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50)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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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50)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18)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7.13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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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북쪽 벽 두 번째 칸 맨 윗단에는 모두 세 장면의 벽화가 그려졌는데, 장면의 화제는 오른쪽부터 빈공견불(貧公見佛), 노인출가(老人出家), 추녀개용(醜女改容)이다. 이들의 주제는 전생에 지은 선악의 인연에 따라 현세에 과보를 받는다는 것과 나이에 관계없이 출가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죄와 복의 보응은 그림자나 메아리와 같다(貧公見佛)
슈라바스티(사위성, 중인도 지방 코살라국의 수도)에 나이가 백 세에 이른 한 가난한 노인이 있었다. 출가 공덕이 매우 크다는 것을 듣고 지팡이를 짚어서 세존께 찾아갔다. 세존께서 계신 곳 입구에서 제석천과 범천이 안으로 들이지 않자 크게 소리친다. 
“내 비록 가난하고 천하지만 오늘 천 년에 한 번 있을 행운을 만나 세존을 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존께 죄와 복에 대해 여쭙고 온갖 고난에서 벗어나는 길을 구하고자 합니다. 세존께서 인자하시어 두루 만물에 그 은혜가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먼 곳에서 찾아왔으니 한번만이라도 뵐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에 세존께서 아난에게 그 노인을 데리고 오라고 했고, 노인은 무릎으로 기면서 세존께 나아가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불행하고 가난했습니다. 굶주림과 추위에 죽고자해도 죽지 못했고 살아도 의지할 데가 없었습니다. 사람의 목숨은 지극히 중한 것이라 스스로 목숨을 버리지도 못했습니다. 세존께서 계시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속으로 홀로 환희하여 밤낮으로 세존의 얼굴을 한번만이라도 뵙기를 기원하였나이다. 조금 전 문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 허락을 받지 못하여 돌아갈까 생각도 했지만 기력이 떨어져 오도가도 못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다만 목숨이 끊어져 성인의 문 앞을 더럽혀 그 죄가 더하게 될까 두렵습니다. (들이지 않는 이유를) 깨닫지 못함을 세존께서 애처롭고 불쌍히 여기셔서 이렇게 세존을 뵙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제 죽는다 해도 아무 한이 없사옵니다.”
이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생명을 받고 태어나는 것은 생사의 인연이며, 인연이 많음은 그 죄의 근원이 된다. 그대는 전생에 부잣집에서 태어나 총명하고 지혜로웠는데, 그것을 마음대로 사용하여 남을 경멸하고 능욕하면서 재물을 모으고 보시는 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현생에 가난하고 궁핍한 과보를 받게 된 것이다. 죄와 복의 보응은 이처럼 그림자나 메아리와 같은 것이다.”
노인은 이 말을 듣고 배례하고 그곳을 떠났다.    
벽화는 양쪽에 일부 박락되었지만 석씨원류 판화(사진 1)와 다름없이 그려졌다. 문 입구 좌우에는 제석천과 범천이 서 있다. 노인은 마당에 무릎을 꿇고 세존께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1) 석씨원류 판화 ‘빈공견불’
(사진 1) 석씨원류 판화 ‘빈공견불’

 

파사닉왕 딸의 인연 이야기: 추녀가 아름다워지다(醜女改容)
세존께서 슈라바스티(사위성)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 코살라국의 파사닉왕의 왕비인 말리(末利, 摩利) 부인이 딸을 낳았다. 그런데 얼굴이 아주 추악하고, 몸은 뱀 껍질같이 거칠었다. 파사닉왕은 딸의 모습을 남이 보지 못하도록 궁 안 깊은 곳에서 키웠다. 시간이 흘러 시집갈 아이가 되자 한 가난한 호족의 아들을 불러 공주의 얼굴이 몹시 추한데 공주와 결혼하면 관직은 물론 모든 것을 풍족하게 해주겠다고 하니, 호족의 아들은 왕의 명을 받겠다고 하였다. 큰 집을 지어주고 안팎으로 일곱 겹의 문을 만들고, 외출할 때는 직접 자물쇠를 걸어 잠가 다른 사람이 공주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하라고 명했다. 대신들이 호족들과 함께 모임을 열 때 부부 동반을 하는데 국왕의 사위는 항상 혼자만 참석하자, 여러 사람이 의아해하였다. 어느 날 저 사람의 부인이 예쁜지, 추악한지 알아보자고, 다섯 사람이 국왕의 사위에게 술을 권해 취하게 하고 그가 갖고 있는 열쇠를 빼내어 문을 열어 그의 아내 얼굴을 보려고 하였다. 
그때 부인은 자신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남편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이렇게 어두운 방에 갇히고 사람들을 떳떳하게 만나지 못하는지 자책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리고는 세간에 계신 세존께서는 자비한 마음으로 중생의 괴로움을 제도해주신다고 하는데 자신에게 나타나시어 교훈을 내려주길 간절히 기원하였다. 
부인의 간절한 발원에 세존께서 곧 그 집에 나타나 그녀를 위하여 설법을 하니 부인이 환희심을 내며 마음의 문이 열렸고 곧 못생기고 추악했던 모습도 천녀처럼 단정, 장엄해졌다. 세존께서 본래의 처소로 돌아가신 후 다섯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가 부인의 단정한 모습을 보고 서로 ‘그 대신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아름다운 부인을 모임에 데리고 오지 않았냐’며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그리고는 도로 문을 닫고 돌아와서 열쇠를 대신이 본래 차고 있던 자리에 달아 두었다. 나중에 정신을 차린 남편이 돌아와 집안에 들어가서 부인의 보고 누구냐고 묻자 부인이 자신의 아내라고 대답하자 깜짝 놀란다. 부인으로부터 세존의 가피력으로 모습이 바뀌게 된 자초지종을 듣고, 함께 부왕을 만나러 간다. 
딸이 아름답게 변한 모습을 본 파사닉왕은 매우 기뻐하며 함께 세존께 찾아가 그 과보가 무엇인지 가르쳐주길 청하자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주 오랜 과거세에 부유한 한 장자가 있었는데, 그는 온 가족들과 함께 어떤 벽지불 한 사람을 항상 공양하였소. 그런데 이 벽지불의 얼굴이 아주 추악하고 몸이 초췌하여 차마 볼 수 없는 정도였는데, 그 장자의 어린 딸은 이 벽지불을 깔보고 모욕해 '어쩌면 그렇게도 얼굴이 못생기고 몸의 피부가 추악할까'라고 말하였소.
벽지불은 그 집에서 자주 공양을 받았는데, 벽지불이 열반에 들려고 할 무렵 신통력을 발휘하자 놀리던 장자의 딸이 그간 자신이 저지른 죄과를 뉘우치며 참회하였소. 그 장자의 딸이 벽지불을 미워하고 헐뜯었기 때문에 뒷날 태어나는 곳마다 추악한 몸을 받았지만, 나중에 벽지불을 향해 깊이 참회했기 때문에 이제 온 세간에 따를 이가 없을 정도로 단정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오. 또 그 당시 장자의 집에서 항상 벽지불을 공양했기 때문에 장자의 딸이 언제나 귀한 가정에 태어나서 모자람이 없었고, 이제 다시 나를 만났기 때문에 그 근심과 괴로움을 벗어나게 된 것이오.(찬집백연경 79)"
경전에서 세존은 땅속에서 솟아난다고 표현되었는데 벽화(사진 2)와 판화(사진 3)에서는 담장 안 마당에서 한 여인이 구름을 타고 날아오는 세존을 향해 예를 올리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벽화에서는 담장 표현이 다소 어색하지만 판화와 달리 대문에 자물쇠까지 묘사한 것으로 보아 경전의 내용을 충실하게 표현하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2) 각원사 대웅전 북벽의 벽화 ‘추녀개용’
(사진 2) 각원사 대웅전 북벽의 벽화 ‘추녀개용’
(사진 3) 석씨원류 판화 ‘추녀개용’
(사진 3) 석씨원류 판화 ‘추녀개용’

이 ‘추녀개용’ 장면은 불보사찰인 영축산 통도사의 영산전 내부 상벽의 불전 벽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영산전 내부에는 모두 26장면의 석가모니 관련 불전 벽화가 그려졌다. 화면이 작다 보니 세존과 추녀를 중심으로 묘사되었다. 석씨원류의 세존과 관련된 200여 장면 중에서 이 화제가 선택된 것은 특별한 이유보다는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인연 과보와 보시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세 그림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사진 4) 통도사 영산전 상벽 벽화 ‘추녀개용’
(사진 4) 통도사 영산전 상벽 벽화 ‘추녀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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