌동생이자 아난의 형인 데바닷타(提婆達多, 제바달다)가 세존을 시기하여 마가다국의 아사세왕과 공모한다. 데바닷타는 아사세왕이 세존을 초청하여 세존 일행이 성안으로 들어오게 하면 술 취한 코끼리 500마리를 내보내 세존을 밟아 죽게 하고 자신이 부처가 되어 세간을 교화하겠다고 하였다. 다음날 세존과 제자들이 성안으로 들어가니 술 취한 코끼리들이 소리치며 달려 나와 온 성안이 난장판이 되었다. 코끼리들이 세존이 계신 곳으로 달려오자 오백 제자들은 날아올라서 공중에 머물고, 아난만이 세존을 모시는데 세존께서 다섯 손가락을 들어 올리니 다섯 마리의 사자가 나타나 코끼리를 향해 포효하니 코끼리들이 세존 앞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자신들의 허물을 뉘우쳤다. 벽화(사진 3)에는 화면의 크기 때문에 동물들의 숫자가 적게 그려졌지만 세존, 아난, 공중에 떠있는 제자들과 사자와 코끼리의 모습이 표현되었다. 인도에서 만들어진 조복취상 조각(사진 4)은 벽화보다 긴박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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