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있음으로 해서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함으로써 저것이 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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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있음으로 해서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함으로써 저것이 멸한다”
  • 임관표 기자
  • 승인 2022.07.05 1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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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것이고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는 것
부처님을 만난 것이 가장 큰 복
먼 훗날 마음의 밭에서 만났을 때
손에 손잡고 태평가를 부를 수 있기를

서귀포불교대학총동문회(회장 오정은)가 지난 7월 2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 5층 탐라홀A에서 제주도민을 위한 초청 강연  “혜국 스님과 함께 하는 힐링 여행” 을 마련해, 많은 사부대중이 참여한 가운데 성대하게 초청 법회가 봉행되었다.
혜국 스님은 법문에서  “눈 온 들길을 걷는 나그네여! 갈팡질팡 걷지 말아라. 오늘 그대의 발자취는 훗날 후인이 이정표” 라는 서산대사의 시를 읊고나서 오늘 서귀포 5·16도로를 넘어오며 아름다운 숲길을 지나오면서 내 마음의 숲길, 내 마음 밭에 농사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항상 돌아보는 일이 아주 소중하다고 생각하면서 넘어왔다는 말씀을 시작으로 사자후를 펼쳤다.

혜국 스님이 사부대중에게 법문을 하고 있다.
혜국 스님이 사부대중에게 법문을 하고 있다.

 

남국선원 조실 혜국 스님
남국선원 조실 혜국 스님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서 우리가 가장 많이 들으면서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일 중 하나가 공(空)이라고 하는 세계입니다. 아침저녁 예불 모실 때마다 반야심경을 하면서 오온개공(五蘊皆空), 색즉시공(色卽是空)이요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하며 공(空)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공(空)에 대한 이야기가 어느 정도 이해를 하는데, 외국인을 상대로 공(空)에 대하여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공에 대한 이해가 나름대로 확고히 하지 않으면 불교를 이해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오늘은 먼저 공(空)에 대한 이해를 잠깐 듣고 연기법(緣起法)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 콩을 심으면 반드시 콩이 나옵니다. 농부가 농사를 지은 만큼 모든 곡식이 달라지듯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내 마음 농사에 따라서 내 마음 상태가 달라지는데, 그 마음 농사에 풍년이 되어 더 이상 바랄 수 없는 풍년을 부처님께서는 공(空)이라고 하셨습니다.

공(空)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부처님 가르침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에 지금 물이 있습니다. 물이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물이 영하라고 하는 인연, 주위가 영하라는 기온만 되면 물은 없어져 버립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얼음이 됩니다. 이 얼음으로 조합을 잘해 놓으면 처음에 조각상으로 보이지만 햇볕에 놓아두면 영상이라고 하는 인연, 영상이라는 기온이 되면 살살 녹아서 결국 물이 됩니다. 그럼 얼음이 세계는 창조되었다가 없어지고 물이 세계가 창조되는데, 물인가 했더니 100도 이상이라는 기온이 인연이 되자마자 수증기로 변해버립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얼음이 없는 게 공(空)이 아니라, 얼음도 있고 물도 있고 수증기도 있지만 영원한 실체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얼음도 없는 건 공(空)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보아 변해가는 과정, 인연을 만날 때만 물이라고 합니다. 얼음, 물, 수증기라고 하는 것은 인연에 의해서 잠깐 모양이 나타난 작용이기 때문에 모든 걸 우주 삼라만상이 인연법에 의해서 나타난 작용일 뿐입니다. 이것을 부처님께서는 공(空)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당시만 하더라도 내 마음을 어떻게 농사지을까, 어떻게 내 마음을 길들일까, 하는 문제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부처님 당시 사리불과 목련존자가 나를 끌고 다니는 나는 누구인가를 해결하기 위해 육사외도 중 한 사람인 산자야 스승을 찾아가서 몇 년을 배웠습니다. 산자야 스승은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는 이야기에 사리불과 목련이 이 몸뚱이는 얼음이 잠깐 얼었다가 녹아가는 과정이듯이 이 몸뚱이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서 점점 녹고 늙어서 죽어가고 있는데, 이 죽어가는 몸뚱이가 나인가, 누가 늙게 만들고 누가 아프게 만들고 누가 죽도록 만드는가를 생각해 볼 만 합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만들어 놓은 공기, 산소를 얻어 마셔서 공기에서 빌려온 것이 내 생명이요, 떠다니는 구름이 비가 되어 물을 얻어 마셔서 물에서 빌려온 생명이요, 대지에서 나온 음식, 떠오르는 태양, 온 우주 생명을 빌려다가 내가 쓰고 있는 것이 나이며, 따로 내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는 사리불, 목련이 대체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지·수·화·풍(地水火風), 우주 생명을 빌려다 쓰고 있는데, 그 우주 생명과 나와의 관계는 무엇인가, 나의 영혼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한 마음을 해결하기 위해 인도 바라나시 도시에 갔습니다.

바로 보이는 세계를 공(空)이라 하고
연기법(緣起法)이라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사성제(四聖諦)인 고집멸도(苦集滅道), 고집(苦集)인 순관(順觀)과 멸도(滅道)는 역관(逆觀)이라고 하는데, 고집멸도 법문을 듣고 연기법을 듣고 깨달은 스님인 아승 스님이 탁발하러 바라나시에 왔는데, 깨달았다는 것은 내 감정이 벽을 허물어 버려서 옆에서 누가 무엇을 하든 어떤 소리가 나든 전부 다 우주에서 나오는 소리이기 때문에 내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로 알기 때문에 흔들림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 깨달은 스님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니 너무나 평화로워서 여쭈었더니 부처님께서 “이것이 있음으로 해서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함으로써 저것이 멸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깨우친 것입니다.
즉, 연기법(緣起法)은 “이것이 있음으로 해서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함으로써 저것이 멸한다”는 것은 “우주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것이고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선과 악을 둘로 보지 않았으며 잘나고 못난 것도 하나요, 선과 악도 인연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제일게(第一偈)는 ‘살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벌레 하나 죽이지 않는 것이 살생인 줄 알지만, 부처님께서는 “내가 누구인 줄 모르는 것이 살생”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누구인 줄 모르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겠느냐, 내가 누구인 줄 모르는 동안에는 나를 사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살생하지 말라는 뜻은 인연법(因緣法)을 알라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깨달아서 내 마음 죽이지 말라는 것이요, 남이 마음에 상처를 주고 남을 죽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몸도 지수화풍(地水火風), 4가지 기운이 만나서 내가 있는 것처럼, 나도 인연에 의해 생기고 우주 자연도 인연에 의해 생기는 것이며, 내가 독립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요 제법무아(諸法無我)요 열반적정(涅槃寂靜)이라 했습니다. 온 우주가 나 아닌 것이 없고 우주 전체가 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살생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선과 악이라는 것은 인연에 의해서 이렇게 보면 선이 되고 악이 되니 인연법을 바로 보게 되면 선과 악이 둘이 아닙니다.
저는 이 세상에 와서 부처님을 만난 것을 가장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연법을 가르치면서 우리에게 마음 농사짓는 법, 어떻게 하면 내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우주가 전체 ‘나’인 줄 알고 지나가는 새소리, 밤하늘 별자리, 모두가 다 만나기만 하면 고개를 숙이고 합장하고 ‘고맙습니다’하면 부처님 가르침인 간화선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법회에서 하나 물어봅시다. 판사, 검사, 변호사 중 누가 큰 모자를 쓰겠습니까? 
머리가 큰 사람이 큰 모자를 쓰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판사일까, 검사일까, 변호사일까를 분별합니다. 생각에서 온갖 번뇌망상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그럼 번뇌망상이 없어진 것을 공(空)이라고 하고, 바로 보이는 세계를 공(空)이라 하고 연기법이라 합니다. 내 감정들로 뭉쳐진 것을 ‘영혼(靈魂)’이라 하는데, 그 영혼이 나를 끌고 다니는데 내 마음 밭에 깨끗이 청소를 하는 것을 ‘참회(懺悔)’라고 합니다.
‘참선(參禪)’이란 본래 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참 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주인이 주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주인이라는 것은 내 안의 나라고 여깁니다. 생각은 내가 아니고 잠깐 내 몸뚱이에서 쉬고 가려고 잠깐 들어온 손님입니다. 생각이라고 하는 감정을 나인 줄 알고 그 놈을 붙들고 있으면 내 주인은 맥을 못 쓰기 때문에 마음은 한없이 좁아지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부처님 법을 배우고 부처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불교를 믿는 불자가 된다는 것은 내가 마음을 넓혀서 내 행복을 위한 길이고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 일입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모르고서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무정설법(無情說法)이란 일체 생각이 끊어진 것을 말합니다. 공간 안에 있는 벽과 벽을 허물어 버리면 안과 밖이 없는 것처럼, “한 허공이 된 마음이 공성이 된 마음이 참마음”이라 합니다. 극락도 지옥도 내 마음을 허물어 버리고 내 감정에서 만들어진 내 생각의 세계구나, 내 생각이 있으면 있는 것이고, 내 생각이 없어져 버리면 없는 것이 무정설법입니다. 아는 것은 나다 너다, 크다 작다 상대성이지만 모르는 것은 평화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아는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닌 공성(空性)을 깨닫게 하려고 평생 법문을 했는데 그것이 “연기법(緣起法)”입니다.
근본불교에서는 사성제인 고집멸도(苦集滅道), 고집(苦集)인 순관(順觀)과 멸도(滅道)인 역관(逆觀)을 다르게 보지만 대승불교에서는 하나로 봅니다. 무명과 진여가 하나입니다.
양개 스님은 위산 스님과 운암 담성 스님을 찾아 깨달은 이야기는 귀로 들을 때는 그렇게도 안 들리더니 눈으로 들으니 이렇게 확연한 것을. 듣는 것과 보는 것과 말하는 것과 걸어다니는 것과 다 한 놈이 하고 있다. 이 한 놈이 몸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에 있는 것은 모르고 내 안에 있는 것을 보면 벽이 허물어지면서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부처’라 합니다. 
“부디 그것을 찾지 말게. 이제 홀로 당당히 걸어가니 인연법을 믿고 가는 곳마다 그를 만나네. 그는 이제 나이지만 나라고 했던 이 감정은 내가 아닐세. 이렇게 깨닫고 나니 무정설법은 바로 나에게 있었구나.”이것이 오늘 본론입니다. 
“나와 남을 둘로 안 보고 우주와 나를 둘로 안 보는 부처님 가르침”이 세계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믿고 법당에 가서 절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큰 행복으로 느껴야 합니다. 불자로서 긍지를 갖고 부처님께 가서 내 마음 농사에 어떤 씨앗을 심었을까 열심히 돌아봐서 오늘 이 강의가 여러분들 마음 밭(心田)에 씨앗이 되어서 먼 훗날 마음의 밭(心田)에서 만났을 때 손에 손잡고 태평가를 불러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원컨대 이 법문 들은 공덕으로 서귀포불교대학총동문회에서 노력하는 이 공덕이 모든 마음에 번뇌망상 여의고 감정은 소멸하고 내 마음 농사 풍년이 되어 연기법을 깨달아서 모든 소원성취 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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