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함께하는 ‘노자’ 산책 (15) -도덕경 - “최상의 덕은 무위하면서 무엇을 위하여 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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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함께하는 ‘노자’ 산책 (15) -도덕경 - “최상의 덕은 무위하면서 무엇을 위하여 함이 없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7.13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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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순환하고 운행하는 자연의 원리가 도라면
덕은 도가 인간에게 품수되었을 때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상덕은 도에 합치하는 것으로 스스로 덕이 있음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덕을 행한다

 

'도덕경' 1장부터 37장까지는 '도경', 38장부터 81장까지는 '덕경'이라 한다. 둘을 굳이 구분하자면 '도경'은 주로 도의 존재론적인 측면을, '덕경'은 주로 도의 기능적인 측면을 다룬다고 할 수 있다. 1973년 중국 마왕퇴 고분에서 발견된 백서본에는 '도경'과 '덕경'의 순서가 바뀌어 나와 있다. 그래서 마왕퇴의 노자는 '덕도경'이 된다. 
이 장부터는 '덕경'으로 우주가 순환하고 운행하는 자연의 원리가 도라면 덕은 도가 인간에게 품수되었을 때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왕필은 덕을 항상 얻어 상실됨이 없고 이로울 뿐 해가 없기에 얻음이라 하였다. 
상덕은 이러한 도에 합치하는 것으로 스스로 덕이 있음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덕을 행한다. 억지로 꾸며 덕을 행하지 않기에 구김이 없고 자연스러우며 그 행동이 힘차다. 그래서 덕이 있다. 그러나 하덕은 억지로 일을 꾸미고 자기의 행동을 의식하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기에 실상 덕이 없게 된다. 즉 상덕은 무위로 덕을 행하고, 하덕은 유위로 행한다. 본래 덕은 도(道)가 내재화된 것이라 덕 자체는 상덕이니 하덕이니 나눌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누어진 이유는 그것이 자연적인 것이냐 인위적인 것이냐에 따른 차이라 볼 수 있다. 
 인(仁), 의(義), 예(禮) 또한 유위에 속한다. 도를 잃은 후에 덕이 생기고, 덕을 잃은 후에 인이 생기고, 인을 잃은 후에 의가 생기고, 의를 잃은 후에 예가 생긴다. 그러므로 여기서 언급되어지는 예는 진정한 내용 없이 겉치레이자 형식적인 예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노자가 보기에 예는 충성과 신의가 없는 인위적 조작이자 진실하고 신실한 삶이 왜곡된 결과이다. 
인(仁), 의(義), 예(禮)는 유가의 핵심 덕목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마땅히 사랑하는 것이 인이라면 예는 이러한 인이 겉으로 드러나 결과이다. 공자는 예를 부단히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을 진실되게 인도하려 했지만 노자가 보기에 공자의 그러한 의도는 오히려 인간을 형식화시켜 진정성이 밀려나게 된다. 일단 예가 정해지면 사람은 그 형식을 지키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옮겨간다. 인간은 형식화되고 진정성은 뒤로 밀려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예의 체계에 편입된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으로 나뉘어 혼란을 야기하게 된다. 그래서 노자는 이러한 인식 체계는 혼란스러움의 단초가 되고, 어리석음의 시작이 된다고 본 것이다. 
유가와 서양 근대철학에서는 우리가 가야할 이상을 설정해 놓고 우리로 하여금 부단히 노력하여 그 이상을 추구하도록 한다. 그래서 저멀리 설정되어 있는 체계와 이상에 다가갈 수로 있도록 장치되어 있는 학(學)과 습(習)이 강조되며, 우리의 본성도 그곳을 향해 나아가도록 하게 한다. 
그러나 노자가 보기에 인위적으로 조직된 그런 이상은 인간의 자발성에 기인한 무위와는 거리가 있다. 그러한 이상은 때로는 통치자의 이데올로기가 되어 백성을 전쟁의 도탄에 빠지게 하거나 개인의 행복을 무가치하게 만들게 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개인의 윤리적 창조성이나 자발성은 없고 일률적 획일성만이 판치게 된다. 이런 식의 형식적 예나 이상은 혼란의 시작이다. 
사실 모든 전쟁은 이상과 명분을 내건 야욕의 도가니이자 합법적인 살인인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노자는 인위적으로 조직된 그런 이상보다 이미 가지고 있는 인간의 본성과 진실을 추구하자고 하는 것이다. 노자가 보기에 유가의 덕목은 하덕이다. 훌륭한 덕은 무의식의 덕이며 자연의 덕이다. 자연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무의식의 자발성과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자는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저것이 혼란의 시작인 형식적인 꾸밈의 화려한 꽃이라면 이것은 바로 진실하고 믿음이 있어 중후한 열매이다. 저것이 인위라면 이것은 무위이다. 저것이 예라면, 이것은 바로 도인 것이다.

/ 글_ 고은진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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