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함께하는 ‘노자’ 산책 (13) - 도덕경 - “부드럽고 유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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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함께하는 ‘노자’ 산책 (13) - 도덕경 - “부드럽고 유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6.2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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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적 원리를 체득하고
삶의 영역에서 운용할 수 있는 지혜가
미묘한 밝음인 미명(微明)이다

얼핏 이 장을 잘못 읽으면 권모술수나 처세술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장은 노자가 세계의 존재 형식이나 우주의 운행 원리를 참고적 자료로 하여 삶의 방식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자연 현상이란 것은 극에 달하면 반대의 것으로 돌아간다. 해가 장차 기울려고 하면 반드시 성대히 빛나고, 달이 장차 기울려고 하면 반드시 차고, 등불이 장차 꺼지려고 하면 반드시 아주 밝아진다. 이 모두는 사물의 형세가 저절로 그러한 것이다. 
우주의 존재 형식과 인식의 원리 그리고 삶의 방식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움츠리고 싶으면 먼저 펴야 한다는 것은 어떤 목적을 위한 권모술수가 아니라, 우주의 존재 형식이 원래 그러하고 사물들의 성질이 본래 그러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유/무, 장/단 등과 같은 두 계열 사이의 관계와 반대편을 향한 운동 경향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반대되는 이 두 가지 성질은 필연적인 상호 관계 속에서 서로 의존해 있다. 그런데 이것은 이렇게 하자고 약속한 것이 아니라 원래 그런 것이다. 이런 우주적 원리를 체득하고 삶의 영역에서 운용할 수 있는 지혜가 바로 ‘미묘한 밝음’인 미명(微明)이다. 
노자의 핵심 의도는 자연의 원리를 삶에서 운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도가 작용하는 모습은 매우 유약하다. 그리고 노자가 모델로 하는 자연은 살아있는 자연이다. 미명을 체득한 사람은 부드럽고도 유약하다. 
살아있는 것들은 유약하다. 도를 상징하고 있는 대표적 자연물 가운데 물 또한 자연물 가운데서 가장 유약한 것이다. 유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는 것은 부드러움과 모성(母性)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물고기는 연못을 떠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죽는다. 마찬가지로 백성은 국가를 떠나 살 수 없다. 그런데 그 국가가 날카로운 도구를 드러내고 있다면 그 나라는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는 나라다. 국가의 날카로운 도구란 무기, 법규, 법령, 형벌 등으로 비유될 수 있다. 이런 것들로 백성들을 교화시키려 하거나 인도하려는 것은 노자가 보기에는 잘못된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자연이 아니며 겉으로 드러나는 언어 체계이다. 이러한 고정된 것들은 변화를 따르지 못해 한계가 금방 드러난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고 강한 것을 이긴다는 것은 도덕경 전체를 통해 일관되게 흐르는 기본 가르침이다. 도의 자연적인 흐름에 반하여 무력이나 무기를 써서는 세상을 이길 수 없다. 무기는 쓰지도 말 뿐 아니라 보지도 말아야 한다. 날카로운 무기를 드러내 놓고 자랑하는 것은 패망하는 길이다. 
또한 국가의 지시나 법령, 형벌 또한 국가의 날카로운 기물로 이 기물로 백성들을 다스리고 교화하려 해서는 안된다. 이런 것들은 모두 언어 체계로 명문화되어 있어 금방 한계에 도달하여 궁색해지기 때문이다. 노자가 보기에 물고기가 연못 밖에 나오면 안 되는 것처럼 이러한 국가의 기물은 밖으로 나오게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두 번의 세계 대전으로 인류는 엄청난 살상 무기들을 개발하였고 많은 사람들을 학살하였다. 만물의 영장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부끄러운 인류의 모습이다. 노자가 경계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신무기가 개발될수록 평화와 안전은 멀어지고 인간이 본래 지녔던 자연스러운 감정들은 이데올로기화 된다. 지난 세기 인류는 이미 커다란 비극을 경험하고 나서야 노자의 오래된 지혜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노자의 말처럼 국가의 날카로운 기물은 함부로 보여서도 안 되고, 함부로 써서도 안 되는 것이다. 

/ 글 고은진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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